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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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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말 한마디
  • 서다민
  • 승인 2023.03.27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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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범 교수의 세상을 보는 눈
강경범 교수.
강경범 교수.

[동양뉴스] 정감 어린 고향의 구수한 말투가 사라지고 있다. 오래전 오순도순 모닥불 주변에 앉아 놀며 아름답게 들려주던 옛날이야기 생각에 지금도 그 시절이 그립다. 문화(文化)의 발달은 많은 것을 선사하겠지만 부부, 부모와 자식, 이웃 간에도 대화가 단절되어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정작 수많은 말(口)의 성찬(盛饌)속에 묻혀 살고 있지만 급조된 유행어나 수식어 속에 늘 헤매고 있다. 말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기에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것이다.” 길이라고 아무 곳이나 가지 않는 것처럼 말에도 신념을 간직한 채 한결같았으면 한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자(孔子)는 제자인 자로(子路)에게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라 하였다. 이 말인즉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라는 의미처럼 말의 중요성을 내포한다. 세 치의 혀(口)로 험담을 하며 사람을 잡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향기가 없는 꽃의 존재가치를 논할 수 없듯이 말의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면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다. 역사의 흔적 속에 가리어진 진실을 알지 못한 채 비단 그 아픔이 다수를 위한 희생양이 되어야만 맞는 것일까. 말은 주워 담기 힘들다. 말의 행동을 아름답게 하자 말에는 각자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말은 의사소통의 한 방법으로 간주 되지만 우리의 사고(思考)에 바탕을 둔다. 밝고 건강한 말, 거칠고 험한 말 모두 마음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2017년 대한민국 청소년기자단 김재윤 기자의 공식 페이스북을 활용한 자료에 의하면 "X발", "존X"….등 일상적인 대화 시 비속어를 사용한다는 내용이 55.6%를 차지하고 있다. 거친 말이 아름다운 말보다 한결 호소력(呼訴力)이 짙어서일까. 이제 단순하게 그들과 사회 차원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의식(意識)적 교육 차원에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시황제 시대 말더듬이로 말을 잘하지 못하여 글로 간언하던 한비자(韓非子)의 난언(難言)편에 “말이 상대의 마음에 거슬리지 않고 언어가 수식이 돼 있어 화려하면 실속이 없으며 또한 너무나 정중하거나 딱딱하고 소상하면 주제에서 벗어나는 수가 많다“하였다. 말은 때에 따라 어리석으며 미움과 분노를 사기도 한다. 때론 대답을 하지못하는 지혜로운 침묵보다 슬기로우며 현명함을 들어내기도 한다. 다정한 한마디 말의 진가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혀(口)를 잘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데에는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찬양과 저주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하찮은 불씨 하나가 온 산을 태우듯이 혀는 불씨와 같다. 폭군이자 호색한인 조선조 10대 왕 연산군 이융에게 총애를 받았던 기생이 있다. 어느 날 남편이 찾아와 말다툼한 것이 길몽인지 흉몽인지 꿈 이야기를 하자 연산군은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군졸하나를 불러 쪽지를 넘긴다. 얼마 후에 군졸은 쟁반에 보자기를 덮어 가지고 들어와 연산군에 바치니 그 쟁반을 총애하는 기생에게 내밀며 보자기를 열어보라 한다. 쟁반 위에는 목이 잘린 남편의 머리가 있던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되는 꿈 이야기가 불씨가 되어 남편을 죽인 것이다. 연산군의 무시무시한 공포정치에 관원과 내관들은 신언패(愼言牌)를 차고 다녔다. 당나라 말기에 태어나 후당 때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의 전당서(全唐書)에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자신을 베는 칼이다.”라는 글귀가 신언패에 새겨져 있던 것이다.

일상생활에 있어 각자 말의 필요성을 대하여 알고 있으나 요즘 같아서는 희망(希望)이 없다. 부단한 노력이나 확고한 신념은 뒤로한 채 사람들이 모이면 좌중을 선동하며 욕구와 갈증을 풀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한마디 말이 나라와 사회를 해치고 내 몸을 해치며 불화를 조장하고 가정의 파탄을 초래한다. 말을 쉽게 하는 이유는 책임과 행동이 따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건강한 삶을 위하여 서로 신뢰와 공감을 통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다정다감한 생명(生命) 살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집중하자.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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