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5 17:18 (일)
[문화창작소] 왈도의 소곤소곤 이야기-오늘의 불쾌지수 (전편)
상태바
[문화창작소] 왈도의 소곤소곤 이야기-오늘의 불쾌지수 (전편)
  • 서다민
  • 승인 2021.01.15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가 왈도(필명)씨
작가 왈도(필명)씨

클로징 멘트를 남겨 둔 앵커에게 급하게 쪽지 한 장이 전달됐다. 쪽지를 다 읽은 앵커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1분이 넘도록 말이 없었다. 방송 사고였다. 하지만 카메라 앵글은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앵커를 계속 비추고 있었다. 무거운 시간이 흐르고 바싹 마른 앵커의 입이 열렸다.

 “참담한 날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죠. 이정표를 잃은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요? 오늘의 앵커 생각이었습니다.”

*

 후보자 등록 마감이 한 시간 남았다는 자막이 나오자 선거캠프의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TV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한 남자가 무전기에 대고 짧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이어폰을 낀 사람들이 옷깃에 대고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들은 특수한 임무를 부여받은 요원들처럼 서로에게 수신호를 보내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직사각형으로 생긴 대형 테이블이 ‘ㄱ’자 모양으로 배치되었고, 그 위에 하얀 테이블보가 깔렸다. 오랜 시간 숙련된 듯 그들의 행동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어 입 꼬리를 한껏 올린 미소로 남녀 직원들이 갖가지 요리를 정해진 위치로 옮겼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요리와 찬 음식, 한식과 후식이 끊임없이 테이블에 놓여졌다. 컴베이어 밸트가 작동하듯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들의 움직임에 테이블은 금세 빈틈없이 채워졌다.

 원형 테이블에는 포크와 나이프, 젓가락과 숟가락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놓여졌다. 원형 테이블 맨 앞줄의 특별석 중앙에는 ‘시바스리갈’이 보기 좋게 자리를 차지했다. 뷔페 직원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오인문 사무장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요! 좋아! 조금만 더 서두릅시다.”
 한껏 들떠있는 사무장과는 달리 안종문 군수의 비서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사무장님. 이게 뭐하시는 겁니까? 선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잔치라뇨.”
 사무장은 비서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 비서님은 매사 걱정이 너무 많아. 종문이 형님이, 아니 우리 군수님 당선이 확정됐는데 뭐가 걱정이야.”
 “사무장님, 당선이라뇨? 후보 등록이 끝났다고 선거가 끝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비서의 잔소리가 계속되자 사무장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사람아! 단독 후보라고, 단독 후보! 싸움은 끝났어.”
 비서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사무장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더 선거법을 조심해야죠. 군수님 삼선이야 의심하지 않지만, 그래도 선거가 끝날 때 까지는…….”
 비서가 선거법을 들먹이자 사무장은 비서의 말을 가로막으며 언성을 높였다.
 “법대 나왔다고 가르치나? 어디다 선거법을 들먹여?”
 사무장은 비서의 어깨를 밀쳐내며 뷔페 직원들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빨리 빨리 마무리합시다.”
 비서는 한숨을 내뱉더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캠프를 나갔다.

 호텔 뷔페가 부럽지 않은 파티 준비가 끝나자 사무장은 주차장이 보이는 캠프 뒤편 창문을 열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캠프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군사모(군수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다. 회원들은 당선인을 대하듯 사무장에게 악수를 청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사무장도 당연한 인사를 받듯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군사모 회원들이 들어오고 뷔페 직원들이 퇴장하자 파티 진행을 맡은 스태프 한 무리가 캠프에 들어섰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인기를 끌고 있는 MC 전영진씨도 보였다. 스태프들은 스피커와 마이크를 점검하며 리허설 준비가 한창이었다. 사무장은 무대의상으로 갈아입은 전영진씨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알은체를 했다.

