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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면 절대로 안 되는 12월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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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면 절대로 안 되는 12월의 자취
  • 장영주
  • 승인 2012.01.0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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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의 국학사랑 나라사랑>동족간 전쟁으로 본 왜란·호란
지금 우리 정치 현실과 어찌나 닮았는지 모골이 송연한 '뼛속의 기록들'

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 12월 초부터 1637년 1월 사이에 벌어졌다. 병자년에 시작하여 이듬해인 정축년에 끝났으므로 병정노란丙丁虜亂이라고도 한다. 청 태종 홍타이지는 과감하고 치밀하게 명과의 건곤일척을 준비하면서 후환의 싹을 자르려고 조선을 침략한 것이 병자호란의 실체이다.
 
전란戰亂이라는 말이 있듯이 전戰은 외국과의 국가적 전쟁이고 란亂은 홍경래의 난, 6.25동란처럼 동족간의 싸움을 칭한다. 우리의 역사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은 동족간의 전쟁으로 본 것이다.
 
후금은 1627년(인조 5년) 1월 중순부터 3월 초순까지 정묘호란丁卯胡亂을 벌려 조선과 형제兄弟관계를 맺고 돌아간다. 냉엄한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읽고 있던 광해군은 명, 청 사이의 중립외교를 펼치니 그것이 불만인 조선의 지도자들은 인조반정을 감행한다.
 
새로 들어선 조정은 광해군과는 반대로 ‘친명반청親明反淸의 정책을 쓴다. 그러나 10년 동안 더욱 강력해진 청은 조선에게 군신君臣관계를 요구하니 명明과 청淸, 두 임금을 섬겨야 하는 기막힌 처지가 된 조선왕조는 나름대로 결전을 준비한다.
 
20만 명의 팔기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단, 일주일 만에 한양에 도착한다. 실로 화살 같은 진격 속도이다. 모진 추위 속에서 남한산성으로 쫓겨 들어간 인조에게는 만 3천명의 군사와 한 달 분의 식량밖에 없었으니 무엇 하나 희망이 없었다. 결국 인조께서는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수없이 절을 하고 눈밭에 꿇어 앉아 항복을 청한다.
 
고려는 백성이야 어찌 되었던 세계 최강의 몽골에 대하여 40여 년간 항쟁을 했고, 임진왜란에서는 7년간의 싸움 끝에 왜군을 격퇴한 데 비하여, 그로부터 38년 뒤의 병자호란은 불과 단 두 달 만에 조선은 임금이 직접 항복을 한다.
 
승전국 청淸의 12명의 황제와 황족의 성씨는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니 곧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말자는 뜻이다. 조선의 조정 대신들은 명明의 임진왜란의 파병으로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거론하며 화석화된 명분에 사로 잡혀있었다. 철저하게 명나라를 신봉하면서 동족일 수 있는 후금을 줄곧 오랑캐라고 경멸하면서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일관한다. 불과 두 달 만에 조선은 참극의 땅이 되었다.
 
결국 청나라를 임금의 나라로 섬길 것,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을 것, 조선의 왕자, 신하의 자손을 인질로 보낼 것, 청 태종의 생일 등의 경사에 사절을 보낼 것, 청이 군대를 요청하면 즉시 보낼 것, 성을 쌓거나 수리하지 말 것의 항복 수락을 받고 청은 물러간다.
 
이로써 50만 명의 부녀자와 화살받이 남자들이 청으로 끌려갔고 몇 년 뒤 돌아온 이 여인들은 손가락질하는 냉대와 멸시를 견디다 못해 목을 매 자살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들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남자들에게 있음에도 결국 모진 고생 끝에 목숨을 걸고 탈출한 조선 여인들은 목을 매거나 비참한 상태로 전락한다.
 
1649년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효종은 삼전도의 치욕을 씻기 위해 조심스럽게 북벌을 추진하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병자호란은 당시 조선 정부의 외교적 실책과, 약체인 군사력, 무엇보다 명明이 기울고 청淸이 일어서던 대외對外정세에 대한 중대한 판단 미스로 불러들인 인재요 더 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임진왜란이 ‘이비이비’(耳鼻耳鼻, 애비애비, 귀와 코 베어 간다.)라는 속담을, 병자호란은 환향녀(還鄕女,화냥년)라는 속담을 만들어 낸다. 어쩌면 이토록 지금의 우리 정치의 현실과 닮았는지 모골이 송연하다.
 
이로부터 39년 전 1598년 11월 19일 추운 남해바다 관음포觀音浦에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돌아가신다. 충무공께서 생명으로 나라를 지키신지 불과 40년이 안되어 조선의 조정은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또다시 병자호란의 비극을 맞이하는가!
 
