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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소] 왈도의 소곤소곤 이야기-오늘의 불쾌지수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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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소] 왈도의 소곤소곤 이야기-오늘의 불쾌지수 ②
  • 서다민
  • 승인 2020.12.04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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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왈도(필명)씨의 소설 '오늘의 불쾌지수'는 매주 금요일 오후 2시 연재됩니다.

작가 왈도(필명)씨
작가 왈도(필명)씨

사무장은 안 군수가 제법 거칠게 볼을 잡아당기는데도 마냥 신난 얼굴로 히죽거렸다. 안 군수는 함께 올라온 서장을 기획실로 안내한 뒤 사무장을 따라 캠프로 들어섰다. 캠프 문이 열리자 안 군수의 얼굴을 본 회원들은 ‘안종문!’을 연호하며 반겼다. 안 군수는 입을 벌린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잠시 정신 줄을 놓고 혼란스러워하던 안 군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캠프 안으로 천근같은 발걸음을 뗐다. 당황하고 있는 안 군수와 달리 사무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위 아래로 흔들며 군중을 선동했다. 안 군수는 사무장에게 그만하라는 애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사무장은 알아채지 못했다. MC도 기다렸다는 듯 준비한 멘트를 날렸다.
 “여러분!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삼선 군수님 이십니다.”
 MC의 소개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안 군수는 캠프 안의 상황을 둘러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MC의 시답잖은 농담에 사람들은 자지러졌다.
 “며칠 전에 누가 저한테 그러더군요. 우리 안 군수님 잘 계시냐고,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안 군수님이 누굽니까? 우리 군수님은 안 군수가 아니라, 진짜 군숩니다. 그것도 삼선 짜장만 드시는 삼선 군수님이십니다. 하하하.”
 깔깔거리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안 군수는 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단상에 올라 MC가 건네주는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안종문입니다.”
 안 군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또다시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함성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안 군수의 얼굴은 더 일그러졌다. 안 군수는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뭔가 착오가 있었나봅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아직 선거는 시작도 안했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오늘 이 자리보다 더 근사한 자리로 여러분들을 모시겠습니다. 힘들게 찾아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안 군수는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사과했고, 이미 끝난 싸움인데 뭘 그러냐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 모두 돌려보냈다.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한 사무장은 캠프를 빠져나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화장실로 몰래 몸을 숨겼다. 안 군수는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자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을 발로 걷어차며 소리를 질렀다.
 “오인문! 이 개자식 어디 갔어?”

 선거관리위원회가 내려다보이는 낡은 다세대주택 옥상 위에 박병환과 나기영 기자가 나란히 벽을 등지고 앉았다. 두 사람은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앞에는 까만 강아지 한 마리가 시멘트 바닥에 배를 깔고 열심히 개 껌을 뜯고 있었다.
 한동안 구름의 흐름을 쫓던 나 기자는 몸을 틀어 병환을 바라봤다. 나 기자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병환아! 지금 몇 시간째냐? 마감이 이제 한 시간도 안 남았어.”
 병환은 나 기자의 말에 아무 대꾸도 없이 개 껌을 뜯고 있는 강아지의 긴 허리를 쓰다듬었다. 얼굴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나 기자는 병환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염병할, 됐다. 그만하자’며 일어섰다. 그제야 병환이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을까?”
 나 기자는 다시 자리에 앉아 병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달래듯 말했다.
 “병환아, 우린 지금 범법행위를 저지르려는 게 아냐. 법대로 하는 거지.”
 병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나 기자는 가만히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는 병환의 손을 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병환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너는 그냥 후보 등록만하면 되는 거야.”
 나 기자가 ‘깜순아’하며 강아지 허리를 쓰다듬었다. 나 기자의 손길이 낯설었는지 강아지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깜짝 놀라 강아지 허리에서 손을 뗀 나 기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병환을 보며 말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오늘부터 넌 이 강아지 후보 후견인이 되는 거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넌 최초로 선거에 출마한 강아지 후보 후견인이 되는 거고, 나는 특종 하나 건지는 거야. 복잡하게 생각하면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나 기자의 끈질긴 설득에 병환도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기자는 병환의 심경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병환아, 지금 네 꼬락서니를 봐. 넌 이제 법대생도 아니고, 그냥 집에서 눈칫밥이나 먹는 백수라고.”
 병환은 나 기자의 말에 울컥했다.
 “다 맞는 말인데, 친구라는 놈이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겠냐?”
 잔뜩 풀이 죽은 병환의 말을 듣고, 나 기자는 거침없이 몰아붙였다.
 “병환아! 기회는 한 번 뿐이야. 이런 일이 생기면 앞으로 이 법을 가만 놔두겠냐? 이번 기회는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병환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지만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나 기자는 이때다 싶어 쐐기를 박았다.
 “정치판에 돌멩이 하나 던진다고 뭐가 변하겠냐? 그래도 아마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 이슈가 될 걸. 그리고 너 임마! 안 군수 삼선하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다며?”
 ‘안 군수’라는 말에 병환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정말, 안 군수 떨어뜨릴 수 있을까?”
 나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병환은 나 기자의 손을 잡고 다짐하듯 말했다.
 “그래 한 번 가보자. 법대로 한다는데 잡아가진 않겠지.”
 병환은 강아지를 번쩍 들어 올려 옆구리에 끼고 선거관리위원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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