 “구독자가 100만을 넘었다고요? 축하드립니다. 나도 영진씨 팬 인거 아시죠?”
 MC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사무장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오늘도 스케줄이 꽉 찼는데 다 펑크 내고 냅다 이리로 달려왔습니다.”
 사무장도 한쪽 눈을 질끈 감으며 MC의 손을 더 힘껏 쥐었다.
 “우리 군수님 삼선하시면 우리 영진씨 앞으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으실 텐데,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사무장의 말에 MC는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한 차례 리허설이 끝나고, 사무장이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 잡았다.
 “아! 아! 여러분 잘 들리십니까?”
 캠프를 가득 메운 회원들은 일제히 ‘네’ 하고 소리쳤다.
 “이번 선거가 좀 싱겁게 끝나긴 했어도 TV 앞에서 지루하게 개표 시간 기다리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미 선거가 끝난 것 같은 분위기는 사무장의 설레발에 점점 더 고조됐다. 사무실을 나갔던 비서가 뛰어 들어온 건 그때였다. 비서는 캠프를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란 표정을 짓더니 사무장을 찾았다. 사무장도 비서의 등장에 군수가 도착했음을 직감하고 점잖은 걸음으로 비서에게 다가갔다.
 “오셨는가?”
 비서는 캠프에 모인 사람들을 의식했는지 사무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 올라오시고 계세요. 경찰서장님도 함께 오셨는데 이 상황 이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쯧쯧, 이 사람, 아직도 쓸데없이…….”
 혀를 차는 사무장의 모습에 비서는 할 말을 잃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사무장은 매무새를 살피며 캠프 문을 열고 나갔다. 안 군수가 경찰서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무장은 성큼성큼 계단을 뛰어 내려가 군수에게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옆에 있는 서장에게도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안 군수는 사무장의 태도가 못마땅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뭐야 또?”
 사무장은 헤벌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가 오늘 조촐한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사무장의 환한 얼굴에 안 군수는 심기가 불편했다. 안 군수는 걸음을 멈추고 사무장의 볼을 잡아채며 말했다.
 “너 또 무슨 짓을 꾸민 거야?”

사무장은 안 군수가 제법 거칠게 볼을 잡아당기는데도 마냥 신난 얼굴로 히죽거렸다. 안 군수는 함께 올라온 서장을 기획실로 안내한 뒤 사무장을 따라 캠프로 들어섰다. 캠프 문이 열리자 안 군수의 얼굴을 본 회원들은 ‘안종문!’을 연호하며 반겼다. 안 군수는 입을 벌린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잠시 정신 줄을 놓고 혼란스러워하던 안 군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캠프 안으로 천근같은 발걸음을 뗐다. 당황하고 있는 안 군수와 달리 사무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위 아래로 흔들며 군중을 선동했다. 안 군수는 사무장에게 그만하라는 애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사무장은 알아채지 못했다. MC도 기다렸다는 듯 준비한 멘트를 날렸다.
 “여러분!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삼선 군수님 이십니다.”
 MC의 소개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안 군수는 캠프 안의 상황을 둘러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MC의 시답잖은 농담에 사람들은 자지러졌다.
 “며칠 전에 누가 저한테 그러더군요. 우리 안 군수님 잘 계시냐고,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안 군수님이 누굽니까? 우리 군수님은 안 군수가 아니라, 진짜 군숩니다. 그것도 삼선 짜장만 드시는 삼선 군수님이십니다. 하하하.”
 깔깔거리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안 군수는 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단상에 올라 MC가 건네주는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안종문입니다.”
 안 군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또다시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함성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안 군수의 얼굴은 더 일그러졌다. 안 군수는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뭔가 착오가 있었나봅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아직 선거는 시작도 안했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오늘 이 자리보다 더 근사한 자리로 여러분들을 모시겠습니다. 힘들게 찾아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안 군수는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사과했고, 이미 끝난 싸움인데 뭘 그러냐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 모두 돌려보냈다.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한 사무장은 캠프를 빠져나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화장실로 몰래 몸을 숨겼다. 안 군수는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자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을 발로 걷어차며 소리를 질렀다.
 “오인문! 이 개자식 어디 갔어?”

