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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끄는 '사량도'..."유명한 것 두가지 해무,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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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끄는 '사량도'..."유명한 것 두가지 해무, 산길"
  • 송영두 기자
  • 승인 2020.08.06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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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끄는 '사량도'..."유명한 것 두가지 해무, 산길"(사진=한국관광공사)
눈길 끄는 '사량도'..."유명한 것 두가지 해무, 산길"(사진=한국관광공사)

[동양뉴스] 송영두 기자 =‘사량도(蛇梁島)’가 화제가 되고 있다. 사량도의 윗섬과 아랫섬을 사량대교가 잇는데 그 아래를 흐르는 해협의 옛 이름이 ‘사량’이다. 사량도에는 유명한 게 두 가지 인데 하나는 해무(海霧), 다른 하나는 산길이다.

한려수도해상국립공원의 중간에 위치한 사량도는 지리산, 옥녀봉, 불모산 등 바위로 된 봉우리와 능선을 연결한 종주길이 유명하다. 연간 10만 명의 등산객이 찾는다. 여러 봉우리 중 옥녀봉은 ‘한국의 100대 명산’에 이름 올릴 정도로 아름답다.

사량도의 옛 섬 이름은 박도였다. 두 개의 사량도 중에 서북쪽 위편에 위치해 있는 섬은 조선 초기 지명은 '상박도'였고 아랫 섬은 '하박도'였다. 고려시대에 박도구당소가 있어 봄. 가을로 관할 고성수령이 남해의 호국신에게 남쪽변방의 보전과 함께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망제를 지냈다.

조선초기 박도에 인접한 구량량만호진의 수군 및 병선의 초계정박처가 되었으며, 섬에 영전을 일구어 병사들이 내왕하며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진영을 이곳 섬으로 옮겨 사량만호진이 설치되고 성종 21년(1490) 사량진성을 축성하여 비로소 진영의 위용을 갖추었다.

사량진은 임진왜란 때에 영남과 호남을 해역을 잇는 조선 수군의 중요 거점이었다. 그후 통제영이 설치된 이래 통영군창 둔전과 통영둔우의 방목처와 더불어 거북배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에 장졸 합 216명 규모의 병력이 상주하며 이곳 해역을 지켰다. 그 후 진영이 더욱 중요해지자 점차 원래의 섬 이름인 '박도'보다는 '사량진' '사량' 등으로 일컬어지게 되었으며, 조선 후기에 이르러 결국 이러한 군영의 이름이 섬지명으로 전용되어 보편적으로 '사량섬' '사량도'라 칭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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