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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왜 가족이 힘들까-중심에 서고 싶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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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왜 가족이 힘들까-중심에 서고 싶은 남자
  • 김원식
  • 승인 2022.09.08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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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상 박사&송유미 교수의 '우리 家 행복한 家' ⑤
송유미 교수.
송유미 교수.

[동양뉴스] '중심에 서고 싶은 남자'

필자가 만난 40대 후반 남성 A씨는 최근 '내가 없는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면서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괴로워했다.

'내가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처음이냐고 물으니 반복되었던 것 같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고등학교 반장 선거때 상대 후보와 동일표가 나왔는데, 친했던 친구가 반장이라면 그래도 키도 크고 말 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상대 후보를 두둔하며 지지 분위기를 만들었고 결국 그렇게 됐다.

그때는 왜 ‘재선거 하자’고 말하지 않았냐고 하니 불쾌하긴 했지만, 자신은 공부는 잘 할지는 몰라도 키도 작고 말도 잘 못하니 반장될 자격이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단다. 

◇ '어린 시절의 열등감'

A씨의 어린시절이 궁금했다. A씨는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 탓에 맞벌이를 해야 해서 주로 할머니랑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할머니는 먹을 것을 잘 챙겨주셨으나 무뚝뚝하고 직설적으로 통제하는 성향이었다.

아버지는 성실하긴 했지만, 자녀들과 필요한 말만 하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와 부모들로부터 칭찬을 받거나 따뜻한 지지를 받은 기억이 별로 없다.

대신 어머니는 자상한 편이었고 다른 형제들보다는 자신과 대화를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A씨는 다른 형제들보다 공부를 잘 해 학업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고 대학도 명문대학교를 나와 대기업에서 15년간 근무했다.

그 이후 변호사가 되고 싶어 뒤늦게 로스쿨 시험도 응시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후 공공기관에 정규직에 입사했지만 3년정도 다니다, 올해 다른 민간기업으로 이직한 상태다. 
 
“왜 남들은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 좋은 직장을 그만 두었냐”는 질문에 그는 “중심에 있지 못하고 늘 변방에 있는 것 같아서 나왔다”고 했다.

A씨는 현재 처한 자신의 상황에 대한 만족보다는 더 높은 곳에 서고 싶고, 그 중심에 자기가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하니 이렇게 말했다.

◇ '투사→역투사→동일시'

"맞아요. 그런데 남들이 부러워하는 곳에 있으면 처음에는 흥분도 되고 좋은데 시간이 흐르면서 어색하고 불편해지고 내가 설 곳이 아닌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상사의 안 좋은 것들이 눈에 보여요.

처음에는 그들이 대단해 보였는데 별 것 아닌 것 같고, 우습게 보여요. 그들도 나를 별로 중요하게 보는 것 같지 않고, 불편해 하고, 우습게 보는 것 같고. ‘내가 왜 이런 사람들하고 일해야 하지? 

나를 인정해 주고, 내가 중심에 설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직장을 그만 두게 돼요.”

A씨에게 왜 상사가 별 것 아닌 것 같고, 우습게 보일까? 상사 역시 왜 A씨를 불편해 하고 우습게 봤을까? ‘투사적 동일시’ 라는 심리기제로 설명이 가능하다. 

A씨는 어릴 적 가정환경에서 오는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내면화되어 있고 그것을 상사를 통해서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보니 상사들의 장점보다 단점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들만 부각시켜보는 것이다. 

그런 자신을 어떤 상사가 좋아하겠는가! 그 상사도 A씨가 불편했을 것이다.

A씨를 존중해 주지 않고 폄하했을 것이다.

A씨가 먼저 상사에게 A씨 자신이 내면화된 대로 대했고(투사), 상사는 A씨에게 조종되고 유도되어 자신에게 대한 것처럼 A씨에게 똑같이 대한 것이다.(역투사)

최종적으로 A씨와 상사는 같은 사람이 되어 있다.(동일시)
  
왜 A씨는 어릴 적 내면화된 것들이 불편하고 힘들었을 텐데도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하는가? 익숙하고 친숙한 것에 편안해하고 이끌리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가정에서의 경험만큼 익숙한 것도 없다.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대상과 상황을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선택하여 어린 시절 경험한 자신의 모습이 재현되기를 바란다. 

◇ '황금률, 재내면화에 적용' 

필자가 감정 반복 원리를 설명해 주자 A씨는 생각보다 빨리 통찰했다.

A씨의 신체적 조건이나 말솜씨만이 자신의 모든 것이 될 수 없고, 그것으로 내면화된 감정들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이 될 수 없다.

어릴적 부모님이 봐주지 못했던 것들, 인정해 주지 않았던 것들, 이해해 주지 않았던 것들, 대접해 주지 않았던 것들, 이 모든 것들을 재내면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원래 자기 것이 될 수 있었던 것들을 부모에게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찾고 회복시켜야 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자기만이 할 수 있고, 할 수 있어야 한다.

A씨는 이제부터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 주어진 상황들, 지나온 자신의 모든 것들을, 자신의 결핍된 부분으로 바라보지 말고, 자기가 바라는 대로 또 받고 싶은대로 바라보고 대해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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