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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어느 전 노조 간부의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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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어느 전 노조 간부의 단상(斷想)
  • 서한초
  • 승인 2022.07.1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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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뉴스] 서한초 기자 = 문득 생각이 났다. 휴대폰에서 그의 이름을 찾고 다이얼을 눌렀다. 눅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래되기도 했고, 오랜만이기도 한 친분이 있는 순천시청 공무원인 A형님에게 술자리를 권했다.

후배와 친구를 포함해 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 안부를 묻는 인사를 마치고 몇 순배의 술잔이 돌았다. 의례적인 인사처럼 노조 이야기가 나왔다. A형님은 노조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했다.

무엇보다 무관심하다는 듯한 뉘앙스의 이야기를 토해냈다. “작금의 순천시청 공무원노조는 색깔이 없다”라는 주장에 “그러든지 말든지”라며 무기력하게 답해 순간 깜짝 놀랐다.

◇ 외침없는 노조의 민낯

‘노조 집행부는 벙어리’라는 공무원노조 순천시지부 자유게시판에 조합원으로 보이는 필자의 글이 올라왔다. 댓글은 더 심각했다. 최근 정기인사를 두고 뒷말이 무성한데도 노조가 침묵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심지어 작금의 사태에 대해 논평 한 줄 없는 노조 간부들을 향한 실망감이 묻어 있었다. 반면 상대가 강하니 조용히 숨 죽이고 있어 조용하고 좋다는 비아냥도 양존했다.

노조가 반드시 강성일 필요는 없다. 또한 반드시 시시콜콜할 필요도 없다. 단체행동으로 말하는 것이 노조의 기본 원칙이다. 단체행동에는 다수결의 원칙이 내제돼 있어야 옳다.

하지만 외침없는 노조 역시 존재 가치를 상실한 집단과 다를 바 없다. 순천시지부는 어떠했던가(?). 파면 해임자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7명이나 발생했고, 강하게 반발해 전국공무원노조사에도 기록돼 있을 정도다.

◇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16년 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만난 A형님은 강성 노조원도 아니었고, 파쇼적이지도 않았다. 단지 탄압에 맞서 외쳤고, 동지들과 함께 한목소리를 냈을 뿐이다.

16년 여를 몸담아 온 조합원의 자격을 최근 스스로 내려놓았다는 A형님. 정체성 혼란에 빠진 사람처럼 무기력한 답변 속에는 시간이 만들어 놓은 처방전이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남겼다.

하지만 이유는 내부에 있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다르다”라고 말한 현 노조 집행부의 발언이 A형님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래서 몇 순배 술잔에도 쉽게 술기운이 올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 데자뷰의 연속

데자뷰의 연속이다. 그때의 사용자가 다시 나타났다. 조합원 대부분은 바뀌었지만, 그때의 사용자는 더욱 강한 능력을 소유한 공룡이 되어 돌아왔다. 공룡이 무서워 알아서 두려움에 떠는 노조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역사를 부정하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16년 여 전, 순천시지부의 질긴 투쟁을 부정한다면 현 노조의 미래는 불투명할 것이라는 여론이다. 데자뷰는 머피의 법칙처럼 좋지 않은 일에 더 많이 발생한다는 과학적인 데이터다.

초여름 저녁, 갓 어둑해지는 아파트 뒷길로 어느 전 노조 간부의 축처진 어깨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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