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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소] 왈도의 소곤소곤 이야기-오늘의 불쾌지수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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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소] 왈도의 소곤소곤 이야기-오늘의 불쾌지수 ⑤
  • 서다민
  • 승인 2020.12.25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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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왈도(필명)씨의 소설 '오늘의 불쾌지수'는 매주 금요일 오후 2시 연재됩니다.

작가 왈도(필명)씨
작가 왈도(필명)씨

여당인 ‘제일제당’과 야당들의 정쟁이 끊이지 않던 때였다. 몇 달째 법안 발의도 없었고, 예산 처리는 해를 넘겼다.
 야당인 ‘통합혁신당’과 ‘개혁정의실천당’은 국민보다 여당의 독주를 막는 것이 우선이었다. 두 야당은 결국 양당 합당의 길을 택했고, 사상 초유의 당명을 가진 ‘통합혁신개혁정의실천당’이 탄생했다. ‘통개당!’ 국민들은 그렇게 불렀다.
 거대 당명으로 거듭난 통개당은 통합은 했으니, 혁신도 해야 했고, 개혁도 해야 했고, 정의도 실천해야했다. 당 대표를 초선의원으로 결정한 것도 혁신과 개혁을 실천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모든 일은 당 대표 선출로부터 시작됐다. 통개당 당 대표는 제일제당 당 대표의 말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딴죽을 걸었다. ‘잘한다, 잘한다’하는 동료 의원들의 칭찬이 통개당 당 대표의 만행을 부추겼다.
 그날은 여야 당 대표가 공동으로 선거구 재편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 자리였다. 오랜 시간 지지부진했던 사안이라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연신 터지는 카메라 후레쉬를 받으며 여당 대표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그 동안 많은 국민들이 답답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우리 제일제당과 통합혁신개혁정의실천당은 긴긴 논의 끝에 드디어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여당 대표는 환한 웃음으로 야당 대표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러나 야당 대표는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거짓말입니다. 전혀 합의된 것이 없습니다. 오랜 시간 의견을 교환했지만 결국 원점에서 다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일단락 했다는 점 국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환한 표정으로 야당 대표의 말을 듣고 있던 여당 대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마이크를 빼앗았다.
 “기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야당 대표께서 뭔가 혼동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이크는 꺼졌지만, 어떤 기자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엇갈린 두 당 대표의 한마디, 한마디가 헤드라인인데 기자들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기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야 당 대표는 격해진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기자들은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숨을 죽이고 그들의 싸움에 모든 신경세포를 청각에 집중했다.
 여당 대표의 삿대질이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국회의원이면 다 같은 국회의원 인줄 알아? 여야 합의가 장난이야? 당 대표라고 대우해줬더니, 이거 막가자는 거야 뭐야?”
 야당 대표도 물러서지 않았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자고 한 게, 그게 합의야? 선배면 선배다워야지, 어따 대고 삿대질이야?”
 각 당 의원들이 말리면 말릴수록 두 당 대표의 언쟁은 더 거세졌다.
 “어디 근본도 없는 자식이 국회에 들어와서 물을 흐려, 개나 소나 다 뱃지만 달면 국회의원인줄 알지? 너 같은 놈들 때문에 국개의원 소리를 듣는 거야, 이 자식아.”
 여당 대표의 개나 소 발언에 야당 대표는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었다.
 “이 양반이 말이면 단 줄 아나? 아니, 말 나온 김에 개나 소나 데려다가 누가 정치를 더 잘하나 한 번 봅시다.”
 둘의 싸움은 걷잡을 수 없었다. 여당 대표는 급기야 욕설과 함께 손에 잡힌 명패를 집어던졌다. 야당 대표는 날아오는 명패를 피했고, 졸고 있던 의원 하나가 명패를 맞고 쓰러졌다. 싸움은 이제 벤치 클리어링으로 바뀌었다.

 여야 의원들의 싸움 장면은 고스란히 방송과 신문 1면을 장식했고, 이후 양당의 지루한 신경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장외 투쟁과 전원사퇴를 부르짖으며 양 당의 감정싸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갈수록 치졸해지는 싸움은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논의 중이던 수많은 사안은 사라지고, 개나 소가 정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화두가 됐다. 어처구니없는 이들의 싸움은 일명 ‘개나소나법’ 상정을 두고 치열하게 격돌하는 양상이 되었다. 누가 법안을 대표발의하고 누가 동의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도 그들의 싸움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국민들의 무관심과 계속되는 국회의원들의 싸움 속에 ‘개나소나 논쟁’은 국회의사당을 떠돌고 있었다. 의사당은 이미 아수라장이 된지 오래였고, 국회의원들은 매일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며 싸워댔다. 유치원생의 국회 견학도 전면 통제됐다.
 국회의장은 거친 욕설이 난무하는 혼돈 속에서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긴박한 표정으로 의장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전했다.
 “의장님! 큰일 났습니다.”
 침까지 흘리며 졸고 있던 의장은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사내를 쳐다봤다.
 “무슨 일인데? 여기보다 더 큰일이 있어?”
 사내는 더 작게 소곤댔다.
 “우창석 기자가 의장님과 시호씨 관계를 눈치 챈 것 같습니다.”
 시호는 아이돌 그룹 멤버이자 최근 영화를 찍으며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가수 겸 영화배우였다.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던 의장은 깜짝 놀라 의자에서 떨어졌다.
 “어디까지 눈치 챘다는 건데?”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시호 씨랑 필리핀에 다녀온 것까지…….”
 “아, 씨발, 좆됐네. 좆됐어.”
 의장은 한참을 중얼거리다 사내의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이 새끼야. 그럼 우 기자를 불러다가 술을 먹이던, 돈을 주던 방법을 찾아야지. 여기 와서 이러면 나는 어쩌라는 거야?”
 사내는 의장이 멱살을 흔들며 죽일 듯이 몰아세우자 조심스럽게 묘안을 제시했다.
 “의장님!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방법이 있다는 말에 의장은 멱살 잡은 손을 풀며, 사내에게 귀를 가져다댔다.
 “이건 제 생각인데요. 지금 의장님 사건을 덮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장님 열애설보다 더 큰 뉴스를 터트리는 겁니다.”
 의장은 사내의 말에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누가 그걸 모르냐? 나와 시호 관계보다 더 큰 뉴스가 뭐가 있어. 답답하네 진짜.”
 절망하는 의장의 모습을 보며 사내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의장석 앞까지 몰려와 드잡이를 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사내의 의미심장한 눈짓에 잠시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던 의장도 이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개나소나?”
 의장은 혼란한 틈을 타 의사봉을 번쩍 들어올렸다.
 ‘탕! 탕!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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