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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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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여정
  • 서다민
  • 승인 2023.05.2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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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범 교수의 세상을 보는 눈
강경범 교수.
강경범 교수.

[동양뉴스] 오월 아 오월이다 세월 속에 간직한 오월의 삶은 그리움, 슬픔, 기쁨, 행복의 언저리에 서서 잠시나마 쉬어가는 듯하다. 해마다 아이와 부모님 그리고 스승님 등 소중한 분들을 맞이하며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애(愛)틋한 의미에 젖어 들며 아카시아 꽃 향기에 취할 때면 사람의 도리를 다한다. 봄볕의 따스함을 접어두고 초여름 들녘의 시원한 바람결에 들리는 개구리울음소리는 심장의 고동에 경종을 울린다. 문득 허우적거리던 지난 시간 어리석은 행동을 반성하며 새로운 삶에 갈 길이 바쁘다. 생각의 틀 속에 가려진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만약 그 시작과 끝이라면 공존의 덧에 가리어진 오월이란 우리에게 과연 무슨 의미로 다가서는 것일까.

세상에 나설 용기가 없었기에 어쩌면 나름 참모습을 찾기 위해 길을 헤매였는지 모르겠다. 이런 연유로 지나온 삼 년 글쟁이의 화두는 대중과의 교감이었다. 그러나 얄팍한 이기심에 아픔을 치유하며 서로를 위안하고 보듬고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던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간다. 쌓아놓은 기억 속 먼지마저 모순을 드러낸 채 어리석은 교감 덩어리로 나타난다. 우리들의 인생마저 가치 없는 갈등을 잉태한 채 깊은 소용돌이에 말리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든지 삶이란 하얀 도화지 위에 슬픈 감성과 기쁨 그리고 행복을 꿈꾸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를 주려 노력하는 것이기에 모두를 사랑하고 싶다. 어느 날 예고 없이 닥친 불행의 민낯을 지우고 모두를 사랑하고 싶은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문명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 속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비추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평등한 죽음의 명제 앞에서 잠시 생각의 끝을 멈추어 본다. 우리는 단순히 인공지능에게 그저 영혼을 팔아먹는 인간의 삶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예고 없이 닥친 가족의 아픔 속에서 나 스스로 나약한 인간의 참모습을 적나라하게 바라보았다. 오래전 가족을 잃고 아픔을 치유하던 모진 세월의 흔적이 있었음에도 눈앞의 막막한 현실은 그저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망함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세상의 이상을 꿈꾸며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햇살이 창가를 어루만질 때 아픔은 세월 속에 고이 접어 잊는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세월의 젓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 아닐까. 슬픔, 괴로움, 기쁨, 행복 등은 또 다른 동기부여를 제공하며 의식의 전환점에 머무른다. 카프만의 저서(著書) 광양의 샘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카프만 부인은 나비가 될 애벌레를 관찰하고 있었다. 여러 개의 애벌레가 있고, 거기엔 나비가 나온 작은 구멍이 있다. 이 작은 구멍에서 큰 나비가 나올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어느 날 작은 구멍으로 한 마리의 나비가 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도저히 그 작은 구멍을 통과(通過) 할 수 없을 것 같아 실험용(實驗用) 가위로 구멍을 넓혀 주었다. 넓은 구멍을 통하여 나온 나비는 윤기나며 좋아 보였지만 힘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펄럭이다 죽어갈 뿐이다. 오히려 고통을 감수하며 작은 구멍을 통과한 나비는 아름다운 날갯짓에 하늘을 날아올랐다.”

인생은 우리 삶의 교실이며 고난은 세월 속에 숨겨놓은 숙제가 아닐까. 잠시 쉬었다 가는 세상 나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용기 내어 기쁨으로 받아들이자. 좀 더 가치 있는 새로운 희망을 위해 많은 시간 고통을 감수하며 이겨내는 것이 가시밭길의 유혹에서 빠져나오는 훌륭한 삶의 지혜이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고,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라 한다. 행복을 곁에 두고 행운을 찾기 위한 방황은 이제 멈추어야겠다.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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