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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이 무장봉기를 하려고 했다구? ‘왕재산’ 사건의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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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이 무장봉기를 하려고 했다구? ‘왕재산’ 사건의 의문점
  • 고희철
  • 승인 2011.08.25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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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4일 총책이라는 김 모씨에 대한 압수수색과 구속으로 시작된 왕재산 사건의 국정원 수사가 일단락됐으나 여전히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어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제기의 핵심은 국정원과 검찰이 ‘왕재산 조직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라고 주장하는 부분에 집중되고 있다.

반국가단체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정부를 사칭하며, 체제를 위협하는 활동을 한 단체를 말한다. 현재 북한이 반국가단체로 지정돼 있는데, 예를 들면 군사쿠데타를 음모하는 조직이 적발된다면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로 지정될 수 있다.

국정원은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들에게 왕재산이라는 반국가단체가 존재하고 ‘총책’ 김 씨를 비롯해 구성원 다섯 명이 북의 조선노동당에 입당해 훈장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추궁했다. 또 국정원은 이들이 북한의 지시에 따라 남한 내에 지하당을 구축하고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무장봉기를 준비했다는 혐의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5명의 피의자는 묵비를 하며 반국가단체 혐의는 물론 국정원의 수사를 전면 거부하고 있다고 가족들은 밝혔다.

‘국정원 주장 인정해도 반국가단체는 무리’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국정원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반국가단체 구성 요건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3일 기소된 김 씨와 역시 구속 중인 임 모씨 등 4명의 활동이라고 국정원이 주장하는 것은 동조세력을 규합하고 북한에 정보보고를 한 것이 거의 전부다. 동조세력도 구속자 5명 외에 현재로서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지목할 수 있는 대상자가 뚜렷하지 않다. 국정원은 인천지역의 야당 구청장 세 명을 비롯해 수십 명에 대해 마구잡이로 조사를 하고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구속자가 5명 외에 없다는 점은 애초 ‘반국가단체’가 상당히 과장돼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배진교 인천 남동구청장 역시 “국정원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느닷없이 찾아와서 아무개를 아느냐고 묻고는 돌아갔다. 이게 수사 전부라니 황당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던 이들 중 거꾸로 “왜 조사를 받게 됐냐”는 질문을 받은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구속자들이 회사 동료나 학교 선후배로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인 점을 들어 ‘잘해야 활동가들의 서클 정도에 불과한 것을 국정원이 의도적으로 뻥튀기한 것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국정원은 구속된 이들이 북으로부터 조직 전체는 왕재산, 인천조직은 월미도, 서울조직은 인왕산 등의 암호를 부여받고 각 지역 책임자를 둬서 조직적으로 체제 전복 활동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북에 보고했다고 하는 내용은 정보의 수준으로는 조악하고 저급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이 구속자들에게 북에 보고한 내용이라고 제시한 것은 대부분 인천지역 단체와 일부 야당의 동향이라는 것이 가족들의 전언이다. 과연 5명이 야당 일부와 인천지역 단체 동향을 파악하는 수준의 활동을 한 것을 ‘반국가단체’라는 어마어마한 딱지를 붙일 수 있는지 가족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이 북한에 보고했다는 내용은 극히 일반적인 내용에 불과한데다 사실 관계에 어긋나는 것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정보 보고 내용은 인터넷이나 증권가 정보지(이른바 찌라시)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을 모은 것이어서 ‘기밀’이라고 보기 어려운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들 5명이 무장봉기를 획책했다는 국정원의 주장도 의문이 일기는 마찬가지이다.

구속자의 지인 김 모씨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들이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무장봉기를 일으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추궁했다. 70, 80년대 군부독재 시절 학생운동 일부에서 얘기되던 ‘무장봉기’에 대해 국정원이 수사한다는 소식을 들은 변호인단과 진보진영 인사들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내용에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만약 이런 식의 법 적용이 이뤄진다면 몇몇 사람의 상상이나 문서 작성만으로도 무시무시한 무장봉기 혐의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통합 겨냥한 절묘한 ‘타이밍’

수사가 본격화한 시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국정원은 왕재산이 지난 1993년 북에서 지령을 받고 2000년경 구성된 조직이라고 보고 있다. 국정원이 추적해온 것만도 수년째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수사가 본격화한 것은 지난 7월초다. 국정원의 수사가 마무리되고 결과가 발표되는 8월말은 진보정당 통합이 결론나는 시기다. 이른바 ‘종북’ 문제는 지난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에까지 영향을 미친 민감한 사안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경우에 따라서는 진보정당 통합 논의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폭탄성 이슈다.

국정원의 수사가 민주당 등 관련 당사자보다는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 집중되자 사건 당사자들은 물론 진보진영에서 ‘통합 방해 술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집권세력이 국정원을 앞세워 진보정당 통합을 방해하려는 기획수사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변호인단의 이광철 변호사도 24일 기자회견에서 “국정원의 수사가 7월초에 시작돼 진보정당 통합 논의가 결론을 맺는 8월말에 수사 결과가 나왔다”며 “더욱이 1심 판결은 총선을 앞둔 내년 2월경에 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혀 ‘기획수사’ 의혹을 뒷받침했다.

국정원의 무리한 수사는 월간 ‘민족21’ 수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국정원은 당초 안영민 주간 부자(父子)와 정용일 편집국장을 압수수색 및 조사할 때는 일진회(당초 국정원은 왕재산의 조직 명칭을 일진회로 주장했다)와의 관련성을 추궁했다. 사건을 공개하면서는 조직 이름이 왕재산으로 바뀌더니 ‘민족21’은 왕재산과 상부 조직이 다른 별건의 수사라고 발표됐다. 그럼 이전에 안영민 주간을 수사한 내용은 무엇이며, 어떻게 조직사건의 상부가 달라질 수 있냐는 발행인 명진 스님과 회사 관계자들의 항변에 국정원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종합하면 이번 사건은 반국가단체로 몰아가기에는 국정원의 주장에 근거해도 무리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를 대체하고 체제를 위협하려면 그에 따른 조직규모와 구체적인 활동 등이 필수적인데 김 모씨의 압수수색에서 나왔다는 디지털 증거, 즉 파일에만 의존하고 있다. 국정원이 수년간 관찰하고 추적해왔다지만, 과거의 조직사건 사례와 비교해도 ‘함량 미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종의’ 필요에 의해 국정원이 서둘러 사건을 터트리고 수습이 되지 않자 무장봉기를 준비했다느니, 북에서 훈장을 받았다느니 하는 자극적인 내용을 덧붙여 시선 끌기와 여론공세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한때 공소유지 회의론

이와 관련, 검찰 내부에서도 한때 이 사건을 두고 회의론이 번졌다는 후문이 돌아 눈길을 끌고 있다. 반국가단체로 공소 유지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평을 검사들이 국정원에 했다는 것이다. 한상대 검찰총장이 취임 직후 이례적으로 왕재산이라는 개별 사건을 거명하며 엄중 수사를 촉구한 것도 이런 기류에 쐐기를 박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추가로 어떤 증거를 내놓을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최근의 국가보안법 사건처럼 반국가단체로 기소해서 이적표현물과 회합통신 등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는 양상이 반복될 것이라고 관련단체들은 예상하고 있다. 결국 국정원은 진보정당 통합을 겨냥해 ‘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중의소리=고희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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