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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만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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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만남 2
  • 고담
  • 승인 2011.09.06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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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의 미래소설 '거리검 축제'<2> 늘 아바타를 주물러주어야 한다니...
"너의 지위가 우주 안에서 半神半人의 몸으로 격상이 될 것이다”
솟대 할머니가 내게 준 아바타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버린 인형처럼 볼품이 없었기 때문에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아바타는 30세 정도의 나이를 먹은 여자의 얼굴이었고, 그가 입고 있는 치마와 저고리는 낡을 대로 낡은 것이었다. 군데 군데 구멍이 나서 속살이 들여다보였다. 아바타는 잠들어 있었다. 
 
“솟대 할머니! 아바타에게 새 옷을 입혀도 되겠습니까?”

나는 솟대 할머니에게 물었다.

“네가 이 아바타에게 옷을 해 입히면 아바타가 잠에서 깨어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네가 아바타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지.”

“솟대 할머니시여! 우둔한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아바타는 호법신護法神의 사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너에게 충성을 하러들 것이다.”

“충성이라니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요구하는 것이라면 하나도 거역하지 않고 다 들어주려 할 것이다.”

솟대 할머니의 말씀에 나는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바타와의 동거라는 미묘한 상황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제가 필요할 때 부르면 나타나게 할 수는 없을까요?”

“이 아바타는 언제나 너의 주머니 속에 있어야 해. 네가 항상 주물러 주어야 깨어 있거든.”

“주물러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야 잠들어 있겠지.”

늘 아바타를 주물러주어야 한다니 이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남루한 아바타에게 주인으로서 당연히 옷을 해 입혀야 하겠지.”

솟대 할머니가 대답을 재촉했다.

“인간의 몸으로서 신을 소유한다는 것이....”

“원래 신은 인간의 소유물이야. 신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야. 그러니 네가 이 아바타를 소유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솟대 할머니가 강압적으로 말했다.

“제가 이 아바타를 소유한다면 제게 득이 되겠습니까? 해가 되겠습니까?”

“그야 득이 되겠지. 너의 지위가 우주 안에서 반신반인半神半人의 몸으로 격상이 될 것이다.”

“반신반인의 몸이 된다면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인간을 속이고 사기치는 가신假神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겠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제게 그런 능력이 생기게 하여 저를 부려먹을 생각을 하시는군요.”

“그렇다.”
 
나는 솟대 할머니의 술수에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솟대 할머니를 주신으로 모시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으로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게 필요할 때가 아니면 솟대 할머니를 찾지 않았다.

“아바타에게 옷을 해 입혀라. 이건 명령이다! 이제는 네가 나를 공경하기를 태만히 한 죄를 물어 갑절이나 부려 먹도록 하겠다.”

드디어 솟대 할머니가 신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솟대 할머니의 얼굴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알았습니다. 옷을 해 입혀드리겠습니다.”

“이 아바타의 이름은 사모巳母다. 함부로 대해서는 아니 된다.”

사모라면 샤먼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사모는 내 손바닥 안에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져 있었다. 신의 손이 정교하게 깎은 조각품이었다.

나는 사모를 들어 올려 자세히 바라보았다. 사모는 아직도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 눈을 뜨게 해 주지 않으면 잠에서 깨어날 것 같지 않았다.

“왜, 제게 감당하기 힘든 사모를 맡기십니까? 좀 격이 낮은 아바타는 없습니까?”

“이 세상에서 사모의 존재를 알아볼만한 혜안을 가진 자는 너 하나뿐이니 어쩔 수 없다.”

나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모의 몸을 쓰다듬어 보아라.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느낌이 올 것이다.”

나는 사모의 몸을 쓰다듬어 보았다. 나무로 깎은 것은 아니었다. 쇠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돌을 깎아 만든 것도 아니었다. 고무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천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인간의 피부로 만든 것 같았다.

“이제 감이 잡혔을 것이다. 옷을 해 입혀 눈을 뜨게 하라.”

어디에 가서 옷을 해 입히느냐가 문제였다. 옷을 만드는 사람이 인간의 살로 된 아바타를 보는 순간에 기절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밖으로 나가면 지하도 상가에 옷을 수선하는 집이 하나 있을 것이다. 그 옷수선집에 가서 아바타에게 입힐 옷을 달라고 하라. 그러면 아바타에게 입혀 줄 옷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바타를 가지고 지하도 상가에 있는 입던 옷을 수선하는 집으로 갔다. [K호 옷수선]이라는 작은 간판이 붙은 점포 안에서 40대의 여자가 옷을 수선해 주고 있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러 갈 때나 내려서 집으로 돌아올 때 옷을 고치고 있는 이 여자를 지나쳤다.

“왜, 이제 오는 거요?”

내가 옷 수선실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서자, K호는 내게 화를 내었다. 이건 초면의 신사에게 엄청난 실례가 아닐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 거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성주산의 산신으로부터 3천명의 군복 제작을 주문 받았소. 나는 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3천 벌의 군복 제작에 매달렸소. 군복을 만들어 놓은지 3년이 지났는데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았소. 이제 당신이 첫 번째로 찾아온 것이요. 그러니 내가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소.”

“도대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요?”

나도 마주 화를 내었다.

“내가 군복 3천 벌을 만들었고, 3년을 기다렸다고 말했소!”

K호가 악을 썼다.

“그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요?”

“당신이 군복 5천 벌을 가저가야 할 사람이니까 내가 화를 내는 거야.”

이건 내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아바타에게 입혀야 할 옷을 가지러 온 것이요.”

