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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점령 시위의 진짜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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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점령 시위의 진짜 원인
  • 최호현
  • 승인 2011.10.23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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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점령 시위가 놀라운 기세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아시아, 호주를 거쳐 로마,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순식간에 지구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파죽지세라는 말은 이럴 때 쓰이는 말인가 봅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이자 보수언론도 분석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번 시위가 소수 금융자본의 탐욕에 대한 저항이라고 주장합니다.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몇몇의 탐욕이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거죠. 하지만 그렇게 몇몇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저항의 판이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세상은 이미 그들의 빈곤한 상상력 밖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정도 규모의 저항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대략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일단, 저항을 위한 물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두 번째로, 기존 체제에 대한 기대가 철회 되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자신감입니다.

월가점령 시위의 진짜 원인

월가 점령시위는 첫 번째 원인은 두말 할 것 없이 빈곤과 실업, 그것도 <구조화된> 빈곤과 실업입니다.

지난 30년간 미국의 GDP는 두 배 늘었지만 미국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제 자리 걸음을 했습니다. 1970년에 비해 미국 상위 0.1%의 소득이 385% 증가한 반면, 하위 90%의 소득은 1% 줄어들었습니다. 덕분에 미국은 세계적인 빈곤 대국이 되었습니다.

이런 수치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빈곤과 실업이 일상화, 구조화 되었다는 점입니다.
신자유주의 정부의 등장과 함께 자본은 공권력을 앞세워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시작 했습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임금은 삭감 되었습니다. 고삐 풀린 자본은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옮기기 일쑤였고, 그 때마다 노동자들은 실업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뒤 이어 기술 혁신, 효율화란 미명 아래 인력 감축, 구조조정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또다시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애플이 막대한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지만 미국에서 4만여 명을 고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이폰은 중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실업이 만연하고 실업자들 사이에 경쟁 압박이 커지자 임금은 계속 하락했고, 노동 조건도 악화 되었습니다.
성장의 과실이 더 이상 일자리 확대와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시스템은 이렇게 구조화 되었습니다.

이런 일상화, 구조화된 빈곤과 실업이 월가점령 시위의 첫 번째 원인입니다.

두 번째, 기존 체제에 대한 기대는 어떻게 철회 되었을까요?

결정적 계기는 2008년 공황이 제공했습니다.

앞서 말한 일상화 된 빈곤과 실업에도 불구하고 이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버블의 영향이 컸습니다. 당장 지갑에 돈은 없지만 각종 거품을 일으켜 가상의 소득을 만들어 주었던 겁니다.
그 방식은 간단합니다. 일단 주식이나 집을 삽니다. 주가나 집값이 오르면 자산 가치가 덩달아 올라갑니다. 호주머니에 돈은 없지만 집이나 주식을 팔았을 때 차익을 생각하면 재산은 늘어난 셈이 됩니다. 사람들은 주가나 집값이 계속 오를 거라 생각하고 빚을 내서 주식, 집을 사기 시작합니다. 실제 몇 년 동안 주가와 집값이 오릅니다. 그 대가로 집집마다 빚이 쌓여가지만 아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헛된 기대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이게 2007년까지의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2008년, 이 거품이 뻥 하고 터져버리고 만겁니다. 순식간에 재산이 반 토막, 4분의1토막이 났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원래 없었던 것이지만 말이죠. 그러고 나니 안개가 걷히듯 체제의 맨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거품이 만든 환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임금 소득은 줄어들었고 반대로 빚은 쌓여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아차 내가 속았구나”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소득도 일자리도 없지만 거품과 빚에 의존해서 유지되어 오던 자본주의 메커니즘은 이렇게 붕괴되었습니다. 모든 기대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2008년 그 온순하던 미국인들이 “우리 세금으로 금융자본을 살리지 말라! 복지를 확충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시위는 지금과 같은 폭발력을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3년 뒤 월가 점령시위에 폭발력을 더해 준 것은 자신감입니다. 중동 민중들이 독재정권을 전복시키는 모습이 세계 민중들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겁니다. 실제로 월가점령 시위의 군중들은 “아랍의 봄, 미국의 가을”이라고 말합니다. 아랍 민중의 저항이 월가점령시위에 그만큼 큰 영향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중동 다음은 북한이 아닌 미국이 되었던 겁니다.

월가 점령 시위의 미래

월가점령 시위는 위의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촉발된 세계적 저항입니다. 상황 분석은 여기까지 하고 앞으로 이 시위는 어떻게 될까요?

첫째, 점령시위의 첫 번째 원인인 빈곤과 실업은 부자들이 조금 더 세금을 내고 기부를 늘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난 3년 동안 미국 정부는 쓰러져 가는 자본을 살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지만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단 한 푼의 돈도 쓰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이 체제에 더 기대할 것이 없다는 점도 갈수록 분명해져 가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공황의 불을 끄기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파국을 막기 위해 미국이 쏟아 부은 돈만 5조 달러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불을 다 끄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불씨가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쓰러져 가는 자본을 구출하려고 그만큼의 돈을 쏟아 부었으니 당연히 나라 빚이 폭증했겠죠. 이제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국가마저 파산 압력에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다급해진 정부는 복지 지출을 삭감해 빚을 줄이려 합니다. 이에 반대하는 저항의 주체들이 대거 생겨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세계 여러 나라들이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 체제가 미래가 없다는 점이 갈수록 분명해 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중들이 저항을 통해 자신감을 쌓게 된다면, 저항은 눈덩이처럼 커져 갈 것입니다.

이 시위는 몇몇 개인의 탐욕에 대한 저항이 아닌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입니다. 시스템을 갈아치우지 않는 한 저항은 더 커져 갈 것입니다. 우리 앞에 진정한 저항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최호현 자본주의연구회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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