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백제이야기 '근초고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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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백제이야기 '근초고대왕'
  • 김희년
  • 승인 2011.07.0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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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혜>작가 윤영용이 빚어낸 '우리 역사의 더 훌륭한 영웅이야기'
동아시아 절대무존 근초고, 이렇게 멋있고 위대한 군주가 우리 역사에도 있었

왜 우리는 남의 나라 역사가 아닌 우리 역사에서 더 훌륭한 영웅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가? 그것은 우리 책임이다. 

황해를 내해(內海)로 삼아 소금과 비단, 농업, 철정(鐵釘), 삼(蔘) 등으로 큰 부(富)를 일으켜 교역하며 대륙의 동부 전역과 한반도 서해, 열도 규슈와 본토, 대만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일원을 지배했던 근초고대왕의 위대한 백제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작가 윤영용은 광개토왕이 아니라 광개토대왕이듯 근초고왕이 아니라 근초고대왕이라고 한다. 고구려 영락대왕, 광개토경평안호태왕(廣開土卿平安好太王)을 훨씬 능가하는 업적을 남긴 왕의 시호. 百濟國速古大王之後也, 出自百濟國速古大王也. 신찬성씨록에 대왕으로 기록되었다. 일본의 신찬성씨록에도 속고대왕(速古大王)이라고 나온다.
 
대왕이란 칭호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조의 경우에야 대(大, 太), 성(聖), 고(高), 조(肇) 등을 붙인다. 창업을 위대하게 본 것이다. 후에는 대체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이 아니면 대왕이란 시호를 잘 붙이지 않는다. 

백제에 우호적이지 않은 역사책 중의 하나인 삼국사기 최치원열전 기록에 고구려·백제 전성 시에 강병 백만이 남으로는 오·월을 침공하고 북으로는 유·연·제·노를 흔들어 백제가 중국의 큰 좀[두]이 되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와 대학자 최치원의 글이다. 작가 윤영용은 믿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는 과거와 현대와의 대화다. 한성백제. 대륙백제, 야마다 등은 물론이고 낙랑, 고구려와 연(燕)나라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역(力)학관계가 상당히 상호보완적이고 호혜적으로 전개하는 소설은 그 당대의 필연성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토대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한 것은 여타의 역사소설과 다르다.

한미 FTA 타결 등 우리의 국제 경제를 예감할 수 있는 책

소금, 철, 조선, 인삼의 중요성을 넘어 철제 명도전으로 동아시아 단일 경제권을 형성한 것은 정복 전쟁과는 다른 경제통합의 길이었다. 또 나주의 교역장 설치는 런던, 뉴욕, 시카고, 두바이 등에 있는 현대판 상품 선물시장이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 같다. 블랙홀 같은 중국의 급성장, 화폐전쟁, FTA 시대에서 전략적 사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정복전쟁의 다른 화두는 무역과 화폐이다. 하늘이 내린 벌인 자연재해를 인간의 의지로 교역해 극복해 나가는 것은 보다 더 큰 하늘의 이치에 따르고자 함이자 작가의 철학이다.

승자의 역사에 드러나 있는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백제의 최전성기 제13대 근초고대왕(AD 346∼375)은 요서, 요동 지역 일부와 한반도 서북, 산동, 양자강 일원과 일본 본토, 나아가 동남아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해 각지에 지방 왕을 두는 강대한 해상제국 대백제를 이루었다. 

“전 5권의 역사소설 [근초고대왕]은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근초고는 우리에게 새로운 꿈, 더 큰 꿈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 꿈을 이루어 나가는 지 보여줍니다. 근초고의 대백제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동아시아 나아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면서 우리의 실익과 번영을 꾀할 수 있는 [한민족 선도국가론]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승자' 근초고가 '승자' 된 우리에게 프렌들리하게 다가오다

저자 윤영용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묻혀있던 우리 역사의 거인을 일으켜 세우는데 5권의 분량으로도 충분하다. 우선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근초고대왕! 역사상 인물을 이렇게 대놓고 제목으로 박아두는 경우는 많지 않다. 위대한 인물일수록 형용화하여 슬쩍 책의 내용을 암시하는 게 보통인데, 아주 간단히 책의 주제를 정의해버렸다.
 
