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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왜 가족이 힘들까?-'희망자기'의 헛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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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왜 가족이 힘들까?-'희망자기'의 헛된 믿음
  • 김원식
  • 승인 2022.11.16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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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상 박사&송유미 교수의 '우리 家 행복한 家' ⑨
​송유미 대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소장)​
​송유미 대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소장)​

[동양뉴스] '학대당한 성인일수록 부모에 대한 헛된 기대 품어'

‘짜임새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를 바꿀 수는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살도록 주어진 그 현실 가운데에서 지나치게 걱정하면서 살지 않도록 스스로 심리적인 방어기제를 발달시키는 것 뿐이다.’ 

미국의 심리상담가 데이빗 셀라니(David P. Celani)가 그의 저서 리빙홈(Leaving Home)에서 말하고 있다.

특히, 방임당하고 학대당한 유년시절을 보낸 성인일수록 자신의 부모에 대한 파괴적인 분노와 상처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발달시킨다고 했다.

그것이 희망자기(hopeful self)이다.

희망자기란 부분적으로나마 자신의 부모가 미래의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망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부모를 완전히 버리지 않도록 하는 방어기제이다.

이것은 부모가 자신의 욕구를 미래의 언젠가는 지지해 줄 것이고 자기에게 큰 사랑을 보여줄 좋은 부모라는 헛된 믿음이다. 

부모에 대한 희망자기로 상처받은 자기를 구원하고자 했던 A씨가 있다.

A씨는 1남 3녀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두 명의 언니를 두고 막내딸로 자라다가 초등학교 때 남동생이 태어났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할머니 손에서 주로 자랐다.

딸이 많은 탓에 옷이든 학용품이든 뭐든지 물려받았던 기억만 나고, 어린 시절의 기뻤던 추억은 별로 없다.

더군다나 심부름은 자신이 도맡아했던 것 같고, 그럴 때면 자기만 미워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엄마가 한 번도 자기에게 예쁘다거나 영리하다거나 귀하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쌀쌀맞았던 엄마가 제일 신경을 써 주었던 때는 '자신이 아팠던 때'로 기억했다.

그때도 어루만져주거나 안아주었던 기억은 없었고 그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문 앞에 서 있던 기억이 전부였다.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40대 엄마 A씨, 친정 엄마에 희망자기로 집착'

아버지는 큰언니와 동생에, 엄마는 둘째언니와 또 동생에 대한 사랑뿐이다.

남동생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이해한다 치더라도 딸 셋 중에 자신이 제일 어려운 형편인데도 어릴 때처럼 자기에서 모든 것을 다 맡긴다.

큰언니는 중2의 딸과 초3의 아들, 둘째 언니는 초3의 딸과 6세의 딸을 키운다.

A씨는 초2와 7세의 아들 그리고 2세의 딸을 키우는데도 엄마는 둘째 언니의 아이들을 돌보아주고, 방학이면 A씨 집에 둘째 언니의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아이들이 A씨 집에 있으면 잘 논다"는 게 엄마의 항변이다.

미안한 기색도 없다고 한다. A씨가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자신은 엄마에게서 받은 것은 거의 없다. 엄마는 텅 빈 찬장 같은 허울뿐이다.

A씨가 자신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아이의 감정을 다루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가 울면 어쩔 줄 몰라 "당장 그치지 못해? 안 그러면 진짜 혼난다"와 같은 난폭한 말을 할 때도 있었다.

평소 아이가 감정을 드러내도 직접적으로 면박을 주지는 않았지만 모른 척 했다.

첫째 아이가 세 살밖에 안 되었을 때도, 연년생 동생을 돌보느라 집 밖을 혼자 돌아다니게 했던 적도 있었다.

상담 중에 A씨는 자신이 어릴 적 엄마랑 닮아있는 것에 놀라며 눈물을 보였다.  

A씨는 사랑에 굶주린 모습을 보였다.

친정 엄마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성인임에도 그 관계를 위해 애쓰고 있었다.

엄마가 언니네 아이들을 A씨 자신에게 떠맡겨 힘들었지만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A씨는 엄마로부터 사랑의 욕구가 간절해서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다 받아주면 사랑해 줄 것이라 믿는 A씨의 희망자기 탓이었다.

희망자기를 가짐으로써,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받지 못했던 사랑과 지지에 대한 희망을 붙들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성격 전반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믿음이다. 상처받은 자기의 반대급부이다.

A씨 엄마는 언젠가는 A씨를 지지해주고 큰 사랑을 보여 줄 엄마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엄마였다면 A씨가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어린 시절 그 때 이미 충분히 주었을 것이다.

해주지 않는 엄마에게 목매고 있는 것은 엄마에 대한 집착이다.

집착의 결과는 좌절일 뿐이다. 

'성인이면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해야'

'현실'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희망자기가 생기면 그것은 이제 성인이 된 자기가 자신의 역기능적인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하는 노력을 파괴시킨다.

A씨가 살기 위해서는 원가족의 엄마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독립은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엄마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 때문에 자기 내면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알고, 그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엄마로부터가 아니라 A씨 스스로부터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얼 했을 때가 가장 편안하고 좋았는지, 누가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는지 등을 탐색해야 한다.

그것들을 스스로 하든지 어렵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언니의 아이들을 도맡아 돌보는 것이 과연 자신이 원하고 편하고 좋은가!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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