 선거관리위원회가 내려다보이는 낡은 다세대주택 옥상 위에 박병환과 나기영 기자가 나란히 벽을 등지고 앉았다. 두 사람은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앞에는 까만 강아지 한 마리가 시멘트 바닥에 배를 깔고 열심히 개 껌을 뜯고 있었다.
 한동안 구름의 흐름을 쫓던 나 기자는 몸을 틀어 병환을 바라봤다. 나 기자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병환아! 지금 몇 시간째냐? 마감이 이제 한 시간도 안 남았어.”
 병환은 나 기자의 말에 아무 대꾸도 없이 개 껌을 뜯고 있는 강아지의 긴 허리를 쓰다듬었다. 얼굴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나 기자는 병환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염병할, 됐다. 그만하자’며 일어섰다. 그제야 병환이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을까?”
 나 기자는 다시 자리에 앉아 병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달래듯 말했다.
 “병환아, 우린 지금 범법행위를 저지르려는 게 아냐. 법대로 하는 거지.”
 병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나 기자는 가만히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는 병환의 손을 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병환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너는 그냥 후보 등록만하면 되는 거야.”
 나 기자가 ‘깜순아’하며 강아지 허리를 쓰다듬었다. 나 기자의 손길이 낯설었는지 강아지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깜짝 놀라 강아지 허리에서 손을 뗀 나 기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병환을 보며 말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오늘부터 넌 이 강아지 후보 후견인이 되는 거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넌 최초로 선거에 출마한 강아지 후보 후견인이 되는 거고, 나는 특종 하나 건지는 거야. 복잡하게 생각하면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나 기자의 끈질긴 설득에 병환도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기자는 병환의 심경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병환아, 지금 네 꼬락서니를 봐. 넌 이제 법대생도 아니고, 그냥 집에서 눈칫밥이나 먹는 백수라고.”
 병환은 나 기자의 말에 울컥했다.
 “다 맞는 말인데, 친구라는 놈이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겠냐?”
 잔뜩 풀이 죽은 병환의 말을 듣고, 나 기자는 거침없이 몰아붙였다.
 “병환아! 기회는 한 번 뿐이야. 이런 일이 생기면 앞으로 이 법을 가만 놔두겠냐? 이번 기회는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병환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지만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나 기자는 이때다 싶어 쐐기를 박았다.
 “정치판에 돌멩이 하나 던진다고 뭐가 변하겠냐? 그래도 아마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 이슈가 될 걸. 그리고 너 임마! 안 군수 삼선하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다며?”
 ‘안 군수’라는 말에 병환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정말, 안 군수 떨어뜨릴 수 있을까?”
 나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병환은 나 기자의 손을 잡고 다짐하듯 말했다.
 “그래 한 번 가보자. 법대로 한다는데 잡아가진 않겠지.”
 병환은 강아지를 번쩍 들어 올려 옆구리에 끼고 선거관리위원회로 향했다.

병환은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의 법학과에 턱걸이로 진학했다. 하지만 턱걸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의 소원대로 서울에 있는 대학의 법대생이 됐다는 것만으로 병환은 집안의 큰 자랑이었다. 병환의 아버지는 마을 입구에 현수막을 걸었고, 어머니는 집 마당에 잔칫상을 차렸다. 몇 몇 까칠했던 동네 사람들도 이날만큼은 병환의 법대 진학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날은 밤새 술판이 벌어졌지만, 누구 한 사람 시끄럽다고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탓일까. 병환의 인생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대학 3학년까지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군 제대 후 본격적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한 병환은 5년차에 덜컥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이제 때가 됐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10년이 지나도록 더 이상의 합격 소식은 없었다. 병환이 낙향하던 날, 병환의 어머니는 몸져누웠고, 아버지는 20년 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병환의 내리막길은 끝을 알 수 없었다. 취업문을 두드렸지만 방탄유리보다 더 견고했고, 연애는 사치였다. 맞선은 끊긴지 오래였다. 판검사 명함은커녕 이력서조차 쓰기 민망한 상황이 되자 고향 친구들도 하나, 둘 멀어졌다. 고교시절 무료 과외를 해줬던 친구는 건설사 사장이 됐고, 지방에 있는 전문대학 미달 학과에 겨우 들어갔던 친구는 공무원이 됐다. 가끔 소주라도 사주는 나기영 기자가 유일하게 남은 친구였다.

*

 동네 창피하니까 낮에는 돌아다니지 말라는 어머니의 성화에 병환은 매일 어둠이 깔려야 집을 나섰다. 안 군수와 마주친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선 길이었다.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날은 아무 생각 없이 군청 앞 잔디광장까지 꽤 먼 거리를 가게 됐다. 잔디광장은 사방에 울타리가 둘러 쳐있고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군데군데 박혀있었다. 강아지가 푯말 앞에서 ‘킁킁’ 거리더니 오줌을 쌌다.
 뉴스에서는 푹푹 찌는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고 했지만, 저녁인데도 끈적끈적한 땀이 눌러 붙어 짜증은 더 났다. 탁 트인 잔디광장이었지만, 바람 한 점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드넓은 잔디광장은 앉아 있을만했다. 앉으니 눕고 싶었다. 누워서 바라본 하늘은 별 하나 없이 잔뜩 찌푸려있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눅눅한 바람에 서글프게 지나간 십 수 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울적한 기분이 눈 밑까지 올라왔을 때 강아지가 짖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의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병환은 벌떡 일어나 강아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인기척이 가까워오자 더 격렬하게 짖어댔다.

