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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핑계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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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핑계없는 삶
  • 류지일 기자
  • 승인 2012.12.13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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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우체국 박영석
▲ 보령우체국 박영석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관둔다는 속담이 있듯이 제 아무리 대기업 혹은 공기업 등 신의 직장을 다녀도 자기가 적성에 맞지 않다면 다른 길을 찾게 된다.

보통 그럴 땐 '적성에 안 맞는다 비전이 없다' 라는 이유로 합리화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적성이 중요하다 비전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본인의 적성을 알 기회를 가졌는지 어떤 비전을 꿈꾸고 있는지 스스로 에게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공무원을 하겠다는 수많은 고시족은 본인이 어떤 적성을 갖고 비전을 꿈꾸며 형설지공으로 다리뻗으면 벽닿는 관같은 비좁은 고시원에서 젊은 날을 지새고 있는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요즘은 9급 시험합격만 해도 출신학교 교문에 현수막이 걸린다고 할 정도로 요즘 같은 장기불황과 취업문 좁은 세상에서 공무원 직종은 나날이 각광받고 있고 직업의 순위가 정해지는 중매시장에서도 상위랭킹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생 네 명중에 한 명은 공무원 준비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데 그토록 많은 젊은 인재들이 5과목의 똑같은 지식을 경쟁적으로 집어넣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씁쓸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본인이 공부하고 있을 당시에는 물론 지금에도 드는 것이 저만의 사치스런 감정이었을까.

그렇게 청춘을 담보삼아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여 양복쟁이가 됐을 때 모든 것이 고속도로처럼 평탄히 정주행할 것 같았는데 공부 더 해볼까 이런 일은 나하고 코드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그만두면 딱히 먹고 살길이 막막하니까 참고 버티는 동료 후배들을 많이 보게 된다.

지난날 각자의 인생에 있어 고3 생활보다 더 고역이던 흑역사 같은 수고로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공직이 갖고 있는 메리트들, 예컨대 안정된 보수와 보장된  근무시간과 정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직장을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입버릇처럼 적성 탓을 하지만 제가보기엔 우리들이 말하는 적성이라 함은 편하고 안정되고 파도 없이 잔잔한 호수 같은 인생을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 평범한 능력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다 그렇듯 필자 또한 IMF로 나라가 휘청일 때 남들 다가는 대학에 덩달아 입학하여 각박해져가는 세상에서 생존코자 생계와 무관한 순수학문은 과감히 뒤로하고 도서관에서 그리고 졸업식도 뒤로한 채 노량진에서 공무원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공직을 선택한 것은 학벌이나 어학연수 없이 시험성적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분명 그 적성은 다른일을 해 볼 용기가 없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책보는 것 이외엔 자신이 없어 이 모든 것이 위정자들의 그릇된 나라운영이라 치부하여 위안삼는 무기력함이 없지 않았나 싶다.

이유가 어찌됐든 독서실에서 몇 년을 몸부림치고 수번의 시험에 낙방하는 고통을 씹어 삼킨 후에 우정사업본부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발령을 받고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우체국은  대개 지방 읍면단위 우체국에 배치 받아 현장중심 목표사업을 관리하는 공기업의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입사하자마자 현장에 투입되어 우편물 접수에서부터 현금수납에 이르기까지 시종 긴장감속에 업무를 익혀나가야 했다.

공적분야와 민간분야가 혼재되어 있는 특별회계로 운영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행정뿐만 아니라 택배회사처럼 물류관리에서 부터 시중 은행에서 취급하는 금융업무까지 다채로운 업무도 섭렵해야  된다.

따라서 공직에 입문하면 복사기나 돌리고 틈틈이 인터넷을 즐길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기 때문에 저 또한 책을 다시 펼쳐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수십 번 고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본인이 적성이 맞아 택한 공무원의 길이 정작 이제는 적성이 맞지 않아 되돌아가겠다 결심하는 것은 명백한 자기오류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결국 내 능력에 맞게 시험을 봐서 내 능력이상의 일을 강요받지 않는 직장에서 월급날에 맞춰진 시계를 보며 그동안 학업에 쏟았던 젊은시절을 보상받겠다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를 자문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핑계거리가 없었다.

내게 주어진 이 일이 힘들다기보단 이 위치가 맘에 들지 않아 다시 도서관으로 가서 새롭게 비전과 신념을 세우기엔 부족했던 미약함을 덮을 핑계거리 없어 버텨보기로 한 것이 벌써 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비록 쉽지 않은 고비도 많았지만 자존심인지 오기인지 버티고 주먹 꽉 쥐며 버틴 세월 탓에 조금은 단련이 되어  시험성적에 마음 조리던 젊은 시절 보단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깊이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더듬거려가며 꾸준히 찾은 결과 진정한 적성에 맞는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작은 행복감으로 살고 있다.

이런 지난날의 시행착오를 반면 교사로 삼아 취업만을 위한 맹목적인 공부는 실패했을 때  자칫 패배의 시간들로 기록될 수 있다는데 유념해야 할 것이다.

공직을 준비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공직에 몸담고 있다면 정확히 본인이 원하는 것을 되물어 확답을 얻고 시작해야하고 확고한 목표의식이 세워져 있어야 한다.

마땅히 할 것이 없어 생각 없이 고시학원에 매달리고 준비하는 과정이 고뇌에 가득 차있다면 잘못 된 길인 것이 확실하다.

행복한 삶을 위해 공직을 하려고한다면 준비과정도 행복해야 할 것이다. 후회 남지 않도록 최선과 집중을 다해 매진하고 그래도 안 된다면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열린 생각과 자신감도  필요할 것이다.

특별한 방향점도 의지도 없이 직업처럼 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무궁한 길이 존재함에 불구하고도 공직의 선택을 별다른 스펙이 없는 처지에 맞춰 미래의 막연한 안정성에만 초점을 준다면 부실한 인생설계가 될 수 있다.

운좋게 입문을 해서도 명분이 약한 직장 생활은 깊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흔들일 일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되고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존재가 되어 무엇을 해야겠다는 신념도 필요하다.

공직의 안정성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고 지극히 상대적인 직종이기 때문에 합격의 기쁨에 안주한다면 변화하는 물결에 몸을 가누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우리가 보통 공직을 선택하는 이유는 나이 들어서까지 직장에서 안 잘리는 것이겠지만 그저 공무원이 되기만을 바라는 공시족과는 달리 회계비리 근무태만 등으로 연일 보도되는 뉴스에서처럼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고용주 즉 국민들의 이미지는 그다지 호의적이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공무원이 되고 내 가족이 공무원이면 자랑이겠지만 타인의 공직자가 잘못을 저지를 때 국민들은 더욱  엄격한 희생과 모범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될 것이다.

끝으로 시험준비에도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공직에 입문하여도 국가와 조직이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公僕이 되길 당부 한드리며 역설처럼 들리겠지만 ‘카르페 디엠’이란 말처럼 오늘을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수험생활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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