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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공학 칼럼] 청주의 심장 무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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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공학 칼럼] 청주의 심장 무심천
  • 노승일
  • 승인 2020.09.1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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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훈 도시공학 박사·충북대 도시공학과 겸임교수
이중훈 도시공학 박사
이중훈 도시공학 박사

[동양뉴스] 무심천(無心川)은 금강의 제2지류로서, 충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 부근에서 발원해 청주 시내를 지나 미호천과 합류하여 금강으로 흐른다.

지방 1급 하천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청주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흥덕구, 상당구, 청원구, 서원구의 경계이다. 특이한 점은 무심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천이라고 한다.

무심천의 유래와 변천

고려시대에 심천(沁川)으로 불리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석교천(石橋川)·대교천(大橋川)으로 바뀌었으며, 1923년 이후부터 무심천으로 불리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유래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청주 무심천변에 오두막집을 짓고 다섯 살짜리 아들과 함께 사는 여인이 있었는데 집 뒤로 시냇물이 흐르고 그 천을 건너는 통나무다리가 있었다.

어느 날 행자승이 찾아와 여인은 아들을 부탁하고 일보러 나갔고 아이를 돌보던 행자승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행자승이 잠에서 깨었을 때 돌보던 아이가 주검이 되어 그 여인에게 안겨 있었고, 행자승이 잠든 사이 아이가 통나무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었던 것이었다.

여인은 아이를 보내고 삭발한 후 산으로 들어갔다. 이 소식 인근 사찰에 전해지자 모든 승려 크게 불쌍히 여기어 아이의 명복을 빌기로 했다.

그들은 백일 만에 통나무다리 대신 돌다리를 세웠고 그 다리 이름은 남석교(南石橋)인데 사연 알 바 없이 무심히 흐르는 이 냇물을 일러 무심천(無心川)이라 부르게 됐다."

기록에 의하면 무심천(無心川)의 유로는 1906년 8월의 홍수로 인해 유로가 변경됐고, 1939년에는 도시계획에 의해 현재의 석교동 일대를 개발하고 남주동(南洲洞), 서문동, 영동을 개발하기 위해 유로를 서쪽으로 변경시켰다.

또 1895년, 1914년, 그리고 1956년의 지형도를 비교해 보면 무심천(無心川)이 직강 공사로 변경됐다. 그리고 1969년에는 무심천(無心川) 지구 정리 공사로 유로를 다시 서쪽으로 변경시켜 현재의 제방이 축조됐다. 무심천(無心川)은 본래 천정천이었으나 하상정리로 하상이 낮아졌는데 장암동 상류부에는 천정천을 잘 볼 수 있다.

무심천(無心川)과 남석교(南石橋)

남석교(南石橋)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재래시장인 육거리시장 내의 도로 지하에 매몰되어 있는 돌다리로서 80m 길이에 폭은 3.7m, 높이는 2m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선시대 이전의 다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석교이다. 옛 청주읍성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성안길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무심천(無心川)을 만나게 되는데 이 다리는 무심천(無心川)에 가설됐다.

가설시기에 대해서는 기원전 57년이라는 설이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청주읍성의 축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교량이라고 볼 때 대략 고려시대에 가설됐으며, 교량의 특성상 무심천(無心川)의 범람 때마다 유실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함으로써 수차례 수·개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침작된다.

석교동이라는 지명은 이 다리에서 유래됐으며, 1930년대에 무심천(無心川)의 유로가 현재와 같이 변경되면서 교량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됐고, 주변의 무심천(無心川) 하상지역이 매립되어 시장으로 변모하면서 남석교 역시 조금씩 매몰되어 완전히 모습을 감추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남석교는 1920년대 일제가 도시계획재정비에 따라 이 일대 물줄기를 메워 도로를 내는 과정에서 땅속에 묻혀버렸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지금도 80세 이상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남석교를 직접 본 적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무심천의 환경적 의미

무심천(無心川)은 환경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다른 도시가 도심의 하천을 복개한 반면 청주는 무심천(無心川)을 그대로 두었다. 몇 번의 정비가 있었으나 그래도 노천하천으로 유지되고 있다.

