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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이 부흥해야 국가가 산다” 신념... 농촌개발에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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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이 부흥해야 국가가 산다” 신념... 농촌개발에 헌신
  • 백형모
  • 승인 2011.11.0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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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탐구> 이개호 전남 행정부시장...大洋 향한 항해 시작
도청에서 ‘가장 존경받는 공무원’ 최고 큰 표창장으로 간직
 ‘농촌이 부흥해야 국가가 산다’ 신념...농촌개발에 헌신
 
▲     ©동양뉴스통신
지난 10월 17일 아직도 영암벌을 달구던 자동차의 굉음이 가시지 않는 시각. 이개호 전라남도 행정부지사가 명예퇴임식을 가졌다.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30여년을 몸담았던 도청을 떠나는 날이었다.
 
이개호 부지사는 퇴임사에서 “굵직굵직한 지역 현안사업들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여러 공직자들과 함께 밤새워 고민하고 노력했던 날들을 가슴 깊이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일부 공무원들은 큰 발걸음에 격려를 보내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이 부지사는 1981년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첫 발을 내디딘 후 30여 년의 공직생활 중 중앙 부처와 부시장 시절 등을 제외한 20여 년을 전남도청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이제 더 큰 봉사를 위해 과감한 출사표를 던졌다.
 
선출직이 아닌 일반 공직자로선 최고의 영광이라 할 수 있는 ‘전라남도 부지사’ 자리를 박차고 험난한 가시밭길을 자처하고 나섰다.
 
‘청춘과 열정을 바쳐 일해 온 전라남도’를 위하고 자신을 낳고 길러준 본 고향을 위해 과감히 거친 대양으로 항로를 바꾼 것이다.
 
내년 제19대 총선은 자신이 고향을 위해 일 할 수 있는 등판 무대다. 담양과 구례 곡성을 개척해 나가야 할 지역이다.


“농촌문제를 해결하려면 이개호를 불러라!”

이개호 전 행정부지사는 '전남도정의 마당발'로 불렸다. 전남도정 뿐만 아니라 중앙부처에서도 그 행정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전 부지사는 담양군 대전면 서옥리 출생이다. 어렸을 적에 고향에서 학교를 다니다 6학년 때 광주로 전학을 왔다.
 
그래서인지 농촌을 알 만큼 아는 사람이다. 농촌이 잘 살아야 전남이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이 확고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농촌은 학구열은 높으나 잘 가르치기가 어려웠다.
 
‘내 자녀를 도시학교에 보내고 서울의 어엿한 대학교까지 보내야 하는데...’ 농촌 부모님의 꿈은 한결같았다. 하지만 학비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전라남도 기획계장 시절에 ‘남도학숙’을 설립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가정이 어려워 서울 지역에 학교를 보낼 수 없는 지역민에게 도움을 주고 학생들에게 꿈을 키울 수 있는 터전을 만들자는 의도였다. 당시 도민성금을 기반으로 전남도에서 출연하여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에 9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호텔 수준의 기숙사를 짓자고 한 것이다.
 
1990년에 착공한 이 시설은 지금까지 호남 지역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전 부지사는 92년부터 94년까지 전남도 농업정책과장을 맡았다. 당시는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이 진행돼 한국 농촌에 위기감이 돌고 있었다. 외국의 값싼 농수산물이 흘러들어오면 농촌의 파탄을 불 보듯 뻔했다. 당연히 전남도에도 불똥이 떨어졌다.

‘농업이 주 무대인 전남 농업의 미래를 어떻게 하면 보장 할 수 있을까?’ 이 전 부지사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선진사례를 분석하며 전문가를 만나 지혜를 짜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농촌 학생들에게 농촌에 머물면서 대학에 진학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부에 농어촌 특례입학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이것은 오늘날 이 제도가 정착한 배경이 됐다.
 
또 농촌 공동체가 해체될 위기감이 있다고 판단, 대대적인 농촌재개발 사업을 착수했다. 농촌 빈집 재활용과 행복마을 조성, 한계농지 생산화 방안, 직불제 도입 등을 정부에 건의하고 도정에 반영해 나갔다. 이어 매년 줄어가는 학생들을 효율적 학교로 전환하기 위해 농어촌 시군 단위별 초중고를 권역별로 묶어서 관리하는 통합캠퍼스 체계를 주장했다.

이러한 발상은 참으로 시기적절한 것이었으며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해 한국 농어촌을 살리는 정책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부지사의 이러한 노력은 정부에서도 널리 알려져 청와대와 농림식품부 등에서 농어촌 정책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전라남도에 있는 이개호를 불러라’는 소리가 자주 들릴 정도였다.

