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엑스포과학공원 새로운 비상 꿈꾼다
상태바
대전엑스포과학공원 새로운 비상 꿈꾼다
  • 육심무
  • 승인 2014.05.07 13: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간 기획} 대전세계박람회(The Taejon International Exposition, Korea, 1993) 개최(상)

기사 게재 순서

1. 1993 대전엑스포의 태동과 준비
2. 대회 개최 - 손에 손잡고
3. 대전엑스포 과학공원의 시련
4. 엑스포 재장조 계획
5. 대전엑스포 과학공원의 미래

 

2. 대전세계박람회(The Taejon International Exposition, Korea, 1993) 개최(상)

[대전=동양뉴스통신] 육심무·김혜린 기자 =  ‘93대전엑스포의 정식 명칭은 대전세계박람회(The Taejon International Exposition, Korea, 1993)로 조직위원회가 정한 주제는 ’새로운 도약의 길 (The Challenge of a New Road to Development)'이며, 부제는 ‘전통기술과 현대 과학의 조화’,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이었다.

대전엑스포는 국가가 주최가 되는 정규 박람회가 아니라 국제박람회기구(International Bureau of Expositions)가 공인한 전문 박람회로 주최는  대전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였으며 박람회장과 전시 등 행사에 필요한 비용은 대분분 주최측이 부담했는데 1조7000억원 이상이 투입됐다.

자원 재활용의 부제를 상징하는 자원재생관이 건립됐고, 여기에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씨의 텔레비전을 활용한 작품이 설치돼 높은 관심을 모았다.

최근 이 작품을 보완하면서 수명이 다한 브라운관을 구하려 했으나 국내에서는 이미 생산이 중지된지 오래여서, 가전 기업이 위해 전세계를 뒤져 맞는 브라운 관을 찾아 기증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람회장은 전체면적 90만2000m² 가운데  25만m² 에 조성된 국제전시구역에 설치된 전시관들은 중국과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등 몇 개 국가를 제외하고는 전시라고 하기 조차 민망한 시설들이 많았다. 

중국은 화약과 종이의 최초 발명국가임을 내세워 과학발명품을 소개하는 한편 공예 예술을 시연했는데 쌀알에 글자를 새기거나 인물을 조각하는 쌀알 공예시연장이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전시관은 선진 전시와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강렬하게 소개한 것으로 유명했다. 책상과 의자, 구두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생활용품 들을 조명과 색조, 재료의 질감을 살린 전시 기법은 단연 백미였고, 국내 기업들이 훗날 가장 많이 벤치마킹한 사례였다.

미국은 우주왕복선 앰배세더 호의 실물모형을 전시했고, 러시아는 미르 우주 정거장과 동일한 모형을 수송 전시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일부 언론사에서 항공촬영한 사진을 미르 우주정거장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보도하는 오보 소동도 있었다. 

컴퓨터 분야를 선도했던 미국의 다국적 회사는 유형적인 전시물 보다 ‘생각하라(think)'라는 주제로 관람객들이 수동적인 입장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능동적으로 찾으라는 보기드문 진보적인 개념을 선보였다.
 
외국의 먹거리도 관심을 끌었는데 영국은 우리의 선술집 형태인 펍을 설치해 흑맥주를, 독일도 자국산 맥주와 소세지를 파는 매장을 설치해 전시관 보다 많은 방문객이 몰리기도 했다. 

또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생선요리를, 뉴질랜드는 양고기, 몽골은 만두 등을 내놓기도 했다.

참가국 수에 비해 국제전시관에 입주한 개발도상국들의 상당수는 전시품은 거의 없고, 기념품 가게 수준이었다.

해외여행이 드문 시절이어서 외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의 악세서리 등 소품들이 잘팔렸고, 폐막을 앞두고는 재고정리 세일이 벌어지는 등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눈독일 들이는 수준 이하의 상행위로 인해 조직위가 언론의 질타를 많이 받은 사례였다.

대회를 상징하는 한빛탑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공법으로 건립한 시설로 원형의 전망대를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설치하는 장면이 전국에 방영될 만큼 관심을 모은 건축물이었다.

대전엑스포의 상징 기념물인 한빛탑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개막식에서 “저 탑은 더 높은 곳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 우리 민족의 기상이며, 대전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지금까지 대전의 상징물로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우리 모두 대전엑스포를 통하여 세계로 미래로 나아기고, 첨단과학과 자랑스런 민족문화를 접목시켜 인류문명의 새로운 빛으로 승화시키자”고 강조했는데, 그 후 오랫동안 ‘세계로 미래로’로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가 되기도 했다. 

국내전시관은 20세기 말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는데, 관람객들을 사로 잡은 기술은 입체 영상과 아이맥스 영상관이었다.  

보조안경을 착용하고 관람해야 하던 입체 영화는 평면 스크린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신세계였으며, 초대형 아이맥스 영상은 웅장한 감흥을 선사했으나 대회 후 영상물의 부족으로 명성을 이어가지 못했다.

자기부상열차관에서 중앙과학관까지 운행하던 자기부상열차는 우리나라가 최초는 아니지만 실용화가 가능한 첨단 기술로 승차 체험이 가장 어려울 만큼 관람객이 몰렸다.

올해 들어서 대전이 도시철도 2호선 차량 기종을 자기부상열차로 선정하면서 20년만에 대전에서 다시 화제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당시 선보였던 과학기술 가운데 종합정보통신망을 활용한 칼라 동화상 전화기는 데이터 전송속도가 128kbps라고 자랑했다. 

지금의 휴대폰에 비하면 장난감 수준이겠지만 무선호출기가 보편적인 최신 통신망이었던 대전엑스포장에서는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의 대명사였다. 

엑스포에 맞추어 항공우주과학연구소에서 기상관측용 과학로켓을 제작해 발사했는데 당시 로켓의 낙하시까지 총 비행시간은 247.9초, 도달한 최고 높이는68km였다.

한 여름 개장한 대전엑스포 대회장은 개장 초기 그늘이 없어 뜨겁고, 쉴 곳도 없으며, 음식은 질은 낮고 가격은 비싸다는 비난이 몰아쳤다. 

행사 참석차 내한한 외국 인사는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사례비를 얼마 줄꺼냐고 물고 화제가 됐고, 대회조직위는 언론사들에게 통신비용을 각자 부담해 전화와 패시밀리 등을 설치할 것을 요구하는 등 국민 정서와 시절에 비해 한 박자 빠른 상업화를 시도했으나 여론의 뭇매만 맞고 도루묵이 됐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박람회장을 찾는 인파가 급증했고, 속칭 인기 전시관은 입장하려면 한나절을 줄을 서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시관별 예약제를 시행했으나 몰려드는 인파를 감당할 수 없었고, 소위 힘있는 인사들의 인기전시관 새치기가 매일 기사가 될 정도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