무심천(無心川)은 도심의 공원이면서 습기나 온도에도 중요한 기능을 한다. 또한 바람의 흐름이나 인간의 심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무심천(無心川)은 청주시민들에게 수변공원의 역할을 하고 또 정신적인 위안을 주는 중요한 공간이다. 다양한 체육시설과 놀이시설도 있지만, 생태환경의 학습장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청주에서 무심천(無心川)의 환경적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자연형하천 복원운동

청주의 중심하천인 무심천은 다른 도시 하천과 마찬가지로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전되면서 1990년대 초반까지 최악의 수난을 맞았다. 수질은 등급 외 수준으로 악화되었으며, 지류하천은 상당 부분 복개됐다.

유입 수량은 감소하고 인위적 하천 정비로 자정능력도 크게 감소했다. 특히 교통문제 해소의 대체수단으로 전락하면서 하천부지에 하상도로와 주차장이 대대적으로 들어섰다.

맑고 깨끗해서 시민들이 자주 찾는 무심천이 아니라, 주차장과 하상도로를 이용할 때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찾지 않아 점차 시민들의 인식 속에서 멀어져 갔다.

유난히 더웠던 1995년 여름, 무심천에서 물고기떼죽음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물고기떼죽음의 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지만, 전문가 조사결과 콘크리트구조물로 덥혀진 초기강우의 유입에 따른 무심천의 용존산소 감소가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부터 '콘크리트를 뜯어내자'는 외침이 시작됐다. 삶의 질과 쾌적한 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가 증대하면서 무심천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이 무렵 청주환경운동연합, 생태교육연구소'터' 등 환경전문단체들이 생겨났고 국내에 자연형하천 복원개념이 도입됐다는 점도 무심천 자연형하천 복원운동의 중요한 동기가 됐다.

1996년에는 청주환경운동연합이 중심이 되어 무심천 생태탐사, 무심천 껴안기 행사, 학술토론회 등 하천 정화활동 수준을 뛰어넘어, 무심천을 보전하고 다시 시민들의 기억 속에 되살리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심천살리기 운동에 직접적인 불을 당긴 것은 1997년 초 청주시가 구상한 하상주차장 및 하상도로 증설계획이었다.

이미 무심천 둔치에는 폭 8.5m의 하상도로 4.6㎞와 7개의 하상주차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에 새롭게 주차장 1개소와 하상도로 2.2㎞를 추가로 설치하려 했던 것이다.

결국 청주지역 시민단체들은 ‘무심천 하상구조물 증설저지 시민대책위원회’를 결성했고, 이 문제가 1997년 청주지역 최대현안으로 부각됐다.

수도 없이 많은 성명 및 논평을 발표했고, 청주시장 면담 및 항의 방문, 공사 강행에 따른 현장 농성, 시민에게 무심천을 알리기 위한 탐사 및 기행프로그램 진행 다양한 방법으로 하상구조물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시민대책위원회 참여단체 뿐만 아니라 무심천 하상구조물 증설을 반대하는 교수 61인 기자회견, 운천동 주민 4000여 명의 하상 주차장 반대 진정서 제출 등 환경단체, 학계,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무심천 하상구조물 저지운동이 전개됐다.

1년간 진행된 무심천을 살리기 위한 청주시민들의 뜨거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청주시는 계획을 강행했다. 하지만 하상구조물 철거를 위한 시민들의 노력이 그냥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 운동으로 무심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무심천을 훼손할 수 있는 추가적인 사업들에 대해 종지부를 찍었다.

