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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착지 왜곡, 바로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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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착지 왜곡, 바로잡아야"
  • 김재하
  • 승인 2014.08.13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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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업회 사료분석.현장답사 통해 사계리가 아닌 신도리로 재확인


[제주=동양뉴스통신] 김재하기자 = 361년 전 제주에 표류한 하멜의 표착지가 왜곡돼 있어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멜기념사업회는 13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하멜표착지가 안덕면 사계리로 돼있으나 이는 잘 못된 것이며 원래 표착지에 희생자들의 위령비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채바다씨와 신도2리 하멜 표착지 규명 추진위원인 이용훈씨는 "그동안 수십여 차례의 현지답사와 원로 향토사학자들의 문헌자료 및 1696년도에 이익태 목사가 지은 '지영록'에 근거해 최초의 표착지가 신도2리 해안이라는 사실을 밝힌바 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상선 스페르웨르호는 361년전 대만 해협을 거처 일본의 나가사키로 가던 중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1653년 8월 16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해안가에서 좌초, 산산 조각이 난후 침몰했다.

당시 이 배에 타고 있던 선원은 모두 64명으로 선장 에그베르츠를 포함 28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일부 선원은 난파 해안에 묻혔다.

생존자 36명은 서울로 이송됐고 이후 강진, 순천, 남원,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배치돼 13년간 억류생활을 하다가 1666년 하멜 일행 7명이 일본으로 탈출, 1668년 네덜란드로 돌아가 억류기간 동안의 임금을 받기 위하여 보고서를 낸 것이 '난선 제주도 난파기' 즉 하멜 표류기로 제주가 서방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현재 하멜표착지는 안덕면 사계리로 돼있다.  하지만 1696년도에 이익태 목사가 지은 '지영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癸巳 七月二十四日 西洋國蠻人(서양국만인) 췬얌신 等六十四名(제 64명) 同乘 一船致敗(동승 일선치패) 于大靜縣地方(우대정현지방) 遮歸鎭下(차귀진하) 大也水沿邊(대야수연변) 死者二十六名(엄사자26명) 病死者二名(병사자2명) 生存者三十六名(생존자 36명)……'

또한 난파지점에서 대정현까지 '4으리(quater lieue)'를 4시간 정도 걸었다고 기록돼 있는데, 4으리를 미터로 환산하면 16km정도로 신도2리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문헌에 기록된 난파 장소는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졌고 구조를 외치며 올라섰던 높은 바위가 발달된 곳, 수중 암초가 해안 앞에 있는 곳, 찢어진 돛으로 천막을 치고 2000명 가까운 병사가 집결할 수 있는 평지가 형성된 곳이라는 점 등도 근거로 내세웠다.

하멜기념사업회와 신도2리 주민들은 오는 16일 오전 신도2리 도구리알 해안에서 하멜 표류 당시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네덜란드 선원 28명의 넋을 기리는 하멜 표착 361주년 추모 헌다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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