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순교자 김기량 제주출신 첫 복자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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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순교자 김기량 제주출신 첫 복자 탄생
  • 김재하
  • 승인 2014.08.1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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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16일 시복...도내 천주교신자 효시, 병인박해로 교수형


[제주=동양뉴스통신] 김재하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방문 기간 중에 중요한 일정 중의 하나로 한국 순교자에 대한 시복식이 꼽히고 있다.

오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교황이 시복식을 주례하는 시복 대상 가운데 제주 출신 김기량(세례명 펠릭스베드로, 1816~1867)이 유일하게 포함돼 도내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김기량은 제주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로 이번에 복자품(福者品)에 오른다.

복자품(福者)는 천주교에서 성인으로 인정하기 전에, 공식으로 공경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지위를 뜻한다.

이번에 시복되는 124위는 초기 한국천주교의 순교자들이다. 신유박해(1801)때 희생자가 53위로 가장 많고, 신해박해(1791), 을묘박해(1795), 정사박해(1797), 을해박해(1815), 정해박해(1827),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1888) 등에 걸쳐 있다.

순교지별 순교자 수를 보면 한양(서울)이 38위이며, 경상도 29위, 전라도 24위, 충청도 18위, 경기도 12위, 강원도 3위, 제주도 1위다.

제주출신으로 유일하게 시복을 받는 김기량은 조천읍 함덕 출신 무역상으로 1857년 항해 중 풍랑을 만나 표류한 끝에 중국 광동성 해역에서 구조돼 홍콩의 파리 외방전교회에 인도됐다.

그곳에서 김기량은 조선인 신학생에게 교리를 배워 그해 세례를 받으면서 제주 출신 첫 천주교 신자가 됐다.

김기량은 제주에 공식적으로 가톨릭 교회 공동체가 형성되고 전례행위가 시작되기 이전에 고향에 돌아와 전교활동을 펼쳤다.

김기량의 활발한 전교활동으로 당시 예비신자를 포함 40여명으로 늘어났다.

그후 김기량은 병인박해(1866)때 체포돼 모진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이듬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천주교제주교구는 이같은 김기량의 순교가 제주 천주교 신앙의 밑거름이 됐음을 인정, 2001년 시복시성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김기량의 시복시성을 위한 꾸준히 노력해 왔다.

그동안 김기량 순교 자료집 발간, 현양대회 등을 열었고 그의 이름을 딴 합창단도 만들어졌으며 그의 고향인 조천 함덕리에 순교비도 건립됐다.

천주교 제주교구 순례길위원회도 제주도·제주관광공사와 함께 순교자 김기량의 신앙과 제주 문화 유적 등을 돌아보는 순례길인 '김기량 길(영광의 길)'을 지난 6월 21일 개통하기도 했다.

김기량 길은 조천성당∼조천포구∼환해장성∼신흥포구∼함덕포구∼함덕해변∼서우봉 입구∼김기량 생가 터∼김기량 순교현양비에 이르는 9.3km로 조성돼 있다.

천주교 제주교구 관계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과 함께 제주출신 첫 복자 탄생은 제주교구의 큰 경사이며 영광"이라며 "김기량 복자의 순교정신과 삶이 제주교구 신자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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