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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김정남 측근 숙청과정서 총격전 벌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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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김정남 측근 숙청과정서 총격전 벌어져
  • 박영애
  • 승인 2012.09.1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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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각 사건으로 김정은 유일 후계체제 인식 확고해져
▲ 최근 북한의 김정은(왼쪽)  김정남 (오른쪽) (사진제공/북한개혁방송)    
지난해 말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자 장길호(가명)씨의 증언에 의하면 2009년 4월 평양시 교외에서 벌어진 '우암각' 사건’당시 국가보위부가 김정남 측근들과 총격전까지 벌어졌던 것으로 14일  북한개혁방송 밝혀졌다.
 
당시 귀국길에 오른 김정남을 맞이하기 위해 김정남의 측근들이‘우암각’에 모였다는 정보를 입수한 김정은이 국가보위부를 동원해 김정남 측근들을 모두 제거했다.
 
이같은 사실을 폭로한 장씨는 북한 남포에서 무역회사 일을 하며 고위층들과 접촉 과정에서‘우암각 사건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들었다고 밝혔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우암각’에 모인 사람은 30여명 정도였고 이 중에는 당 보위부, 1 호위국 출신들과 장성급의 군부출신도 다수 있었다고 한다
 
‘우암각’ 습격은 30분 정도 걸렸는데 총소리도 몇 번 났으며 사상자가 누구였고 몇 명인지는 극비여서 알려지지 않았다.
 
‘우암각’ 사건 한 달 후에 김정남이 북한에 들어왔으나 귀국할 때까지 그는‘우암각' 사건이 벌어진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우암각’ 사건 이후 북한 고위층에서는 김정남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고 김정은이 국가보위부를 동원해 김정남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그의 측근들을 일망타진 했기 때문에 김정일의 의중에 맏아들 김정남은 후계자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김정남의 측근들이 숙청되면서 김정은으로 대거 이동하게 되었으며 이 시점을 계기로 ‘발걸음’(김정은 찬양가) 노래도 김정은 것으로 확정되고 ‘청년대장’도 김정은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2007년~2008년 사이에 김정일이 “(김정은이) 나이도 아직 어린데 청년대장이니 뭐니 노래 만드는 것이 그렇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는 바람에 고위층들이 우왕자왕 하며 눈치를 보았지만 우암각 사건이후로 김정은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암각 사건 직후 북한에 들어온 김정남은 아버지 김정일과 다투었다고 한다. 김정남이 우암각 사건에 대해 김정일에게 항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버지에게 돈 좀 달라고 했고 김정일은 무슨 돈이 있냐며 한참 싸웠다고 장씨는 들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김정일이 100만 달러 정도를 줘서 보내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이처럼 김정은의 우암각 습격사건을 계기로 김정일과 김정남 사이에 갈등이 폭발했고 중국 태자당과의 보호속에서 있던 김정남이 김정은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우암각 사건은 북한에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의 권력이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장씨는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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