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뉴스] 40대 후반 A씨는 공무원인 남편과 대학생 아들을 두고 있다. 성실한 남편에 큰 불만은 없지만,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지 않아 갈등이 이따금 있어 왔다고 했다. 서울로 유학 간 아들은 나름 잘 커 준 것 같아 다행인 것으로 생각했다. 어릴 적에도 부족함 없이 자랐기에 친구들의 부러움도 샀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그들보다 작게 느껴졌고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지 못해 주변을 맴돌았다. 대학생활은 신입생 때부터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해 열심히 활동하다보니 같은 학과 선후배, 동기들과 별 교류가 없었다.
▲깊은 친밀한 관계 어렵고, 갈등에 해결 못해 회피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결혼과 동시에 임신하는 바람에 동기들과 어울릴 시간도 없었다. 3학기 때 어느 수강과목에서 조별 과제가 있었는데, 조원들이 아예 자기를 배제시켜 버려 학점을 날린 적도 있다. 조원들이 자기를 참 미워했던 것 같고, 자기를 ‘4차원에 사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대학원에 충실할 수 없었던 그때의 개인적인 상황들이 싫었고, 자기를 배제시켜 버린 동기들이 서운했다. 현재 전공과 관련된 동종 업종에서 일하고 있지만, 교류는 거의 단절되어있다.
필자는 A씨와 대화를 나누며, A씨가 오랜 신앙생활을 해왔기에 교회 신자들과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여러 신자들에게 불만이 많았고, 그 불만을 처리하는 방법은 관계를 차단시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같은 교회에서 매주 만나는데 불편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불편하지만,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몰라 주로 못 본 체 하고 예배가 끝나는 대로 얼른 나와 버린다”고 했다.
A씨는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패턴을 보면 일관성이 있다. 어느 누구와도 친밀하게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갈등이 생겼을 때 풀어가는 방법을 몰라 회피하는 방식을 취했고, 회피한 이후에는 상대방을 비난하곤 했다. 전혀 관계가 없는 제3자를 붙들고, 자기가 상대했던 사람들을 뒷담화하며 자기에게 동조해주기를 기대했고 자기처럼 그들과의 관계를 차단시키려고 유도했다.
▲‘버림의 불안감’을 갖게 된 어린 첫 기억
A씨 관계 패턴의 출처는 어디에 있을까? A씨 집안은 목사들을 배출한 터라 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든 눈 밖에 나서는 안 되고, 신앙생활에서 모범이 되어야 했다. 그의 첫 기억은 끔찍했던 엄마의 손찌검이었다. 글자를 배우는 게 재밌어서, 집 안 여기저기에 낙서를 해댔는데 어느 날 성경책 어딘가에 빨간 색연필로 큼지막하게 자기 이름을 쓰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뒤통수에 엄마의 손찌검이 날아왔다. A씨는 자기가 쓴 이름을 엄마가 큰 소리로 읽어주면서 ‘우리 딸 최고!’라는 소리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때 ‘퍽’이라는 소리와 함께 아픔이 느껴졌다. 이내 ‘깜깜함’으로 두 눈을 감아버렸고, 파르르 떨렸다. “그때 자신에게 어떻게 느껴졌냐”고 물으니 “가장 소중히 아껴야 하는 성경책을 더럽게 했기 때문에 엄마에게 큰 죄를 지은 ‘나쁜 아이’인 것 같다”고 했다. ‘나쁜 아이’는 A씨의 자기표상이다. 이어서 “엄마에게 어떻게 느껴졌느냐”고 물으니 “그 자리에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지만 용서해 주지 않은 지금까지도 용서해 주지 않은 ‘야속한 엄마’”라고 했다. ‘야속한 엄마’는 A씨의 대상표상이다.
대상관계이론에 따라 A씨의 내적 대상관계를 살펴보면 A씨가 애절하게 용서를 구하고자 했던 것은 엄마에게서 버림받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끝까지 용서해 주지 않고 나쁜 아이로 속죄만 하면서 살게 한 엄마 역시 A씨가 자기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함으로써 A씨에게서 버림받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소망의 결과였다. 결국, A씨의 엄마는 자신의 버림의 불안감을 자녀인 A씨에게 투사하여 A씨 역시 자신처럼 버림의 불안감을 갖게 하여 자기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엄마에 의해 형성된 내적 대상관계 패턴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관계적 역동성 이해하고 재내면화해야
A씨는 40대 후반의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지만, 그때의 어린 A씨에게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되었다. A씨는 자신의 엄마로부터 내면화된 죄책감과 억울함을 ‘투사’라는 심리적 기제를 가지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제거하고자 했다. 즉, 투사를 통해 관계하고 있는 남편, 자녀, 교회 신자, 다른 타인들을 조종하여 자신의 죄책감과 억울함을 없애고자 했다. 그러나 실패하고 도리어 죄책감과 억울함이 더 견고하게 재내면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필자는 A씨가 이 같은 관계적 역동성을 이해하고 통찰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일차적으로 어릴 적 자신을 죄인처럼 다루었고 그때 바로 용서를 구했지만 지금껏 용서해 주지 않은 엄마를 향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A씨의 봇물 터지 듯 쏟아지는 눈물에 필자도 함께 울었다. 한참을 울더니 커다랗게 숨고르기를 하였다. 이 순간이 엄마로부터 형성된 내적 대상관계 궤도에서 새롭게 재내면화된 궤도로 옮겨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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