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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소] 왈도의 소곤소곤 이야기-오늘의 불쾌지수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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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소] 왈도의 소곤소곤 이야기-오늘의 불쾌지수 ④
  • 서다민
  • 승인 2020.12.18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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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왈도(필명)씨의 소설 '오늘의 불쾌지수'는 매주 금요일 오후 2시 연재됩니다.

작가 왈도(필명)씨
작가 왈도(필명)씨

병환은 맥주 컵에 소주를 한 컵 가득 부어 단숨에 들이켰다. 두 잔째 소주를 붓고 있는데 나 기자가 포장마차로 들어섰다. 벌컥벌컥 소주를 마시는 병환의 모습을 보고 나 기자는 놀란 얼굴을 하며 앞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천천히 마셔라. 그러다 골로 간다.”
 빈속에 소주 두 컵을 연거푸 들이킨 병환은 서러운 표정으로 조금 전 안 군수와 있었던 일을 풀어 놓았다. 병환의 이야기를 듣던 나 기자는 축 늘어진 병환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병환이 네가 한때는 법대생이라고 다들 부러워했는데, 어쩌다 신세가 이렇게 됐냐.”
 나 기자의 말에 병환은 소주를 부으며 말했다.
 “그만해라. 네가 거들지 않아도 죽고 싶은 심정이니까.”
 나 기자는 발끈하는 병환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기분 풀어 임마! 안 군수 그 새끼, 원래 쓰레기야.”
 “참, 위로가 된다. 위로가 돼. 그래 뭐, 집에서 사람대접 못 받는 놈이, 나와서라고 사람대접 받겠냐? 그냥 술이나 먹자.”
 병환이 컵에 소주를 들이붓자 나 기자는 얼른 빼앗아 한 입에 털어 넣고 오이를 된장에 듬뿍 찍으며 말했다.
 “위로는 무슨, 나도 그 인간 때문에 회사에서 쫓겨날 판인데 내가 누굴 위로 하냐.”
 한숨 섞인 나 기자의 말에 병환이 관심을 보였다. 나 기자는 포장마차 주인에게 빈 소주병을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
 “정치시즌에 정치부 기자가 찬밥이라니까 우습지? 근데 이 동네가 원래 안 군수 독무대 아니냐, 정치시즌이라도 별 재미가 없다. 광고 하나를 못 받으니 원. 하긴, 단독 후보라 선거 운동도 안한다는 소문이 있더라. 다른 기자 새끼들은 그래도 광고 하나 받겠다고 살살거리는데, 난 죽어도 그 인간한테 손바닥 비비긴 싫고. 그러니 만날 회사에서 깨지는 거지.”
 “광고 따오라고?”
 나 기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한 소주가 나오자 병환은 술을 권했다.

 “기자가 기사를 써야지, 광고해오라고 쪼는 게 말이 돼?”
 안 군수를 안주 삼아 마시는 술은 쓰고 달았다. 이미 나 기자가 오기 전부터 컵으로 소주를 마셨던 병환은 슬슬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병환은 반쯤 감긴 눈으로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나 기자를 한참 바라보다 말했다.
 “기영아! 안 군수 그 새끼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확 떨어뜨릴까?”
 나 기자는 안주를 씹으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병환을 바라봤다. 병환은 피식피식 웃다가 뜬금없이 나 기자에게 문제를 맞춰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개나 소가 정치를 할 수 있다? 없다?”
 “정치하는 놈들이 다 개, 돼진데, 그걸 문제라고 내냐?”
 “사람이 아니라, 진짜로 ‘멍멍’, ‘음메’하는 애들이 정치를 할 수 있냐고 묻는 거잖아 임마.”
 “에라이 미친놈아. 술이나 처먹어라.”
 나 기자는 병환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기자는 병환의 빈 잔에 술을 부어주며 ‘미친놈, 미친놈’ 했다. 병환은 나 기자의 반응에 더 신나서 말했다.
 “웃기지? 그런데 정답은, ‘우리나라에서는 개나 소도 정치를 할 수 있다’야 임마. 멍청한 놈, 정치부 기자라는 놈이 그것도 모르냐?”
 나 기자는 킬킬 거리는 병환을 보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병환아, 네가 오늘 안 군수한테 충격을 심하게 받은 것 같다. 이제 그만 가자.”
 병환과 헤어진 나 기자는 술에 취했지만 횡설수설하던 병환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취했어도 병환은 10년을 넘게 사법고시를 준비한 녀석이 아닌가. 기자의 촉이 발동한 나 기자는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점으로 향했다.
 나 기자가 병환의 집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병환에게 몇 번을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4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병환이 전화를 받았다. 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부터 무슨 전화를 이렇게 많이 했어?”
 “시끄럽고, 집 앞이니까 당장 나와.”
 병환은 전화를 끊고 30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나 기자는 병환을 보자마자 승용차 조수석에 강제로 태우듯 밀어 넣고 자신도 재빠르게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병환을 다그쳤다.
 “말해봐.”
 “뭘?”
 “뭐긴 뭐야 이 자식아. 어제 네가 했던 말이지.”
 병환은 길게 하품을 하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 기자를 바라봤다. 나 기자는 최신판 법전을 병환에게 들이대며 말했다.
 “진짜 개나 소도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더라니까. 이게 말이 돼?”
 병환은 뜨악한 표정의 나 기자를 보고 지난 밤 자신이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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