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의 완성…병원서 허드렛일 하는 박종명씨 새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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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의 완성…병원서 허드렛일 하는 박종명씨 새 삶
  • 서다민
  • 승인 2020.03.03 15:5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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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출입구에서 출입하는 보호자들의 체온을 재고 있는 박종명씨
병원 출입구에서 출입하는 보호자들의 체온을 재고 있는 박종명씨

[동양뉴스] 서다민 기자 = 병원에 도착하니 최근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직원들이 초긴장 상태였다.

어느 병원 모두 마찬가지지만 재활병원의 경우 한 명이라도 확진 환자가 발생하면 병원 자체를 폐쇄해야 하기 때문에 생사가 달린 일이었다.

병원 입구에는 손 소독제 2개와 체온기 등이 놓여 있는 작은 책상이 먼저 맞이했다.

그 책상을 지키고 있는 다소 부자유스러운 직원이 눈에 띄었다.

편집자는 우선 손 소독제를 손바닥에 담아 비볐다.

병원을 찾은 이유는 ‘재활의 완성’이 있다기에 찾아 나섰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가 재활을 통해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은 꿈과 같은 일이다.

기독교에서 우화로 얘기하는 ‘천로역정’보다 더 험하면 험했지 재활을 통해 어둠과 아픔의 터널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충남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 새로나 재활병원에 재활의 완성이 있었다.

체온을 재기 위해 측정기를 귀에 갖다 댄 순간, 그는 손끝을 떨었다.

뇌의 절반을 수술하고 왼쪽 대퇴부를 도려낼 만큼 살점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불편하면서도 웃음이 묻어나고 친절이 몸에 배어있는 그의 행동에서 또 다른 희망을 보았다.

‘재활의 완성’

말은 쉽지만 표현하긴 건방지다고 할 만큼 어렵다. 겁이 나는 단어이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표현하고 싶다.

완성이 있다면 시작도 있다. 재활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1인칭 기법으로 그의 꿈을 그려본다<편집자주>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삶

내 나이 이제 마흔에서 한 살 모자란 서른아홉이다.

나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 태조산 기슭의 향교가 있는 마을에서 살고 있다.

노모가 챙겨주는 든든한 아침 식사가 소화도 될 겸 집에서 가까운 새로나 재활병원으로 향한다.

불편한 다리가 정상적이지는 않지만 흥얼흥얼 노래 부르며 도보로 걷기에는 수월한 거리이다.

내가 근무하는 새로나 재활병원 그 곳은 2년 동안 재활치료를 받았던 병원이기도 하면서 이제는 꿈을 그리고 있는 직장이다.

아침 9시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병원 곳곳의 청소다.

원무과 사무실의 소파와 탁자를 물걸레로 닦아내고 책과 신문들을 가지런히 배치한다.

이어 밤사이 어질러진 로비 청소도 내 몫이다.

로비 옆의 커피자판기에 컵을 보충하고, 물이 잘 나오나 점검한다.

왼손 다섯 손가락 협응이 만만하진 않지만 커피자판기 청소는 매일매일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병원의 직원들과 보호자, 환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에 내 손길이 닿고 있다 생각하면 잘해야 겠다’는 다짐과 ‘뭔가 내가 일을 하고 있구나’하는 자부심이 생기게 된다.

밖으로 나간다.

병원 주차장의 오물이나 쓰레기를 줍는 일부터 시작이다.

그 중 제일 힘든 곳이 흡연실이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담배 피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나도 한때는 담배를 피웠지만 이제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

주차장의 한 구석에 위치한 흡연실에 꽁초를 버리는 쓰레기통이 별도로 있지만 간간이 바닥에 버려지는 꽁초도 많다.

‘나보다 더 아프고 불편하니까…’라고 생각하면 내 맘이 더 편해진다.

주차장 한 쪽에 탕비실이 있다.

보호자들이 음식을 요리할 수 있도록 버너 시설이 겸비된 주방이다.

이 곳 청소도 내 담당이다.

걸레로 닦아내고 물수건으로 청소하고…

수시로 내 업무에 열중하다 보면 오후 3시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남들처럼 숙련되지 않아 더딜 수밖에 없지만 나에게는 행복한 시간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 층 가벼워진다.

병원 한 구석에 자리한 흡연실을 청소하는 박종명씨
병원 한 구석에 자리한 흡연실을 청소하는 박종명씨

▶젊음을 앗아간 오토바이, 어둠의 터널에서 방황만…

그러나 나에겐 어둠의 터널이 있었다.

현재 재활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완성을 위해서는 재활의 시작도 있었다.

시작이 있기 전 원인도 있고…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패스하고 1년 쉬다가 군대에 입대했다.

강원도 강릉의 전방초소에서 2년 2개월을 마치고 제대하자 천안 차암동에서 자동차부품을 판매하던 작은 아버지께서 나를 불렀다.

적성에는 맞지 않았지만 첫 직장치고는 다닐 만 했다.

떡하니 손주를 안겨주는 것이 효도라 생각하고 내 인생 설계를 꿈꾸며 2년을 불평 없이 다녔다.

그러던 2008년 8월 11일,

젊음을 만끽하던 오토바이가 내 생의 발목을 잡을 줄 누가 알았으랴.

이날 사고로 나는 단국대병원에서 1년 동안 움직이질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다가왔을까.

무섭고 겁이 났다.

어머니에게 부리던 짜증은 점점 더 늘어만 갔고, 늘 뒤에서 눈물 훔치시는 아버지 얼굴을 보면 죽고 싶었다.

앞으로 인생을 이렇게 사느니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머니도 울고 나 또한 많이 울었다.

어머니는 천안의 한 마트에서 저녁 늦은 시간까지 진열상품을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었을 텐데도 불안해하던 내 푸념을 다 받아주었다.

미래도 없이 지내던 단국대병원 생활을 마치고 2009년 6월 16일 재활병원인 새로나병원에 입원했다.

▶재활의 시작과 사회로의 복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나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었다.

조금이나마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재활치료에 전념해 아버지 어머니에게 돌아가자.

하루에 두 번 작업치료와 물리치료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치료사 선생님이 팔과 다리를 꺾으며 운동을 도와주었지만 꺾는 팔과 다리가 으깨지는 것 같았다.

2011년 5월 21일 새로나 재활병원을 퇴원하면서 3년 동안 통원치료와 재활치료에 전념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운동만 했다.

어머님과 수시로 태조산을 오르며 걸었다.

여동생은 나에게 꼭 필요한 지팡이였다.

여동생의 헌신과 노력이 없었으면 아마 중간에 걷기를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닥친 것은 먹고사는 문제였다.

장애를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새로나 재활병원 원무팀장님이 허드렛일이라도 해보라며 병원 일을 맡겨 주셨다.

부족한 나에게 이런 행운이 오다니…

새로나 병원 원무과에 취직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새로나 재활병원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나 또한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싶다.

난 행복하다.

나는 완벽하진 않지만 걸을 수 있기에.

또한 밥을 먹을 수 있기에.

나보다 더 아픈 환우를 도와줄 수 있어서.

나에겐 대기업보다 훨씬 좋은 직장이 있어서.

아직 꿈이 하나 남았다.

이젠 장가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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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2020-03-05 16:42:24
좋은글 감사합니다.

장광식 2020-03-04 04:25:10
가슴이 짠 하네요 ~~
삶에 교훈을 주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
코로나 19도 잘 이겨 내리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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