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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 90년만에 추모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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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 90년만에 추모되다
  • 김인배
  • 승인 2011.08.2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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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회의, 백포 서일 총재 및 자유시 참변 제 90주기 추모대제전 개최
41세에 스스로 생 마감한 청산리대첩의 최고 지도자... 부끄러움과 결기 교차
 
 
  
조국광복을 위하여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한 동지들을 모두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살아서 조국과 동포를 대하리오.
차라리 이 목숨버려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리라(1921년 8월 28일 독립군 병사를 잃고 자결하면서). 

▲ 대한독립군단 백포 서일 총재.
1921년 8월 28일 소련과 만주의 국경지대 밀산 당벽진 마을 뒤 밀림속에서 그렇게 한 운명이 스러져 갔다.
 
대한독립군단 총재 백포 서일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해 6월 27일 러시아령 자유시(알렉세예프스크), 러시아 적군에 의해  항일독립군인 사할린의용대 600여명이 사상되고. 800여명이 포로로 잡힌 독립운동사 최대 비극 자유시 참변.
 
이어 8월 26일 소만국경지대 밀산, 재기를 도모하던 독립군 초토화.
 
연이은 부하들의 희생에 대한독립군단 서일 총재는 41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일 총재는 이에 앞서 1920년 10월 한국무장독립운동 사상 최대의 전과를 올린 청산리대첩의 배후지도자였다.
 
그의 당시 공식 직책은 청산리대첩의 주력 독립군부대인 북로군정서의 최고지도자인 총재.  
 
그러나 청산리대첩을 둘러싼 세간의 일반적 기억은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이던 김좌진 장군과,  대한독립군을 이끈 홍범도 장군 등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서일 총재는 국조 단군의 민족혼을 부여잡고 일제시대 항일무력투쟁의 본산으로 역할한 대종교의 나철, 김교현과 함께 3종사로 모셔질 정도로 대각한 도인이자,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긴 위대한 실천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랜 세월 후손들에게 잊혀졌다.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라는 그의 존재감이 역으로 일제시대와 그 후 일제식민사관이 발호해 온 대한민국의 현시대에서 서일이란 이름을 지워버리게 한 것은 아닐까.
 
올해는 그가 통한의 이승을 뒤로 한지 90주년이 되는 시점이다.
 
너무나 뒤늦었지만, 그래도 역사의 진실은 마침내 후손들의 마음에 되살아났다.
 
29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불교역사문화기념과 대강당.
 
이날 오후 3시, 이 곳에 백포 서일을 기리기 위해 단군의 후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백포 서일 총재 및 자유시 참변 제 90주기 추모대제전 현장.
 
해방된지가 언제인데 이제서야 이렇게 이런 추모를 하는 것인가란 부끄러움이 이 곳 현장에 가득했다.
 
더욱이 자리에 함께 한 참석자 수는 100여명에 머물렀고, 그나마 일제통치의 한을 체험한 연로한 어르신들이 대다수였다.
 
감춰지고 뒤틀리고 이그러진 민족사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또다시 그 몰골을 드러낸 격이다.
 
하지만 그 적은 참석자의 수는 상대적으로 이 시대에 산 자들의 해야 할 몫을 보다 강렬하게 깨우치게 했고, 어르신들이 태반인 참석자의 구성은 상대적으로 이 시대에 아직도 한민족의 혼을 면면히 이어가게 끌어 줄 끈이 엄존함을 감사하게 하는 요소로 작동했다.
 
이번에 추모대제전을 앞두고 결성된 백포 서일 총재 기념사업회의 초대 회장을 맡은 서영운 전 국무총리는 89세의 고령임에도, 예정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분노와 결기를 담아 쩌렁쩌렁한 울림의 대회사를 이어갔다.
 
역시 1948년 남북통일연석회의 학생대표로 역할했던 조만제 삼균학회 회장 역시 86세의 고령이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로 추모사를 했다.
 
또 모종률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이 정부 대표로 참석해 추모사를 함으로써 가까스로 정부 체면을 살리기도 했다. 
 
▲ 기천문 살풀이 추모공연.      ©임세림 기자
▲ 기천문 집단무예 추모공연.     ©임세림 기자

 
 
 
 
 
 
 
 
 
 
 
      
주요 참석자들의 헌화와 백포 서일의 독립정신과 자유시 참변을 주제로 한 임형진 민체연구소장(고려대 겸임교수)의 학술강연에 이어진 (사)기천무 예무단(단장 지성철)의 추모 공연, 이경자 함경도 망묵 진혼굿은 추모열기를 뜨겁게 달궜다.  

▲ 추모대제전에서 진혼굿을 펼치고 있는 이경자 함경도 망뭇굿 회장.      ©임세림 기자
▲ 서영훈 대회장과 얼싸안고 백포 서일 총재 등의 한을 풀어내는 이경자 만신.     ©임세림 기자

 
 
 
 
 
 
 
 
 
 
 
 
 
특히 서영훈 대회장이 시종 박수와 장단을 칠 정도로 참석자들의 감동을 불러 일으킨 진혼굿은 사후 90년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후손들의 정성을 맞이 한 서일 총재의 혼령을 평안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조성제 무천문화연구소 소장의 해설을 곁들여 펼쳐진 진혼굿은 동시에 민족무교의 진수를 생생하게 보여줬다는 참석자들의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  추모대제전을 주최한 김영기 민족회의 집행본부 대표(사진 왼쪽에서 두번째)와 조성제 무천문화연구소장(김 대표 오른쪽), 서영훈 전 국무총리(오른쪽에서 6번째) 등이 사진전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임세림 기자
 
한편 이에앞서 이날 오후 2시 서울 안국역 지하 3층에서는 추모대제전을 주최한 민족회의 집행본부 김영기 대표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사진전이 개막돼 다음달 4일까지 시민들과 함께 한다. [김인배 기자]  


원본 기사 보기: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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