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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강경범 교수의 세상을 보는 눈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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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강경범 교수의 세상을 보는 눈①
  • 최진섭
  • 승인 2020.04.2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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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화 속 윤리와 도덕의 가치

[동양뉴스] 강경범(필명 강마을) 교수는 문학박사이자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사회복지학과 교수, 대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문인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남북문학교류 기획위원, '제3의문학' 편집운영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토지문학제기념사화집' '박경리추모사화집' '천태산부처' 및 주요 문예지에 다수의 작품을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강경범 교수.
강경범 교수.

지금 우리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무인자동차, 사물인터넷 등으로 판단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이 데이터화 되면서 생활 전반에 걸쳐 급격한 사회변화를 추구하며 새로운 지능을 이끌어내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새로운 기술적 혁명보다는 외부환경의 충격에 의한 세상과의 단절에서 올 수 있는 산업구조의 붕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사회변화 속에 때론 갇혀있는 상황에서 5차 산업혁명의 조짐은 무엇으로 나타날까 예측해 본다.

오래 전 필자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 대해 지인과 대화를 하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인공지능, 그것은 수많은 데이터를 탑재한 후 확률이 높은 것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이지 결코 판단이 아니라고…흔한 예로 사랑하는 부모를 잃은 연예인이 스탠딩 코미디 프로에 출연한다고 가정해 볼 때 과연 인공지능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그를 어떠한 잣대로 읽어 들일까? 물론 이 또한 여러 가지 조건의 변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우리 생활에 변화를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악재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의료진, 드라이브 스루, 워킹스루, 28년 만에 가장 높은 총선 투표율 등을 보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사람은 역경을 통해 서로 가까워지고 서로의 관계 속에서 아름다움과 조화를 피워낸다'는 말처럼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시련을 슬기롭게 겪어서 일까. 그렇다면 급변하는 사회변화 속에 내 가족에 대한 염려, 그리고 타인에 대한 희생과 배려의 원천은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사회변화 속에서 우리가 알고자 하는 윤리의식과 도덕의 가치결정에 대해 한번쯤 돌이켜 볼 필요성이 있다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개인, 집단, 조직, 사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서로의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많은 체계 즉,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는 서로 살아가기 위해 그것이 합리적이든 불합리적이든 그들만의 관습적 사고가 존재한다. 이처럼 ‘관습적 사고에 준하여 인간관계의 이치’를 다루는 것을 ‘윤리’라 하며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라 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변화된 사회 구조 안에서 불치병을 앓고 있는 뇌사판정의 환자가 있다고 가정할 때 안락사를 선언한 의사의 행위는 과연 환자의 고통에 대한 경감일까, 여러 사람을 위한 희생이었을까, 이마저도 아니면 한 생명을 죽이는 것일까? 이에 대한 윤리적 해석의 답이 무엇인지 각자 스스로 찾아볼 필요가 있다. 아주 오래전 특수한 종족의 집단 안에서 사람을 도륙하여도 문제가 없었다면 비록 도덕적으로 불합리하지만 그 당시 윤리적 잣대의 기준은 정당성을 확보하였으리라.

윤리를 논할 때면 일반적으로 철학적 윤리의 방법을 논하기도 한다. 철학이란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했으며 ‘필로(philo)’는 '사랑' 또는 '좋아한다'는 의미이고 '소피아(sophia)'는 '지혜'를 뜻하기에 단순히 철학만 놓고 바라본다면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알 수 없듯이 어떤 측면에서는 단순히 지혜를 사랑하기에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라 하며 혹자는 생각의 생각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철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위를 바라볼 때 윤리적 시각은 결과주의와 비결과주의 요소로 구분 지을 때 비로소 옳은 것과 그른 것에 대한 판단기준의 척도로 도덕이 대두된다. 도덕에 대한 사전적 의미로서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으로 각자의 내면적 원리로서 작용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는 인간의 능력을 도덕이라 할 수 있기에 전자에 이야기한 것처럼 윤리란 문화집단의 특성이 사회변화의 흐름과 함께한다면 바람직한 최선의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가 도덕인 것이다.

우리는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매 순간순간마다 어떤 일이 생기면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 비록 그것이 도덕적 잣대로서 옳은 결정이든 잘못된 결정이든 나름 주관적 신념하에 결정하게 되는데 이러한 주관적 신념을 결정짓는 기준은 대부분 사회변화의 성장과정에서 성공보다 실패를 거울삼은 경험적 판단에 의하여 좌우된다. 이를 가치라 하기에 주관적인 신념은 가치가 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변화 속에 다양한 정보를 통해 진실과 허구 안에 서 있기도 하며 때론 많은 사실들을 알고 있으나 정작 알 수 없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우리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랜 시간 내적 외적 파괴행위 속에 삶을 엮어 오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최근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시점 이름 모를 퇴직자의 넋두리 “병들어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 아닌가요”라 할 때 필자는 “그저 도심지 보도블록 사이에 핀 들꽃의 생명력처럼 모질게 살아 봅시다”하는 생각은 나의 역사적 윤리관이었을 것이다.

이제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 각자의 양심에 묻고 싶다. 우리는 과연 윤리에 대한 도덕적 가치의 기준을 마련하며 살고 있는지. 시대의 흐름 속에 변화되어 가는 나의 윤리관은 무엇인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결정 할 수 있는 주관적인 신념 즉, 나의 도덕적 가치관 속에 진정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과 믿음 감사함 등이 존재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실정치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회 경제적 어려움, 실업자,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 사회적 약자, 긴급복지지원금의 배분 등에 있어 이번 총선의 당선자들에게도 초심으로 돌아간 올바른 윤리와 도덕적 가치 기준이 마련됐으면 한다.

'물(민심)은 배(권력)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어 가라앉힐 수도 있다'는 유교 경전의 문구를 새겨 바라는 마음이며 끝으로 우리들 각자 도덕적 윤리관에 대한 가치를 돌아볼 수 있는 자숙의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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