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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의 영웅, 그들은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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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의 영웅, 그들은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 육심무
  • 승인 2014.02.27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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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의원 - 소치의 감동, 정치의 민낯 -


소치의 막이 내렸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엇인가 허전하고 시들하다.

금메달이 몇 개인지 종합순위 톱 텐에는 관심이 없다.

이번 소치 올림픽은 그 어느 때 보다 감동을 주었고 여운이 남는다.

아쉬움과 탄식, 분노와 기쁨이 어우러졌다. 이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소중하게 우리 곁에 다가왔다. 보이고 가려졌던 외로움이 어둠속에서 샛별처럼 드러났다.

첫 번째 감동은 메달 밖에서 왔다

여섯 번의 올림픽 완주자, 이규혁의 이를 앙다문 최후의 질주는 잊을 수 없는 실루엣으로 남았다. 그의 회한과 아픔 그것이 인생이다. 그의 좌절은 우리 주변에 흩어져 있고 그에 대한 연민과 위로가 그의 가쁜 숨과 뒤엉켜졌다.

봅슬레이, 모굴스키, 컬링 등 낯선 종목에서 헌신의 노력을 다한 젊은이들의 곡예를 보고 있자니 도전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비만의 음식을 삼키고 살아가는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무명이든 유명이든 하나같이 올림픽을, 스키를, 스케이트를 즐기고자 하였다. ‘조국에 계신 동포’가 사라진 그들의 웃음과 경쾌한 스텝에 우리 모두는 가슴을 열었다.

즐겨라! 즐기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당할 수 없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당할 수 없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그들은 이미 인생을 꿰뚫어보고 있다.

이기기 위해서라도 즐겨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치올림픽 내내 한숨과 탄식 속에서 생각했다.

왜 올림픽 선수들에게 있는 감동이 이 나라 정치와 지도자에게는 없는가.

왜 그들의 짧은 말은 시가 되어 우리 가슴에 꽂히거늘 정치인의 언어는 포말(泡沫)이 되어 허공에 떠도는가.

그들은 그들 방식대로 자기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였다. 스타트 라인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자기자신을 드러냈고 결승점에서 자신의 한계의 껍질을 벗기 위해 몸부림쳤다.

몇몇은 시상대의 계단에 올랐으나 수많은 젊은이가 그 앞에서 좌절하였다. 그러다 다시 일어나 달렸다. 완주하지 못한 대한민국 선수는 없었다. 다만 자신의 임계점 앞에서 숨을 고르다 그곳에서 자기를 만났다.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은 동시에 드러났고 사라졌다.

그들의 도전처럼 진지하고 처절하게 우리는 날마다 정치를 만나고 있는가. 부끄럽다. 그 절제의 행동과 언어를 우리는 지금 얻지도 느끼지도 못하였다. 자기를 넘어선 자의 희열을 나는 아직 맛보지 못했다.

나에게는 이상화의 아름다운 허벅지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이상화의 그 엄청난 땀과 눈물을 지금이라도 찾아 나설 일이다.

“내가 혼자서 이긴 것이 아니다. 심석희는 세계적인 선수이다.” 1000m 금메달 리스트 박승희의 말이다. “언니가 있어 내가 이만큼 성장했다.” 심석희의 말이다. 그들의 따뜻한 배려와 절제의 미를 감히 어떤 정치가 대체할 수 있으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으로 무리한 추월을 시도하다가 쪽박을 차고 만 정치권의 탐욕의 잔치를 무수히 보지 않았는가.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제 다 보여주었으므로 행복하다.” 눈물을 감춘 김연아의 말이 감동의 식물(植物)을 키워 올렸다. 국민은 하나가 되었고 그의 은메달은 수백 수천의, 아니 소치에서 가장 아름다운 메달이 되었다. 왜 어린소녀의 품격과 절제의 언어를 우리는 갖지 못하는가!

그의 어머니는 ‘금메달은 더 간절한 사람에게 줬다고 생각하자’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은퇴 후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라’고 전했다. 그의 부모마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품격을 보여줬다. 역시 그 딸에 그 어머니다.

팀추월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밀어 주어야 한다. 결국 내부의 결속과 단결이 승리의 기록이 된다는 것을 ‘이승훈과 아이들’ 이 보여주었다. 우리는 팀워크로, 우정으로 신뢰를 쌓아 세계의 벽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국민을 하나로, 조국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좀 더 달려도 돼 형.” 뒤쳐지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그들은 소통했고 승리하였다.

그들은 금메달의 여백을 남겨두었다. 평창을 위해, 조국을 위해. 이것이 소통(疏通)의 미학(美學)이다.

그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아이스링크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조국을. 컬링장 하나도 없는 올림픽의 나라를. 네덜란드의 중고 봅슬레이를 빌려 타고 나간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민낯에 불평의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결코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이제 국가의 품격을 이 어린 선수들의 극기와 희생 위에 언제까지 세워 둘 것인가! 언제까지 가난한 오빠의 아르바이트와 막노동에 그들의 스케이트화를 내 맡길 것인가.

거대한 낭비와 비효율의 축제를 조금이라도 줄여 이들이 마음껏 즐길 스케이트장 하나라도 더 만들어주자. 소치와 평창 사이에 말이다. 컬링장도 몇 개 더 만들고 대한민국 봅슬레이도 만들어 보자. 우리의 디자인과 기술로. 이미 우리는 반도체, 조선, 자동차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닌가.

오늘 이들이 돌아온다.

‘연아야! 고마워’가 인터넷을 들끓게 하고, 국민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 고마워’ 소치의 영웅들이여!

이 땅에 다시는 안현수가 생기지 않도록 이들의 등을 따뜻하게 두드려 주자. 그들은 우리의 영광이자 부끄러움이다. 우리의 민낯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대한민국이여 고개를 들라. 평창의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스케이트 날을 다시 갈자.

평창의 새아침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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