나는 상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아바타를 꺼내어 보여 주었다.

“당신은 아바타에게 내가 주는 군복을 입히는 순간부터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요.”

“이건 천기누설이군. 그렇다고 해 둡시다. 아바타에게 입힐 군복이나 주시오.”

“왜 늦게 왔는지 사유서를 내시오. 사유가 합당하다면 군복을 내주겠소.”

K호는 만만치 않았다.

“싫으면 그만 두시오.”

나는 돌아서 나오려고 하였다. 그러나 K호가 내 앞을 가로 막았다.

“당신이 내게 온 이상 군복 5천 벌을 다 가지고 갈 때까지 내게서 벗어날 수 없을 거요. 그러니 고분고분해 지는 것이 좋을 것이요.”

나는 가슴으로 여자를 밀쳐 보았지만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힘이 센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K호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알았소. 사유서를 쓰겠소.”

K호가 내게 플라즈마로 만든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나는 플라즈마 종이에 내가 여기에 오게 된 경위를 기록하였다.

“내가 주신으로 모시고 있는 솟대 할머니가 내게 아바타를 하나 주고 이리로 보냈습니다....”

나는 그렇게 쓰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말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당신은 5천 명의 아바타 사령관이 되는 것이요.”

“약 올리지 마시오.”

내가 사유서를 다 쓰자 K호는 이것을 다목적 단말기에 넣고 어디론가 보냈다.

“사유서를 어디로 보내는 것이요?”

“사령부에 보내는 것입니다.”

“사령부?”

“그렇소. 성주산에는 은폐된 사령부가 있소.”

“뭐 하는 사령부요?”

“전쟁하려고 만든 사령부지.”

“5천명을 가지고 전쟁을 한다고?”

“가능하지.”

K호는 은폐된 사령부의 전쟁수행능력을 믿고 있는 듯 했다.

“누구와 전쟁을 하는 것이요?”

“나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소. 다만 사령부에 군속으로 징발당해 군복을 만들었을 뿐이요. 보급창으로 갑시다. 군복을 주겠소.”

K호가 나를 점포 밖으로 내보내더니 점포의 문을 닫았다.

“이제 나는 이곳에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것이요.”

K호는 지하도에서 밖으로 나와 성산심로聖山尋路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경인국도에 평상시와 다름없이 차들이 넘치고 있었다. 점포들도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었고, 버스 터미널에서는 버스 한 대가 출발 대기 중이었다. 

삼거리 입구에 소사약방이 있었다.

“약 하나 먹고 갑시다.”

K호가 소사약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K호를 따라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약사가 하얀 가운 속에서 정중하게 맞았다.

“사령부에서 보관한 약을 한 알 주시오.”

약사가 약 한 알과 음료수를 내 앞에 대령하였다.

“이 약을 들어야 은폐된 보급창으로 갈 수 있습니다.”

약사가 말했다.

나는 약을 입 속에 넣고 물을 마시며 목으로 넘겼다. 아무런 느낌이 없는 약이었다.

“당신도 징발 당했소?”

나는 약사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징발 당한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이곳에 왔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약사는 진열장 위에 놓인 명함 통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어 내게 주었다.

“나는 이 명함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이 명함을 주고 있습니다. 이 명함은 [우체모탁국優體牟涿國]으로 들어가는 패스포트입니다.”

명함에는 한자로 [우체모탁국]이라고 써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써있지 않았다.

“여기가 삼한시대三韓時代에 있었던 우체모탁국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우체모탁국으로 가야 할 사람을 가려내는 일입니다. 여기 성산심로로 이어진 소래蘇萊에서 부천富川 사이의 땅이 모두 사라진 우체모탁국의 땅이었습니다.”

“자, 갑시다.”

K호가 말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격암학원] 원장에게 손님이 오셨다고 통보하겠습니다.”

약사가 [격암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연락했습니다. 가시지요. [격암학원]은 여기에서 5미터 거리 안에 있습니다.”

나는 아바타에게 입힐 군복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 몇 개의 관문을 더 통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암학원]은 지은지 오래 된 2층 건물의 2층에 있었다. 간판이 걸려 있지 않았다. 계단이 비좁았다.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두드리니 “들어오시오.” 하는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학원이라는데 수강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직 학원 선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 명 있을 뿐이었다. 그는 60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둥근 상 앞에 앉아 있었다. 교실같은 것은 없었다.

“어서 오시오.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격암학원]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솟대 할머니 덕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당신에게 사라진 우체모탁국에 대하여 교육시키는 일입니다.”

“제가 사라진 우체모탁국에 대하여 알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앞으로 이 고장에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사라진 우체모탁국을 다시 세우려 할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중요한 일을 맡게 될 것입니다.”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맡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별로 구미가 당기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나를 이곳에 보낸 솟대 할머니의 의중意中이었다.

내실 쪽 문이 열리면서 한 여자가 차 3 잔을 가지고 왔다.

“성주산에서 재배한 성주산 차입니다. 우체모탁국시대에 소도에서 제사 때올렸던 차를 복권한 것입니다.”

[격암학원]  원장이 말했다.

내가 알기로 성주산에는 아무 데에도 차밭이 없었다. 차밭으로 쓸 공간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주산에서 차를 재배했다고 하였다.

나는 찻잔을 들어 차 맛을 보았다. 약간 씁쓸한 맛이었다. 맛이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맛이 어떻습니까?”

“약간 씁쓸하군요.”

“언젠가 차밭을 보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차밭은 어디에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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