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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소] 왈도의 소곤소곤 이야기-오늘의 불쾌지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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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소] 왈도의 소곤소곤 이야기-오늘의 불쾌지수 ①
  • 서다민
  • 승인 2020.11.27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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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왈도(필명)씨의 소설 '오늘의 불쾌지수'는 매주 금요일 오후 2시 연재됩니다.

작가 왈도(필명)씨
작가 왈도(필명)씨

클로징 멘트를 남겨 둔 앵커에게 급하게 쪽지 한 장이 전달됐다. 쪽지를 다 읽은 앵커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1분이 넘도록 말이 없었다. 방송 사고였다. 하지만 카메라 앵글은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앵커를 계속 비추고 있었다. 무거운 시간이 흐르고 바싹 마른 앵커의 입이 열렸다.

 “참담한 날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죠. 이정표를 잃은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요? 오늘의 앵커 생각이었습니다.”

*

 후보자 등록 마감이 한 시간 남았다는 자막이 나오자 선거캠프의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TV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한 남자가 무전기에 대고 짧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이어폰을 낀 사람들이 옷깃에 대고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들은 특수한 임무를 부여받은 요원들처럼 서로에게 수신호를 보내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직사각형으로 생긴 대형 테이블이 ‘ㄱ’자 모양으로 배치되었고, 그 위에 하얀 테이블보가 깔렸다. 오랜 시간 숙련된 듯 그들의 행동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어 입 꼬리를 한껏 올린 미소로 남녀 직원들이 갖가지 요리를 정해진 위치로 옮겼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요리와 찬 음식, 한식과 후식이 끊임없이 테이블에 놓여졌다. 컴베이어 밸트가 작동하듯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들의 움직임에 테이블은 금세 빈틈없이 채워졌다.

 원형 테이블에는 포크와 나이프, 젓가락과 숟가락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놓여졌다. 원형 테이블 맨 앞줄의 특별석 중앙에는 ‘시바스리갈’이 보기 좋게 자리를 차지했다. 뷔페 직원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오인문 사무장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요! 좋아! 조금만 더 서두릅시다.”
 한껏 들떠있는 사무장과는 달리 안종문 군수의 비서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사무장님. 이게 뭐하시는 겁니까? 선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잔치라뇨.”
 사무장은 비서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 비서님은 매사 걱정이 너무 많아. 종문이 형님이, 아니 우리 군수님 당선이 확정됐는데 뭐가 걱정이야.”
 “사무장님, 당선이라뇨? 후보 등록이 끝났다고 선거가 끝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비서의 잔소리가 계속되자 사무장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사람아! 단독 후보라고, 단독 후보! 싸움은 끝났어.”
 비서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사무장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더 선거법을 조심해야죠. 군수님 삼선이야 의심하지 않지만, 그래도 선거가 끝날 때 까지는…….”
 비서가 선거법을 들먹이자 사무장은 비서의 말을 가로막으며 언성을 높였다.
 “법대 나왔다고 가르치나? 어디다 선거법을 들먹여?”
 사무장은 비서의 어깨를 밀쳐내며 뷔페 직원들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빨리 빨리 마무리합시다.”
 비서는 한숨을 내뱉더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캠프를 나갔다.

 호텔 뷔페가 부럽지 않은 파티 준비가 끝나자 사무장은 주차장이 보이는 캠프 뒤편 창문을 열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캠프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군사모(군수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다. 회원들은 당선인을 대하듯 사무장에게 악수를 청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사무장도 당연한 인사를 받듯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군사모 회원들이 들어오고 뷔페 직원들이 퇴장하자 파티 진행을 맡은 스태프 한 무리가 캠프에 들어섰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인기를 끌고 있는 MC 전영진씨도 보였다. 스태프들은 스피커와 마이크를 점검하며 리허설 준비가 한창이었다. 사무장은 무대의상으로 갈아입은 전영진씨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알은체를 했다.

 “구독자가 100만을 넘었다고요? 축하드립니다. 나도 영진씨 팬 인거 아시죠?”
 MC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사무장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오늘도 스케줄이 꽉 찼는데 다 펑크 내고 냅다 이리로 달려왔습니다.”
 사무장도 한쪽 눈을 질끈 감으며 MC의 손을 더 힘껏 쥐었다.
 “우리 군수님 삼선하시면 우리 영진씨 앞으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으실 텐데,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사무장의 말에 MC는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한 차례 리허설이 끝나고, 사무장이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 잡았다.
 “아! 아! 여러분 잘 들리십니까?”
 캠프를 가득 메운 회원들은 일제히 ‘네’ 하고 소리쳤다.
 “이번 선거가 좀 싱겁게 끝나긴 했어도 TV 앞에서 지루하게 개표 시간 기다리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미 선거가 끝난 것 같은 분위기는 사무장의 설레발에 점점 더 고조됐다. 사무실을 나갔던 비서가 뛰어 들어온 건 그때였다. 비서는 캠프를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란 표정을 짓더니 사무장을 찾았다. 사무장도 비서의 등장에 군수가 도착했음을 직감하고 점잖은 걸음으로 비서에게 다가갔다.
 “오셨는가?”
 비서는 캠프에 모인 사람들을 의식했는지 사무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 올라오시고 계세요. 경찰서장님도 함께 오셨는데 이 상황 이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쯧쯧, 이 사람, 아직도 쓸데없이…….”
 혀를 차는 사무장의 모습에 비서는 할 말을 잃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사무장은 매무새를 살피며 캠프 문을 열고 나갔다. 안 군수가 경찰서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무장은 성큼성큼 계단을 뛰어 내려가 군수에게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옆에 있는 서장에게도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안 군수는 사무장의 태도가 못마땅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뭐야 또?”
 사무장은 헤벌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가 오늘 조촐한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사무장의 환한 얼굴에 안 군수는 심기가 불편했다. 안 군수는 걸음을 멈추고 사무장의 볼을 잡아채며 말했다.
 “너 또 무슨 짓을 꾸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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