 “쉿! 조용! 조용!”
 소용없었다. 이미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다섯이었다. 강아지를 안고 뛰었어야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강아지는 더 거칠게 짖어댔다. 병환 앞에 선 일행 중 한 남자가 으르렁 거리는 강아지를 발로 툭 차더니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누가 잔디광장에 개새끼를 끌고 들어오라고 했나? ‘출입금지’ 푯말 못 봤어?”
 병환은 남자를 올려다봤지만 가로등 불빛을 마주하고 있어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남자가 군수라는 사실은 그들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사람들 이거, 잔디광장 통제도 하나 제대로 못하나?”
 “죄송합니다. 군수님! 철저히 통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들 당장 치워!”
 안 군수의 호통에 옆에 서있던 사내들이 다짜고짜 병환의 팔짱을 끼고 잔디광장에서 끌어냈다. 강아지도 개 줄에 질질 끌려왔다. 안 군수는 잔디 밖으로 쫓겨나는 병환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병환은 수치심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병환은 안 군수를 쫓아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안 군수는 기다리고 있던 자동차를 타고 유유히 군청을 빠져 나갔다. 쫓겨난 병환은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나 기자, 술 한 잔 사주라.”

병환은 맥주 컵에 소주를 한 컵 가득 부어 단숨에 들이켰다. 두 잔째 소주를 붓고 있는데 나 기자가 포장마차로 들어섰다. 벌컥벌컥 소주를 마시는 병환의 모습을 보고 나 기자는 놀란 얼굴을 하며 앞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천천히 마셔라. 그러다 골로 간다.”
 빈속에 소주 두 컵을 연거푸 들이킨 병환은 서러운 표정으로 조금 전 안 군수와 있었던 일을 풀어 놓았다. 병환의 이야기를 듣던 나 기자는 축 늘어진 병환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병환이 네가 한때는 법대생이라고 다들 부러워했는데, 어쩌다 신세가 이렇게 됐냐.”
 나 기자의 말에 병환은 소주를 부으며 말했다.
 “그만해라. 네가 거들지 않아도 죽고 싶은 심정이니까.”
 나 기자는 발끈하는 병환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기분 풀어 임마! 안 군수 그 새끼, 원래 쓰레기야.”
 “참, 위로가 된다. 위로가 돼. 그래 뭐, 집에서 사람대접 못 받는 놈이, 나와서라고 사람대접 받겠냐? 그냥 술이나 먹자.”
 병환이 컵에 소주를 들이붓자 나 기자는 얼른 빼앗아 한 입에 털어 넣고 오이를 된장에 듬뿍 찍으며 말했다.
 “위로는 무슨, 나도 그 인간 때문에 회사에서 쫓겨날 판인데 내가 누굴 위로 하냐.”
 한숨 섞인 나 기자의 말에 병환이 관심을 보였다. 나 기자는 포장마차 주인에게 빈 소주병을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
 “정치시즌에 정치부 기자가 찬밥이라니까 우습지? 근데 이 동네가 원래 안 군수 독무대 아니냐, 정치시즌이라도 별 재미가 없다. 광고 하나를 못 받으니 원. 하긴, 단독 후보라 선거 운동도 안한다는 소문이 있더라. 다른 기자 새끼들은 그래도 광고 하나 받겠다고 살살거리는데, 난 죽어도 그 인간한테 손바닥 비비긴 싫고. 그러니 만날 회사에서 깨지는 거지.”
 “광고 따오라고?”
 나 기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한 소주가 나오자 병환은 술을 권했다.

