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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의 삶을 닮은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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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의 삶을 닮은 팽나무
  • 정효섭
  • 승인 2014.08.25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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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양뉴스통신] 정효섭기자 = 처음 구좌읍으로 출근하던 날은 매서운 바람이 불던 겨울날이었다.  

동복마을을 지나갈 때 내 눈을 사로잡는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초록의 옷을 입지 않은 앙상한 가지만을 드러낸 거대한 나무였다.

동복마을안의 오래된 노거수로 보이는 나무는 그간의 세월을 보여주듯 외과수술을 받은 흔적도 있었다. 거센 바람을 그대로 버텨내어 보통의 나무들처럼 곧게 자라지 못하고 바람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고스란히 새겨놓고 있었다.

그 나무는 보호수인 팽나무로 실제로 마주한 느낌은 달리던 차에서 보던 것보다 더 압도적이었다.  

제주에는 이처럼 보는 이를 압도하는 커다란 팽나무가 있는 마을이 유난히도 많다. 하지만 압도적 외관과는 달리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등 마을의 문화가 형성되는 장소로써 마을과 함께 오랜 세월을 지내온 정겨운 나무이다.

제주사람에게는 팽나무보다 ‘폭낭’, ‘퐁낭’으로 부르는 것이 더 친숙한 나무이다. 제주의 거친 비바람과 태풍을 견뎌내며 우직하게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척박했던 삶을 이겨나간 제주인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가끔 제주인의 모습을 닮은 팽나무가 서울의 빌딩이나 아파트 단지의 조경을 위해 심어져 제주팽나무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기사나 사진을 접하게 된다. 그럴 때면 자리를 지키던 팽나무가 사라짐으로써 시간과 추억을 공유하던 장소들이 없어져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제주의 거친 바람을 이겨내며 자란 나무들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잠깐의 즐거움을 주겠지만 스쳐지나갈 뿐 애틋하지 않을 것이며, 갑갑한 고층건물의 나무가 제주의 풍광 속에 어우러져 있던 것처럼 같은 멋을 내지는 못할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올해 1월 1일부터 제주특별자치도 보호수 및 노거수 보호관리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관공서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소중한 자원인 팽나무뿐만 아니라 보호수 및 노거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가지만 앙상했던 나무는 바람을 그대로 안으며 세월의 무게를 더하였고 여름의 끝자락에 이르러 초록이 무성한 나무로 변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나도 팽나무와 같이 바람을 품고 우직하게 성장해 나가는 공직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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