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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의 남자’ 이정현, 첫 호남 출신 새누리 대표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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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의 남자’ 이정현, 첫 호남 출신 새누리 대표 선출
  • 김영대
  • 승인 2016.08.10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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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처 직원서 호남출신 최초의 보수정당대표까지…친박, 당 지도부 장악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당대표, 당대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서울=동양뉴스통신] 김영대 기자= ‘朴의 남자’, 호남 출신 이정현 의원(58·전남 순천·3선)이 새누리당 신임 대표로 선출돼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9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4차 전당대회에서 전남 곡성 출신인 친박계 3선 이정현 후보가 비박계 단일 후보인 대구출신 4선의 주호영 후보에게 1만2000표 이상의 차이로 누르고 당 대표로 뽑혀 영남 기반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에서 사상 첫 호남 출신이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 후보는 당원, 대의원 투표(70%)와 국민 여론조사(30%) 합산 결과 당원, 대의원 투표와 여론조사 모두 주 후보를 압도하며 총 4만4421표(40.9%)를 얻어 3만1946표(29.4%)에 그친 주 후보를 1만2000여표 넘게 따돌리고 1위로 당선됐다.

이주영 후보는 2만1614표(19.9%), 한선교 후보는 1만757표(9.9%)로 각각 3, 4위에 그쳤다.

친박계 이정현·이주영·한선교 후보의 득표 합계가 70.6%를 차지하면서 ‘친박 패권’ 심판이라는 지난 4월 총선 민심과는 정반대로 친박계가 당 지도부를 차지하면서 새누리당은 ‘도로 친박당’이 됐다.

또 이 신임 대표를 포함해 이날 함께 치러진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지도부 6자리 중 5명의 최고위원도 친박계가 휩쓸었다.

여성 및 청년최고위원을 포함해 5명 중 4명의 최고위원은 친박계 차지였고, 비박계는 강석호 의원 한 명뿐이었다.

청년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유창수 글로벌정치연구소장도 친박계로 분류된다.

신임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3선의 조원진 의원은 4·13총선 당시에는 ‘진박 감별사’로 불리며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대립하기도 했으며, 대전 동구청장 출신으로 재선인 이장우 의원은 지난해 7월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사태 당시 선두에서 유 전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했다.

여성 몫 최고위원인 최연혜 의원은 초선 비례대표의 한계를 극복하고 비박계 재선의 이은재 의원을 누르고 선출됐다.

이에 반해 김무성 전 대표의 고교 후배이자 최측근으로 불리는 3선의 강석호 의원은 3위로 비박계 유일한 최고위원이 됐다.

이정현 대표는 대표직 수락 연설에서 “이 순간부터 새누리당에서 친박이나 비박, 그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다”며 “당연히 패배주의도, 지역주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 출범한 지도부는 죽어야 산다는 각오로 당 시스템, 관행, 의식을 바꾸는 데 매달릴 것”이며 “국민들은 지금까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정치개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죽어야 산다는 생각으로 ‘낡은 정치’를 쇄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민생 문제만큼은 야당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여당의 책임으로 정책과 예산과 법안에 반영하겠다”고 논했다.

또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 방황하는 청년들 문제부터 시작하겠다”며 “모든 답은 현장에서 찾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표는 스스로를 ‘비주류의 비주류’ ‘훍수저 출신’이라고 일컫는다.

그는 전남 곡성 출신으로 1985년 구용상 전 민주정의당 의원 비서로 정계에 입문해 민정당 최말단인 간사 ‘병’으로 당직 생활을 시작했지만 당에서는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호남에서는 ‘영남당’ 출신이라는 이유로 항상 배제돼 주변을 맴돌아야만 했다.

그러던 중 2004년 당 수석부대변인이었던 이 대표에게 박 대통령이 공보 역할을 맡기면서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달라졌다.

박 대통령이 2007년 대선 경선에서 패한 뒤 칩거에 들어갔을 때는 이 대표가 박 대통령의 ‘대변인격’으로 언론과의 소통을 도맡으면서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했다.

이 대표는 이날 전당대회 정견 발표 때도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등 뒤에서 저를 비웃을 때도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 준 박근혜 대통령께 감사함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됐지만, 19대 총선 때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홍보수석에서 물러난 뒤 7·30 보궐선거 때 고향인 전남 순천·곡성에 출마해 승리하며, 18년 만에 처음으로 호남에 보수 여당의 깃발을 꽂은 기적으로 ‘지역구도 타파’의 상징으로 평가 받았다.

더불어 20대 총선에선 선거구 재획정으로 인해 변경된 지역구인 순천에 출마해 야당 후보를 꺾고 당선돼 3선 의원으로 국회에 재입성했다.

한편, 이 대표의 당선으로 향후 당·청 관계는 공조 면에서 더욱 긴밀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당청관계가 수직적으로 되지 않냐는 우려도 지적된다.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의 의원 시절부터 공보특보와 대변인을 지냈고, 청와대에서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역임한 바있다.

이 대표는 “새누리당과 대통령은 공동운명체다. 지금까지 봐 온 당·청 관계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라며 “청와대·정부와 국민 사이에 괴리가 있다면 신속·정확하게 청와대에 전달하겠다”고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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