 “기자가 기사를 써야지, 광고해오라고 쪼는 게 말이 돼?”
 안 군수를 안주 삼아 마시는 술은 쓰고 달았다. 이미 나 기자가 오기 전부터 컵으로 소주를 마셨던 병환은 슬슬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병환은 반쯤 감긴 눈으로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나 기자를 한참 바라보다 말했다.
 “기영아! 안 군수 그 새끼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확 떨어뜨릴까?”
 나 기자는 안주를 씹으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병환을 바라봤다. 병환은 피식피식 웃다가 뜬금없이 나 기자에게 문제를 맞춰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개나 소가 정치를 할 수 있다? 없다?”
 “정치하는 놈들이 다 개, 돼진데, 그걸 문제라고 내냐?”
 “사람이 아니라, 진짜로 ‘멍멍’, ‘음메’하는 애들이 정치를 할 수 있냐고 묻는 거잖아 임마.”
 “에라이 미친놈아. 술이나 처먹어라.”
 나 기자는 병환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기자는 병환의 빈 잔에 술을 부어주며 ‘미친놈, 미친놈’ 했다. 병환은 나 기자의 반응에 더 신나서 말했다.
 “웃기지? 그런데 정답은, ‘우리나라에서는 개나 소도 정치를 할 수 있다’야 임마. 멍청한 놈, 정치부 기자라는 놈이 그것도 모르냐?”
 나 기자는 킬킬 거리는 병환을 보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병환아, 네가 오늘 안 군수한테 충격을 심하게 받은 것 같다. 이제 그만 가자.”
 병환과 헤어진 나 기자는 술에 취했지만 횡설수설하던 병환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취했어도 병환은 10년을 넘게 사법고시를 준비한 녀석이 아닌가. 기자의 촉이 발동한 나 기자는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점으로 향했다.
 나 기자가 병환의 집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병환에게 몇 번을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4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병환이 전화를 받았다. 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부터 무슨 전화를 이렇게 많이 했어?”
 “시끄럽고, 집 앞이니까 당장 나와.”
 병환은 전화를 끊고 30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나 기자는 병환을 보자마자 승용차 조수석에 강제로 태우듯 밀어 넣고 자신도 재빠르게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병환을 다그쳤다.
 “말해봐.”
 “뭘?”
 “뭐긴 뭐야 이 자식아. 어제 네가 했던 말이지.”
 병환은 길게 하품을 하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 기자를 바라봤다. 나 기자는 최신판 법전을 병환에게 들이대며 말했다.
 “진짜 개나 소도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더라니까. 이게 말이 돼?”
 병환은 뜨악한 표정의 나 기자를 보고 지난 밤 자신이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여당인 ‘제일제당’과 야당들의 정쟁이 끊이지 않던 때였다. 몇 달째 법안 발의도 없었고, 예산 처리는 해를 넘겼다.
 야당인 ‘통합혁신당’과 ‘개혁정의실천당’은 국민보다 여당의 독주를 막는 것이 우선이었다. 두 야당은 결국 양당 합당의 길을 택했고, 사상 초유의 당명을 가진 ‘통합혁신개혁정의실천당’이 탄생했다. ‘통개당!’ 국민들은 그렇게 불렀다.
 거대 당명으로 거듭난 통개당은 통합은 했으니, 혁신도 해야 했고, 개혁도 해야 했고, 정의도 실천해야했다. 당 대표를 초선의원으로 결정한 것도 혁신과 개혁을 실천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모든 일은 당 대표 선출로부터 시작됐다. 통개당 당 대표는 제일제당 당 대표의 말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딴죽을 걸었다. ‘잘한다, 잘한다’하는 동료 의원들의 칭찬이 통개당 당 대표의 만행을 부추겼다.
 그날은 여야 당 대표가 공동으로 선거구 재편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 자리였다. 오랜 시간 지지부진했던 사안이라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연신 터지는 카메라 후레쉬를 받으며 여당 대표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그 동안 많은 국민들이 답답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우리 제일제당과 통합혁신개혁정의실천당은 긴긴 논의 끝에 드디어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여당 대표는 환한 웃음으로 야당 대표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러나 야당 대표는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거짓말입니다. 전혀 합의된 것이 없습니다. 오랜 시간 의견을 교환했지만 결국 원점에서 다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일단락 했다는 점 국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환한 표정으로 야당 대표의 말을 듣고 있던 여당 대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마이크를 빼앗았다.
 “기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야당 대표께서 뭔가 혼동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이크는 꺼졌지만, 어떤 기자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엇갈린 두 당 대표의 한마디, 한마디가 헤드라인인데 기자들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기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야 당 대표는 격해진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기자들은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숨을 죽이고 그들의 싸움에 모든 신경세포를 청각에 집중했다.
 여당 대표의 삿대질이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국회의원이면 다 같은 국회의원 인줄 알아? 여야 합의가 장난이야? 당 대표라고 대우해줬더니, 이거 막가자는 거야 뭐야?”
 야당 대표도 물러서지 않았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자고 한 게, 그게 합의야? 선배면 선배다워야지, 어따 대고 삿대질이야?”
 각 당 의원들이 말리면 말릴수록 두 당 대표의 언쟁은 더 거세졌다.
 “어디 근본도 없는 자식이 국회에 들어와서 물을 흐려, 개나 소나 다 뱃지만 달면 국회의원인줄 알지? 너 같은 놈들 때문에 국개의원 소리를 듣는 거야, 이 자식아.”
 여당 대표의 개나 소 발언에 야당 대표는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었다.
 “이 양반이 말이면 단 줄 아나? 아니, 말 나온 김에 개나 소나 데려다가 누가 정치를 더 잘하나 한 번 봅시다.”
 둘의 싸움은 걷잡을 수 없었다. 여당 대표는 급기야 욕설과 함께 손에 잡힌 명패를 집어던졌다. 야당 대표는 날아오는 명패를 피했고, 졸고 있던 의원 하나가 명패를 맞고 쓰러졌다. 싸움은 이제 벤치 클리어링으로 바뀌었다.