충무공의 전몰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통영 충렬사(박형균 이사장)의 주도로 매년 12월 16일 기신제忌辰祭를 올린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다음 해인 1599년에 통영백성들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조선에서 제일 처음으로 착량묘鑿粱廟가 건립된다. 매년 이곳에서는 통영의 주민, 국민과 관계자, 해군들이 모여 정성을 다하여 그분의 숭고한 뜻을 기린다.

한편 장군께서 순국하신지 304년 뒤인 1902년 12월 16일 유관순이 이 땅에서 태어나고 나라를 위한 짧은 생을 마치니 이 또한 거두고 내는 하늘의 뜻이다.

12월 19일 상해의 홍구공원에서 1932년 4월 29일 일본의 천장절과 전승기념 축하식 단상에 수통형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벌인 윤봉길 의사(1908 ~1932,12, 19)께서 25세의 나이로 순국하신다.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 윤봉길 의사 유서 中에서 -

경북 영해면에는 도해단蹈海蹈海이 있다. 경북 영양 출신의 벽산 김도현 碧山金道鉉 의병장께서 이른바 '도해(蹈海)‘로써 순국하신다. 그는 1910년 국권을 상실하게 되자 순국의 뜻을 품었고 부친의 장례를 마친 뒤 순국 전날 절명시를 짓고 추운 바다로 걸어 들어가서 자살을 하신다. 1914년 12월 23일, 그의 나이 64세이다.

‘오백년 말에 태어나 붉은 피 온 간장에 엉키었는데 중년의 19년 동안 머리카락만 늙어 가을서리 내린 듯하네. 나라가 망함에 눈물은 하염없으며 어버이 여의니 마음 또한 아파라. 홀로 선 옛 산은 푸른데 온갖 계책 헤아려도 아무른 방책이 없네. 만 리길에 바다를 보고자 하니 이례가 마침 동짓날이라. 희디 힌 저 천리 길 물속 내 한 몸 넉넉히 간직할 만 하여라.

1910년 12월 24일 안동 땅의 백하 김대락(白下 金大洛 1845-1914년)이 식솔을 이끌고 고향과 조국을 떠난다. 김대락은 안동 임하면 천전리 내앞 마을 권문세가인 의성김씨 가문의 장자로 태어났다. 부친은 금부도사를 지냈고 사람 천석, 글 천석, 살림 천석이라 해서 삼천석 댁으로 학문과 경제력을 두루 갖춘 명문 집안이다.
 
그의 막내 여동생은 가히 대한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향산 이만도의 맏며느리 김락(金洛 1862~1929)이다. 김락은 예안의 삼일만세를 주도하고 일본 경찰에 모진 고문으로 두 눈을 잃고 11년 동안 고초를 겪다가 사망한다.
 
큰 오빠 백하는 협동학교의 신교육이야 말로 때에 따른 올바른 조치요 때에 맞는 도리라고 인식한다. 자신의 집을 협동학교 교실로 제공하고 학교의 확장에 노력하니 당시 황성신문은 그의 사상적 변화를 <교남 교육계의 새로운 붉은 깃발> 이라 칭송하였다. 백하의 변화는 안동 향중은 물론 영남 유림사회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그는 66세의 노구와 식솔을 이끌고 단군의 도읍지로 망명을 택하여 영영 고향과 조국을 떠난다.
 
식민지에서는 살기도 죽기도 묻히기도, 자손이 태어남도 싫었던 것이다. 고향인 내앞 마을을 떠나 서울을 거쳐 이듬해인 4월 19일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에 도착하니 실로 무서운 간도땅의 추위를 뚫고 거친 장장 4개월의 유랑이다.
 
먼저 도착한 사동의 황씨 문중과 매부인 안동의 고성 이씨 석주 이상룡의 가문과 합류한다. 이후 이동영, 이회영 등 서울 출신 독립운동가들과 서간도 최초의 한인 자치단체인 경학사를 조직, 독립군을 양성하는 신흥강습소(후에 신흥 무관학교)를 열어 수많은 인재를 길러 낸다.

지금의 우리에게 12월은 즐겁고 거룩한 날도 많은 한 해의 마지막으로 바쁜 나날의 연속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잊어도 될 일이 있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위에 열거된 역사들은 대한민국에서 한민족으로 태어난 이상, 내가 이 땅에서 지금 존재하게 된 근원을 바로 알고 꿈을 이루기 위하여서는 결코 잊으면 안 될 뼛속의 기록들인 것이다.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장/한민족역사문화공원 공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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