파격적인 시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현대 한국어로 씌어진 쉽고 직설적이고 간결한 문체는 여느 역사소설 같지 않은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줄곧 인물간의 대화를 자제시키고, 무심하고 건조한 내러티브로만 글을 끌고 가고 있어도 긴장과 감동의 순간이 전혀 감쇄되지 않는다. 소설인지 무협지인지 역사서인지 굳이 애써 구별할 이유도 없다. 소제목 구분이 없어 읽기 어렵다는 투정도 필요 없다.
 
저자는 결코 독자가 익숙한 방식으로 맞춰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독자를 결코 의도적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내 식대로 따라오려면 따라오라는 식이다. 따라오다 보면 어느덧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근사한 주인공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저자의 자신감을 믿고 그저 맡기면 될 뿐이다. 전문 소설가도 아니고 학자는 더더욱 아니기에 저자의 계속되는 파격은 자연스러운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이끌어가는 ‘근초고대왕’의 스토리텔링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한민족이 담겨 있다. 승자 근초고를 발견하는 동시에 숨죽이고 가파르게 읽어왔던 우리 역시 어느덧 또다른 승자가 된다. 모두가 승자인 것이다. 1700년 전 선조의 빛나는 활약은 우리를 신나게 하고 흥분되게 한다. 동아시아 세계를 호령하고 주도하는 한민족의 역사를 보며 환호한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현대의 한국과 한국인을 연결짓는다. 작금의 한중일 관계를 바라보며 우리가 주도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게 한다. 

동아시아 절대무존 근초고, 그가 이끌었던 위대한 대백제, 그렇게 근초고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생하게 다가온다. 진정한 리더쉽을 갖춘 용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맹장, 다정다감하고 늘 소통하는 덕장, 무지개 너머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는 지장의 모습을 본다. 여전히 우리는 그러한 인물을 원한다. 시대를 넘어 이 모든 덕목을 갖춘 지도자를 우리는 고대하고 받아들인다. ‘승자’ 근초고가 ‘승자’가 된 우리에게 더욱 프렌들리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이렇게 멋있고 위대한 군주가 우리 역사에도 있었단 말인가. 어느덧 우리 역사에 대한 무지함에 미안해지고,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갖는다.
 
사실 우리는 백제에 이런저런 채무의식이 있다. 우리 역사의 당당한 주역이었음에도 제대로 조명되어 본 적이 없었다. 패자가 있어야 승자가 있는 법, 백제라는 나라는 늘 신라를 괴롭히는 악당같은 존재였고, 결국 위대한 승자 신라의 삼국통일에 바쳐진 제물에 불과했다. 의자왕과 삼천궁녀, 서동의 납치사건, 계백의 투혼 정도가 그나마 잘 알려진, 그야말로 백제인들은 한국 고대역사의 조연으로 가십거리의 충실한 제공자였을 뿐이었다. 

최근 수십년간 학계에서의 식민사관 파쇄, 강단사학에 대한 극복 노력과 역사스페셜 같은 다큐와 여러 소설, 드라마 등을 통해 한국 고대사의 생생한 모습을 되살려내고 있다. 특히 백제는 상당부분 그 위상을 재건했다. 대륙과 일본열도를 경략하고 강력한 해상제국을 건설한 대백제국을 기억하기 시작한 것이다. 백제를 발굴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역사를 알지 못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또한 역사를 읽는 즐거움은 과거의 상들이 현실에 투영됨으로 더욱 극대화된다. 이러한 점에서 사실에 충실하면서 교훈적인 우리의 이야기들을 지속적으로 찾아내는 작업은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가깝고 생생하고 입체적인 모습으로 백제와 근초고대왕을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순전히 저자 윤영용의 공이다. 