 여야 의원들의 싸움 장면은 고스란히 방송과 신문 1면을 장식했고, 이후 양당의 지루한 신경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장외 투쟁과 전원사퇴를 부르짖으며 양 당의 감정싸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갈수록 치졸해지는 싸움은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논의 중이던 수많은 사안은 사라지고, 개나 소가 정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화두가 됐다. 어처구니없는 이들의 싸움은 일명 ‘개나소나법’ 상정을 두고 치열하게 격돌하는 양상이 되었다. 누가 법안을 대표발의하고 누가 동의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도 그들의 싸움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국민들의 무관심과 계속되는 국회의원들의 싸움 속에 ‘개나소나 논쟁’은 국회의사당을 떠돌고 있었다. 의사당은 이미 아수라장이 된지 오래였고, 국회의원들은 매일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며 싸워댔다. 유치원생의 국회 견학도 전면 통제됐다.
 국회의장은 거친 욕설이 난무하는 혼돈 속에서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긴박한 표정으로 의장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전했다.
 “의장님! 큰일 났습니다.”
 침까지 흘리며 졸고 있던 의장은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사내를 쳐다봤다.
 “무슨 일인데? 여기보다 더 큰일이 있어?”
 사내는 더 작게 소곤댔다.
 “우창석 기자가 의장님과 시호씨 관계를 눈치 챈 것 같습니다.”
 시호는 아이돌 그룹 멤버이자 최근 영화를 찍으며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가수 겸 영화배우였다.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던 의장은 깜짝 놀라 의자에서 떨어졌다.
 “어디까지 눈치 챘다는 건데?”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시호 씨랑 필리핀에 다녀온 것까지…….”
 “아, 씨발, 좆됐네. 좆됐어.”
 의장은 한참을 중얼거리다 사내의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이 새끼야. 그럼 우 기자를 불러다가 술을 먹이던, 돈을 주던 방법을 찾아야지. 여기 와서 이러면 나는 어쩌라는 거야?”
 사내는 의장이 멱살을 흔들며 죽일 듯이 몰아세우자 조심스럽게 묘안을 제시했다.
 “의장님!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방법이 있다는 말에 의장은 멱살 잡은 손을 풀며, 사내에게 귀를 가져다댔다.
 “이건 제 생각인데요. 지금 의장님 사건을 덮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장님 열애설보다 더 큰 뉴스를 터트리는 겁니다.”
 의장은 사내의 말에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누가 그걸 모르냐? 나와 시호 관계보다 더 큰 뉴스가 뭐가 있어. 답답하네 진짜.”
 절망하는 의장의 모습을 보며 사내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의장석 앞까지 몰려와 드잡이를 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사내의 의미심장한 눈짓에 잠시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던 의장도 이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개나소나?”
 의장은 혼란한 틈을 타 의사봉을 번쩍 들어올렸다.
 ‘탕! 탕! 탕!’