또한 무엇보다 커다란 성과는 무심천의 관리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점을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많은 시민들이 무심천을 자연형하천(이후 생태하천)으로 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1998년 7월 민선 2기 청주시장이 취임하면서 획기적인 발표가 있었다. 무심천을 훼손하는 사업을 중단하고 자연에 가까운 하천으로 되살려 내겠다는 것이다.

곧바로 해당 부서에서 '무심천정비종합계획' 및 '생태공원화계획'을 수립했으나 계획수립의 절차 및 내용이 미흡해 보류됐다.

이에 청주지역의 시민단체들은 '무심천에 꿈을 담자'라는 테마로 1999년 6월 '무심천종합계획수립 촉구 시민단체 토론회'를 개최해 무심천 종합계획 수립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모았다.

무심천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계획이 수립되어야 하고, 무심천 종합계획 수립에 있어서 시민들의 의견수렴 및 지역전문가들의 과학적 검토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며, 무심천 관리의 방향은 자연형하천으로 복원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이후 청주시는 2002년부터 환경부 오염하천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무심천생태공원화사업을 추진했으며, 2003~2004년 자연생태계조사를 실시하고 2005년에는 마침내 무심천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이런 흐름 속에 2002년부터 무심천 부지 내에 있던 콘크리트구조물 일부가 철거되기 시작했고 자연호안 조성 등 자연형하천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무심천 하상구조물 중 가장 흉물스럽던 하상 주차장은 원래 6개소 1596면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2002년부터 단계적으로 철거하여 현재 1개소 242면만 남아 하상주차장의 85%가 복원됐다.

2005년에는 자전거도로가 조성되어 수많은 시민들이 무심천으로 쏟아져 나왔으며, 2006년에는 수달(천연기념물 330호)의 서식이 확인되면서 생태하천복원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2009년부터는 하상도로 통제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어, 2013년에는 2017년부터 진행될 하상도로 철거 계기를 만들기 위해 '무심천 100일간의 실험'을 진행했다.

무심천 하상도로 중복구간인 청주대교~청남교 1.18㎞ 구간 중 한 개 구간에 100일 동안 차량을 통제하는 행사를 진행해 하상도로와 자동차가 없는 무심천의 꿈을 현실화 시켰다.

20여년 가까이 진행된 무심천 자연형하천 복원운동으로 오염됐던 무심천의 수환경과 하천생태계가 되살아났고, '생태하천으로 복원'이라는 무심천의 기본적인 관리방향에 대한 합의도 마련됐다.

문제점도 있지만, 각종 체육편의시설, 자전거도로 등 친수공간이 조성되면서 무심천이 시민들의 일상적인 생활문화공간으로 정착했다.

전국적으로는 무심천 자연형하천 복원운동이 수원천 복개반대운동과 더불어 도시하천 복원운동의 전국적 모델로 역할을 하게 되어 전국에서 찾아오는 하천복원운동의 선진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무심천 자연형 하천 복원운동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2017년부터 5년간 단계적으로 철거하기로 되어 있는 무심천 하상도로 철거계획이 아직도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조속한 계획 수립과 시민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또한 하천정비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하천 훼손행위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득이 하천정비 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면 '생태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친수성 제고'라는 철학을 가지고 진행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칭)무심천생태하천복원 종합계획의 수립과 무심천을 지키고 가꾸기 위한 범시민적 민관협력기구인 무심천 하천협의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이미 무심천은 지자체의 것도 시민단체의 것도 아니다. 무심천에 사는 물고기 모든 뭇 생명의 것이며, 무심천을 이용하는 모든 시민들이 함께 지키고 찾아가는 공간이다.

무심천 하천협의회는 무심천을 지기고 가꾸기 위한 실천협력기구의 성격을 지니는 동시에, 하천에 대해 관리방향 또는 다양한 이해관계 및 쟁점사안에 대해 토론하고 협의하는 정책조정기구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

하천정비사업도, 하상도로 철거도, 새로운 생태하천종합계획의 수립도 하천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풀어 나갈 때 참다운 의미가 살아날 것이다.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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