이데올로기가 개입하거나 너무 극적인 면만을 집중하다 보면 한낱 필부도 영웅으로 쉽게 변모된다. 영웅도 심해지면 성웅이 되어 버린다. (40년전 이순신 장군은 성웅 이충무공으로 호명되었었다) 아예 신화가 되어 버렸던 실례도 만만치 않다. (광개토는 이미 사신을 거느린 태왕으로 그려졌다)
 
인물의 영웅화는 어떻게 보면 역사를 바루어 소설화하는 작가들에게는 치명적인 유혹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고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또한 난공불락의 어려움을 거뜬히 이겨내고 결국 세상은 어느덧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그려질 공산이 다분하다. 적어도 작품으로서 실패할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재미와 감동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치장하여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판매부수가 오른다는 강박관념을 갖기 마련이다. 호주머니가 두둑해진 흐뭇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근초고대왕’은 최소한의 상업적 작품으로서의 기본기를 잊었다. 그저 역사가 있고 다양한 상식과 풍성한 생각거리가 담겨져 있을 뿐이다. 역사를 읽어 미래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저자의 비장함마저 보인다.

이제 자연스러운 글의 마무리를 위해서라도 의무적으로(?) 몇가지 옥의 티를 짚어야겠다. 우선 밝달환국, 단군조선과의 끊임없는 관련짓기는 오히려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곤 한다. 완전무결하기만 한 단군조선은 도리어 희화화되고 조소화될 수 있다. 의도하지 않게 또다시 단군조선을 역사가 아닌 신화로 가둬버리는 비극이 되어 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근초고는 반신반인이 될 순간에서 나중에는 언제나 인간으로 돌아와 있어 안심이 되곤 했다)
 
사자성어와 역학을 통한 역사해설은 나름대로 독자들에게 상상력과 지적 충만함을 주지만, 반면에 지루하고 반복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글형식은 쉬운데, 글내용은 어렵게 느껴지는 묘한 언밸런스는 가끔씩 혼란에 빠지게도 한다.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저자의 스타일에 독자들이 생각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초고대왕’은 약간의 약점과 흠집을 메워버릴 만한 파괴력을 지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촘촘히 짜여진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고대 동아시아 세계를 경영한 웅장한 모습의 근초고는, 카이사르에 위축된 우리의 관념을 송두리째 깨뜨려주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실로 통쾌하다. 

역사소설에서 그 흔한 왕계보와 인물관계도조차 지면을 할애하지 않은 비관대함 속에서 마저도 저자의 또다른 의도를 의심케 한다. 책을 놓은 이후까지도 독자를 놓아주지 않는 저자의 끈질김(?)에 경의를 표한다. 

오랜만에 대단한 스토리텔러가 풀어낸 대단한 주인공을 만나본 호사를 누려봤다. [김희년 기자]

환율전쟁, 경제전쟁이 세계와 아시아에서 거세게 불고 있다. 대한민국의 21세기 국가 전략이 군사강국 영토대국이 아니고 동아시아와 세계에서의 균형자 역할로 볼 때, 과연 그런 문화강국, 해상강국의 비전을 가질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영웅 모델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했다.

있다. 우리에게 있었다. 소설 근초고대왕에 대한 구상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002월드컵유치엽서 보내기 범국민운동을 기획하여 스위스 취리히 FIFA 본부 앞에서 120만 장의 그림엽서 전시와 홍보활동에 참여했었다. 2002 월드컵이 집행위원들의 합의로 한일 공동으로 개최되자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한·중·일 동아시아공동체 시대가 예감되었다. 그러한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근초고. 가까울 근(近), 본받을 초(肖), 옛날 고(古). 옛것으로 오늘에 가까이 본받을 수 있는 왕 중의 왕이 있었다. 황해 바다를 내해로 하여 대륙과 반도, 열도를 경략한 영웅이 있었다. 해상강국 백제. 오늘날 한국이 나가야 할 그 길을 미리 보여준 영웅의 대서사시를 듣기 시작했다.

근초고대왕은 대륙과 한반도, 일본 열도, 나아가 대만과 동아시아 일원을 경략하는 데 성공한 백제의 대 정복군주였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날조에 대응하여 새로운 동아시아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역사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대백제 최대 전성기, 근초고를 꺼내 우리 민족의 대 영웅으로 그들에게 또 세계에 제시해야 한다.

2. 어떤 사실(史實)을 근거로 근초고 시대의 백제를 그렸는가?