폭넓은 시야... ‘전남의 미래를 설계하다’

이개호 부지사는 ‘전남의 아이디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수 많은 정책을 개발하고 현실성 있는 대안들을 찾아나갔다.
 
전라남도 관광문화국장 시절에 ‘미래 전남 관광방향’을 설계하면서 앞으로 관광은 ‘오감만족을 위한 체험형’이 필연이라는 생각으로 정책을 주도해 나갔다. 그리고 천혜의 관광 자원을 가진 전남은 휴양을 겸한 체류형, 주말농원, 가족단위 펜션 위주로 전략을 수립해 나갔다. 이러한 정책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또 환경 보존형 개발정책도 자신이 철저하게 지켜나간 지론이었다.

이 부지사는 남부지역 최고의 산림자원인 광양 백운산의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해 해발 500m 이상에 대해서는 개발을 억제하고 저지대에 한에서 꼭 필요한 개발을 허용하도록 했다. 일본이 후지산을 개발 할 때 적용해 오늘날 최고의 관광지로 남게한 정책을 연구한 것이었다. 이에대해 한 때 일부 자신들의 재산권만을 위해 적극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오늘날 백운산 일대가 깨끗이 남아있는 원인이 됐다.

이와함께 섬진강변에 가든이나 숙박업, 또는 음식업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시계획구역 200~300m이내만 개발을 허용토록했다.
 
당시 이같은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결과 섬진강의 맞은편 지역은 지저분한 모텔.음식촌으로 변해버렸으나 광양쪽은 자연 그대로 아름다운 경관을 보존하고 있는 최고의 미래 개발가능 자원으로 남아있다.

이 부지사는 전남 전역의 SOC확충에도 남다른 견해와 노력을 다해왔다. 일반 도로로 분류되던 여수산단진입도로를 법령을 찾아 국가산단으로 해석, 1조원에 달하는 사업비 전액을 국비로 충당시켜 지역민을 흡족하게 만든 것을 비롯, 여수-순천 자동차전용도로 신설, 미래 해상교통 시대에 준비하기 위한 여수-고흥 연도교 착공, 광양-여수 이순신대교 착공 등도 정부 각 부처를 찾아다니며 땀 흘려 일군 뜻 깊은 결실들이다.
 

▲     ©동양뉴스통신
“사람이 재미지게 살만한 농촌 만들겠습니다”

이개호 전 부지사 인터뷰

“천혜의 자원을 가진 전남이 아직까지도 낙후 지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전남이 미래 발전에 부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제부터 큰 비전으로 지역 발전에 공헌할 계획입니다. 전남이 사람이 살만한 고장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최근 고향에 다시돌아와 주민들과 함께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이개호 전 부지사는 ‘할일이 많다’며 분주한 발걸음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하루 일과는 주민들의 기대와 바람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지역민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고민 중이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농촌의 현실을 발로 체험하면서 농촌 소득향상과 지역 개발, 그리고 주민 복지 향상이란 세 마리 토끼 잡기에 원대한 이정표를 세웠다.
 
구곡순담이란 장수벨트를 새롭게 그려보고, 곡성은 돈이 되는 친환경 농업, 구례는 관광.숙박.펜션.레저 산업의 집중화, 담양은 생태산업단지로의 전략화 등을 꿈꾸며 현장을 누비고 있다.
 
전라남도 행정부지사를 끝으로 30년 공직 생활 가운데 가장 값진 표창장이 있다면 직원들이 뽑은 ‘가장 존경받는 공무원’으로 선정된 것이라고 말하는 이개호 전 부지사.
 
평소 등산을 좋아해 ‘나는 산으로 간다’라는 제목의 저서를 펴내기도 했던 이 전 부지사는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열심히 하면 누군가 그 열정을 알아주리라 믿습니다”라며 말보다 실천을 선언했다.
 
광주 금호고(2회)와 전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개호 전 부지사는 1981년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첫 발을 내디뎠다. 전남도 기획관, 김대중대통령직 인수위 행정관, 도지사 비서실장, 관광문화국장, 목포부시장, 여수부시장, 자치행정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치면서 동료나 직원들로부터 '이개호만 오면 좋겠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조직의 신뢰를 받아왔다. 중앙에서는 행정안전부 공무원 노사협력관, 행정안전부 기업협력지원관 등을 역임하는 등 중앙과 지방 행정을 두루 거친 정통 행정전문가다. 2009년 7월 제35대 행정부지사로 취임, 2년3개월만에 명예퇴직했다. [특별 기획 / 백형모 객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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