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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가족의 변화, 그 시작과 끝-낙태와 자기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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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가족의 변화, 그 시작과 끝-낙태와 자기결정권
  • 김원식
  • 승인 2022.09.26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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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상 박사&송유미 교수의 '우리 家 행복한 家' ⑥
이제상 박사.
이제상 박사.

[동양뉴스] '낙태와 자기 결정권'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낙태죄는 헌법정신에 위배된 법률’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9명 중 3명이 즉시 해당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단순위헌’, 4명이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유예기간을 둔 뒤 해당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반대로 2명은 해당 법이 헌법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합헌’ 의견은 냈다.

헌재는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지난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해당 법률을 계속 적용하도록 했다.

이 판결의 핵심요지는 제한적인 허용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한 현행 법률이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였다는 것이다.

이 자기결정권이란 개념이 현대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keyword)이다.

자기결정권은 개인의 사적 사안에 관하여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는데 성적 자기결정권, 재생산의 자기결정권, 생명·신체의 처분에 관한 자기결정권, 라이프 스타일의 자기결정권 등이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행위에 관한 모든 사항에 있어서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고 보장받을 권리를 말하며, 재생산의 자기결정권이란 자식을 가질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생명·신체의 처분에 관한 자기결정권은 장기이식이나 의료거부, 특히 존엄사 같은 생명·신체의 처분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말한다.

라이프 스타일의 자기결정권은 흡연 음주 외양 복장 두발 등 취미와 기호를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선진국일수록 자기결정권 존중'

경제가 발전할수록, 선진국이 될수록 자기결정권은 개인의 자아실현이란 개념과 함께 더욱 중요시하게 된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정치학 교수 로날드 잉글하트(Ronald Inglehart)는 1980년대부터 실시해온 ‘세계가치관조사’에서 전 세계 70여개국을 조사한 결과, 생활이 나아질수록 인간의 가치관은 생존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성적 규범, 가족의 가치, 종교적 지향, 소비패턴, 작업방식, 투표행위 등 모든 삶의 영역에서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더욱 중시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한국도 경제가 발전할수록 개인의 자아실현과 선택의 자유를 중요시하고 개개인이 이를 내면화하는 방식으로 국민 의식이 바뀌고 있다.

이런 흐름에 가장 부합하는 법적 개념이 자기결정권이고, 이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명시한 헌법 제10조에 연결된다.

자기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통해 개인의 인격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결정권을 통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시대적 흐름이고, 헌법재판소는 이 흐름에 따라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판결을 내렸다.

1997년 동성동본금혼제 헌법불합치 결정, 2009년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2015년 간통죄 위헌도 이 맥락에서 나왔다.

대법원의 2013년 부부강간죄 성립 판결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불법도 합법도 아닌 낙태'

그런데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지고 무효화된 지 2년이 가까운 지금은 어떠한가?

현재 한국에서는 낙태가 불법은 아니지만 딱히 합법도 아니다. 낙태죄의 형법 조항은 효력을 잃었지만, 낙태는 아직도 법적 권리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낙태죄 존속과 낙태 제한이 포함된 대체 입법을 추진하다 반발에 부딪혔고, 지금껏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은 채 법적·제도적 공백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평범한 여성들은 낙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싼 낙태 비용, 많은 병원들의 시술 거부, 낙태약이 여전히 금지된 현실 등, 여성들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개정하고 임신중절수술을 위한 체계적 법 마련이 필요한데 그간 정치권의 입법 논의는 거의 없었다.

임신 초기 낙태를 허용할 수 있는 기간을 명시하는 등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그 외 낙태 수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문제, 수술보다 안전한 낙태 유도 약물 허용 문제, 피임 교육 강화 등 함께 풀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정치권의 조속한 논의와 입법을 촉구한다.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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