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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복림 할머니 가게, '임국희 여성살롱'이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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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복림 할머니 가게, '임국희 여성살롱'이 키웠다
  • 이동권
  • 승인 2011.12.1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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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복림 할머니가 운영하던 신당동 원조 떡볶이 집은 언제부터 유명해졌을까?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마복림 할머니의 손맛은 이제 어디에서 맛 봐야 하나?

떡볶이 맛신당동 원조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던 마복림 할머니가 91세로 별세하자 마복림 할머니가 운영하던 신당동 원조 떡볶이에 대한 갖가지 궁금증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중에서도 누리꾼들의 관심은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 집이 유명해진 이유와 마복림 할머니의 손맛이다.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 집이 유명해진 이유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 집은 마복림 할머니의 실수 때문에 탄생했다. 친정아버지와 중국음식점을 찾았다가 개업 기념으로 준 가래떡자장면에 빠뜨리면서다. 마복림 할머니는 가래떡을 차마 버릴 수 없어 건져 먹었는데 맛이 괜찮아 창업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밀가루 떡과 고추장, 춘장을 섞어 요리한 마복림 할머니의 떡볶이가 처음부터 인기를 끌지는 않았다. 가래떡은 명절 때나 먹는 떡인데다 떡을 장에 볶아 먹는 것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특유의 감칠맛 때문에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마복림 할머니 노점 인근에 떡볶이 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 집은 동네 인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떡볶이 집 개수도 많지 않았다.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 집이 널리 알려진 것은 1970년대부터다.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음식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데다 MBC 임국희의 여성 살롱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신당동 떡볶이를 소개한 뒤부터 입소문을 타고 타지역 사람들까지 방문하게 됐다.

이후 신당동에는 '바보들'이라는 떡볶이 집에서 뮤직박스를 설치하고 아마추어 DJ가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기도 했고, 뮤직박스가 인기를 끌자 여기 저기에서 뮤직박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주제로 DJ덕의 노래 '허리케인 박'의 가사가 그 당시의 이야기다.

마복림 할머니집 원조 맛은 막내아들집에서

마복림 할머니의 별세로 많은 누리꾼들이 마복림 할머니의 손맛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똑같은 재료와 양의 떡볶이라도 그 맛이 달라지는 이유다.

하지만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삶은 유한하고,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복림 할머니가 생각난다면 신당동에 위치한 마복림 할머니 막내 아들네 떡볶이 집을 권한다. 막내 아들네 떡볶이가 아무래도 마복림 어머니의 손맛과 가장비슷하기 때문이다.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 집은 언제나 손님들로 꽉찼다. 추운 겨울에도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를 선호했던 사람들은 두 손을 호호 불며 끝까지 기다렸다가 떡볶이를 먹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님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와 마복림 할머니 막내 아들네 떡볶이 두 가지를 모두 맛본 손님들이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 집에 사람이 몰리면 막내 아들네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두 곳의 맛이 크게 다르지 않는데다, 마복림 할머니 사진까지 붙여놓은 간판이 크게 신뢰를 주었기 때문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다. 마복림 할머니의 손맛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꼭 마복림 할머니 막내 아들네 떡볶이 집으로 가서 마복림 할머니를 생각하며 떡볶이를 먹어보자. 바로 딱 그 손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민중의소리=이동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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