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강경범 교수의 세상을 보는 눈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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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강경범 교수의 세상을 보는 눈②
  • 최진섭
  • 승인 2020.05.3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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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사회변화
강경범 교수.
강경범 교수.

[동양뉴스] 요즘 같은 시기에 한번쯤 문학을 접해보는 것은 어떠할지 생각해 본다. 문학은 우리와 마주하며 항상 가까이 있음에도 그에 대한 정의가 녹록지 않다. 문학을 접하는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 질의에 대하여 과연 현명한 답을 스스로 제시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우선 문학에 대한 여러 정의 중 하나라는 것을 밝히며 문학에 대하여 논의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문학(Humanity)이다.

오랜 역사적 시간과 사회변화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학문 즉,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음악, 미술, 예술, 철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 전반적인 분야에 걸쳐 그것을 연구하고 배우고 고치며 만들어 가는 다양한 분야의 총체적인 것을 인문학이라 하며 간혹 우리는 인문학의 힘을 빌어 철학, 예술, 자연과학을 논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문학은 ‘나’ 라는 한 인간의 존재 가치를 느끼며 살기위해 필요한 학문으로 어찌 보면 삶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접근이기에 다만 한 가지 나에 대한 존재의 인식이 필요하다.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회의는 의심’이며 방법적 회의라 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ego cogito, ergo sum)’고 하였으며 의심이 비로소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다른 모든 사물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의 존재’를 결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는 ‘나’, ‘나의정신’, ‘나의존재’에 대하여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즉, 나를 알고 올바른 나를 찾아가면서 다양한 인간관계 및 우리의 삶에 대하여 배우고 성찰하며 돌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인문학의 위기시대라고 하며 강단에서 내몰리고 천대받고 심지어 서서히 사라지기도 하고 있으나 또 다른 한편으로 사랑, 죽음, 애정, 슬픔 등의 소재를 통하여 스토리를 자본 속에 담아내는 방식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대중 속에 파고 들어가는 자본에 종속된 인문학을 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삶은 갇혀 있기도 하고 날기도 하며 때로는 먼 곳으로 도망쳐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존재에 대한 가치이다.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삶에 대한 가치를 찾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진화된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기에 오늘날까지 변화된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자본주의 유산물 복지의 등장은 고령화와 저 출산을 잉태하였다. 즉, 과거와 달리 현대사회의 문명의 발달로 고령화는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 되었으나 다양한 사회변화 속에서 저 출산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 답을 구하고자 생각하여본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필자는 저출산에 대한 의미를 인문학과 문학에서 찾아내고 싶었다. 바로 현대인의 감성에 하소연하는 한편,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감성적 치유가 가능하며 우리의 생활 저변에 알게 모르게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인문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출산의 문제가 붉어져 일어나던 21세기 초와 20세기, 19세기 말의 사회상으로 한번 돌아가 보자. 1896년 4월 25일 배재학당에서 “강가에 가서 화류를 하는데 이 몸에 만물의 새로운 뜻을 본받아 각자 학문을 널리 배워 새 사람이 되기를 바라노라”는 독립신문의 기고처럼 근대식 유산으로 정착된 개화기 ‘화류회(花柳會)’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운동회 날’ 당시만 해도 몸을 움직이는 것을 금기시하던 양반사회에서 소풍으로 시작해 다양한 운동으로 대치되었던 근대 체육의 효시라고 불리운다.

국권회복운동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장의 일환으로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만세삼창을 하던 화류회. 소풍과 운동을 통하여 민족의 단결과 스포츠정신의 확립이라는 거시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사회변화 속에서 학생들의 건강 유지 및 발달, 협동심과 연대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일련의 활동, 산업화이후 봄철 소운동회와 가을 대운동회, 청군 백군으로 팀을 이루어 진행하던 행사. 특히 부모님과 친구들 그 외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졌다는 것이 큰 의미를 부여한다.

도시와 산간벽지 등 나라 안의 온 마을 주민참여 형태로 진행되었던 행사의 본질이 주는 미시적 차원의 의미가 남다르다. 비록 그 시절 다소 부담을 안고 있었으나 이를 계기로 가족의 화합과 소중함을 일깨우고 나아가 감성적 내면에는 무의식적으로 출산에 대한 인식의 변화 및 사고의 전환점이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하여 본다.

필자는 본지에서 다소 주간적인 시점에서 운동회가 주는 의미를 감성이란 문학적 언어로 해석하여 나름 들여다보았다. 그 결과 무용은 예술이 전이되어 자리하고 있으며 계주 및 줄넘기, 멀리뛰기, 높이뛰기 그 밖의 단체행동 등에는 많은 규칙과 함께 심리적, 도덕적, 법적 의미가 간헐적으로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여기에 생동감 있는 음악, 미술, 예술, 철학, 자연과학, 사회과학이 살아 움직이는 ‘사실적 인문학’으로 표현하면 되지 않는가.

물론 운동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한편으로 과거 전체주의적 집단문화라고 비판받을 여지에 대하여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회변화 속에서 우리의 현주소는 비행, 학벌, 입시, 왕따, 자퇴, 취업난 나아가 아동, 청소년문제 그리고 장년과 노년의 문제 등 일일이 열거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사회적 미덕이었던 다산(多産)마저도 정부 수립이후 1962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가족부)의 슬로건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를 시작으로, 1970년대 ‘남아선호사상 타파’,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 오일쇼크 등 경제의 어려움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처럼 출생 시 성비에 영향을 주었으나 비로소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여 1994년 정책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으나 2020년 현재 우리는 10년간 초저출산 국가의 위기에 직면하여 있다.

초기 산아제한이라는 정책상의 문제점을 거론하기에 앞서 이러한 모든 사실들은 대부분 공동체적인 정서를 탈피한 개인적 이기주의에서 나오는 정서상의 문제에 대하여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일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소되는 그 날 사회통합의 한 방편으로 오래전 소규모 단위 운동회를 통하여 올바른 감성을 느낌으로서 계층 간 갈등을 해소하며 나아가 지역사회의 공동체적 의미의 복원 차원에서라도 그때 그 시절의 정서로 돌아갈 필요성은 있지 않을까.

인간이 역사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 속에 적응하여 나아가는 바로 이것이 살아 숨 쉬는 인문학이며 ‘인문학의 1차 사회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하기에 이 시점에서 한번쯤은 다양한 각도에서 인문학의 정서에 접하였으면 한다.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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