병환의 이야기를 듣고 나 기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 기자는 승용차 창문을 내리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라꼴이 참.”
 나 기자는 불을 붙이려다 말고 병환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니 근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좆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왜 다들 몰랐지?”
 병환은 나 기자의 입에 있는 담배를 빼앗아 불을 붙이고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다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기억을 지워버린 거겠지. 집단 기억상실증 같은? 그리고 누가 설마 개나 소가 정치를 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냐.”
 병환과 나 기자는 한동안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나 기자는 세 번째 담배를 꺼내 다 담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 진짜, 미친척하고 이번 지방선거에 강아지를 출마시켜볼까?”
 “에이…….”
 “왜? 너 안 군수 떨어뜨리고 싶다며? 불법도 아니잖아? 막말로 이런 개똥같은 법을 만든 놈들인데 똑같이 당해봐야지 안 그래?”
 “정말 괜찮을까?”
 병환과 나 기자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골프채를 든 안종문 군수 앞에 오인문 사무장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이미 테이블의 음식들은 안 군수가 휘두른 골프채에 깨지고 부서져 캠프는 난장판이 된 상태였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안 군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처박고 있는 사무장의 머리를 골프채로 툭툭 치며 말했다.
 “인문아. 이제 네가 하다하다 별 짓을 다하는 구나.”
 “…….”
 사무장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었다. 안 군수는 들고 있던 골프채를 바닥에 던지고는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사무장에게 말했다.
 “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왜 매번 사고를 치는지 모르겠다.”
 안 군수의 화가 조금 누그러진 듯하자 사무장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전 그저……, 매형을 위해서…….”
 사무장의 말에 안 군수는 골프채를 다시 집어 들고 내려치려했다. 이때 옆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서장이 캠프로 들어왔다. 서장은 눈앞에 펼쳐진 캠프 상황을 보며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엎드려 있는 사무장 앞으로 다가서며 안 군수에게 말했다.
 “형님, 그 골프채 좀 내려놓으셔. 이러다 처남 잡겠소.”
 서장이 거들자 사무장은 든든한 지원군이라도 만난 듯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군수도 서장의 만류에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서장은 바닥에 떨어진 물병을 집어 들고 뚜껑을 따면서 말했다.
 “인문이가 성급하긴 했어도 이 동네에서 형님 삼선 의심하는 사람은 없어요. 딴에는 형님한테 잘 보이려고 그랬나본데…….”
 안 군수는 사무장을 한 번 흘겨보고는 넘어진 의자 하나를 끌어당겨 서장 앞에 놓았다.
 “우리 후배님도 잘 아시겠지만, 선거에 나온 후보자 마음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정치판이라는 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안개 속인데, 항상 조심해야지.”
 안 군수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서장에게도 담배를 권했다. 긴 호흡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서장이 말했다.
 “말씀하신 일은 잘 처리될 것 같습니다.”
 안 군수는 서장의 말에 정색을 하며 말했다.
 “우리 후배님, 감 떨어지셨네. ‘같습니다?’, 아니 그럼 잘못될 수도 있단 말인가?”
 서장은 아차 싶었는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형님 또 옛날 성질 나오신다. 제가 그렇게 얘기하면 끝났다는 거지 뭘 말꼬리를 잡고 그러십니까?”
 “뭐든 확실해야지 이 사람아. 내가 국회의원 초선 때 뚝심 하나로 당 대표까지 했던 사람인거 몰라?”
 “왜 모릅니까 제가. 삼선 당 대표 멱살 잡고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분이신데. 그나저나, 형님! 다음 총선 때 공천은 확실한 거죠?”
 안 군수는 서장의 말에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안 군수와 서장이 껄껄거리며 사담을 주고받고 있는데, 안 군수의 비서가 숨을 몰아쉬며 급하게 캠프로 들어왔다.
“군수님! 군수님!”
 매사에 신중한 비서가 법석을 떨자 안 군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주 앉아있던 서장도 담배를 비벼 끄며 비서를 바라봤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비서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안 군수와 서장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후보등록 마감 직전에 등록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개가 있습니다.”
 안 군수와 서장은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로 눈빛만 교환했다. 비서는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상황을 설명했다.
 “후보 등록자가 더 있다고 해서 급하게 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아갔는데요. 아 글쎄, 후보 등록을 한 건 맞는데 그게 사람이 아니라 개라는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안 군수는 비서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안 군수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사태가 파악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안 군수는 이른 아침, 비서가 가져온 지방 일간지를 모두 뒤졌다. 몇 개의 지방 일간지를 뒤적거리다 C일보의 1면에서 시선이 멈췄다. C일보 1면에는 개와 주인이 함께 찍은 사진이 크게 실렸고, 그 위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개가 후보 등록을’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2, 3면에는 해설 기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개나소나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배경을 설명하는 박스기사와 법적 문제는 없는지, 향후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예상하는 기사가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한참을 신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안 군수는 헛웃음을 지으며 신문을 내려놓고 비서에게 나기영 기자와 전화 연결을 하라고 지시했다. 수화기에서 마른 침을 삼키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나기영 기자님? 오랜만입니다. 저 안종문입니다.”
 나 기자는 안 군수가 왜 전화를 했는지 알면서도 무슨 일이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몇 번씩 선거를 치르는데도 여전히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정치담당 기자님들과 술도 한 잔씩 하고 그랬어야 했는데……, 그동안 많이 소원했습니다. 죄송…….”
 나 기자는 안 군수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말을 가로챘다.
 “오늘 기사 때문에 전화하셨구나? 세상에 참 희한한 일도 다 있죠? 개가 군수 후보라니 나 참. 저도 기사를 쓰면서 많이 당황했습니다.”
 안 군수는 입술을 깨물며 태연한 척 말했다.
 “나 기자님. 이게 말이 되는 기사라고 생각하십니까?”
 “말이 안 되죠. 개가 선거에 나온다는 게……, 근데 기사는 끝까지 읽어보셨어요? 그거 예전에, 그러니까 군수님이 국회의원 시절에 대표발의 한 법안이던데요.”
 안 군수는 전화기를 떨어뜨리고 멍하니 옆에 서 있던 비서를 바라봤다.
 “냉장고에 술 있나?”
 안 군수는 비서가 가져온 소주를 병째 들이켰다. 안 군수는 두 병을 마시는 동안 초점 없이 허공만 응시했다. 문득 ‘군민을 가족처럼’이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안 군수는 플래카드를 바라보며 비서에게 말했다.
 “그 개새끼 주인, 전화번호 좀 알아봐.”
 안 군수는 ‘군민을 가족처럼’이 붙어 있는 벽에 소주병을 던졌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소주병이 산산조각 나며 바닥에 흩어졌다.
 비서가 휴대전화를 바꿔주고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네. 박병환입니다.”
 안 군수는 서서히 술기운이 오르기 시작했다.
 “당신이 군수 후보 등록했다는 개 주인이십니까?”
 병환은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만.”

 안 군수는 치솟는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나 안종문이다. 이 개자식아.”
 병환은 안 군수의 갑작스러운 고함 소리에 잠시 겁을 먹었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군수님, 무슨 일로…….”
 안 군수는 병환이 말할 틈도 없이 쏘아 붙였다.
 “그래, 군수다. 개새끼야. 너 죽고 싶어? 선거가 장난이야?”
 안 군수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자 병환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저한테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네요. 후보등록은 제가 아니라 우리 강아지가 했습니다만…….”
 안 군수는 병환의 빈정거림에 뒷목을 잡으며 가벼운 신음을 토해냈다.
 “그러셔? 그럼 그 개새끼 후보 좀 바꿔줘봐.”
 병환은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병환이 강아지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안 군수는 ‘깜순아, 깜순아’하는 병환의 소리를 듣자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안 군수는 괴성을 질렀고,  병환은 안 군수가 이성을 잃고 괴성을 지르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안 군수는 휴대전화를 집어던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한참동안 핏대를 세우며 괴성을 지르던 안 군수는 비서에게 무슨 말인가 하려다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다음 날 뉴스에는 안 군수의 입원 소식이 전해졌다.
 ‘안종문 군수, 후보등록 후 갑자기 쓰러져……아직 의식 찾지 못해.’
  *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앵커가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불쾌지수가 매우 높은 날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나는데요. 이런 날에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전해드리게 됐습니다. 국회의원들의 말장난으로 시작된 ‘개나소나법’을 기억하시는지요? 결국 개가 후보 등록을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보도에 정치부…….” <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