역사를 잘못 배웠다. 왜 그렇게 가르쳤을까? 가장 백제에 야박(?)한 삼국사기 백제 이야기를 뼈대로 중국의 송서(宋書), 양서(梁書), 남사(南史), 통전(通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자치통감(資治通鑑),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의 백제 영역을 근거로 지형도를 바탕으로 강역을 만들었다. 만주원류고에서 중국 동해안 일원이 다 백제라 하였는데…. 일명 정통 역사학자들은 이들의 자료를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한반도 내의 한강 이남으로 백제를 축소하고 기타 자료를 부정하는 일제 강점기 치하의 역사인식을 벗어나지 못해 안타깝다. 

정통 역사계 말대로라면 북한강 최상류인 강원도 화천군 원천리에서 발견된 3~4세기 백제 유물, 도시 집터와 병마구, 등자 등등 그 많은 유물은 어찌 된 일인가? 기존 역사 학자들의 주장은 그 유물 발견으로 그 동안 허위였음이 증명된다. 재야 사학자들은 오래전 원산방면으로 원산시 북쪽 문천시에 속고봉(速高峰), 속고산(速高山 722m = 신증동국여지승람 ; 所依達山, 즉 쇠달산) 같은 백제 초고대왕의 별명인 속고왕(速古王)의 이름을 딴 지명에 주목하고 있었다.
 
함흥시 동쪽에는 초고대령(草高臺嶺)도 주목하고 있었다. 3~4세기 유물이 발견되고 한강 이남 백제만을 주장하던 일명 정통 역사학자들의 반성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바가 없어 아쉽다. 그러나 역사소설 근초고대왕 책 지도에서는 자신있게 북한강 최상류는 원산 함흥으로 가는 길목, 근초고의 백제 영토로 그려져 있다.

백제는 특히 근초고 시대 백제는 위대한 문명국가였다. 칠지도 하나만 보아도 최강의 제련 제강 기술과 금을 상감하는 특수합금 형상 기술 등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당시 최고급 문명을 알 수 있다. 

백제는 하얀 황금으로 불리는 소금의 주산지다. 당시 소금은 국력이었다. 소서노의 아비 연타발부터 염전원인으로 불리는 소금상인이었다. 수리농업 기술을 가진 최대 곡창지대와 야철터 즉 철기시대 철광생산지를 갖고 있었으며 삼(蔘)과, 양잠 밭이 널려 있던 경제 대국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다문화 국가였다. 한국의 고대국가 중 글로벌화에 가장 접근한 것은 백제다. 그것은 근초고에서 최전성기를 이룬다. 백제는 바로 고대 한류의 중심지였다. 

삼국사기에 통일신라의 대학자 최치원 선생은 고구려·백제 전성 시에 강병 백만이 남으로는 오·월을 침공하고 북으로는 유·연·제·노를 흔들어 백제가 중국의 큰 좀[두]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高麗百濟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오나라와 월나라가 어디인가? 유, 연, 제, 노나라의 영역을 그려보면 백제에 가장 박하다는 삼국사기 통일신라 대학자가 제시한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오, 월나라는 양자강 일원을 장악했고 제나라는 산동이 근거이며 연나라는 요서, 화북 지역이 아닌가? 그런데 그 말을 지도로 그려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 강역도를 중국 지형도와 참고하면…. 거기 오나라 양자강 중상류에 난공불락의 성이 있다. 천년 넘게 내려온 그 이름이 백제성이니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진(東晋)의 왕조를 보면 근초고 시절 제12대 애황제(슬플 哀: 재위 361~365), 제13대 폐황제(폐위할 廢: 재위 365~371), 태화[太和], 제14대 태종(太宗) 간문황제(簡文皇帝) 재위 371~372)이다. 시호에 슬픈 애와 폐위할 폐가 있고 다시 창업 군주 태종이 편지 쓴 황제로 나온다. 이는 근초고 시대에 동진과 백제에 다른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오나라 월나라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동진의 황제 이름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적 상상력이 발휘될 수밖에 없었다.

3. 근초고는 어떤 왕이었나?

왕이 아니라 대왕이다. 지방왕과 제후를 거느렸으며, 백성을 넓게 품은 큰 왕이었다. 중국 역사책들을 보아도 백제 땅에는 중국인, 가야인, 일본인이 섞여 거주한다고 했다. 백제의 문화는 그래서 일본을 비롯해 동아시아 문명의 꽃을 피워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무력이 난무하던 시대.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문화와 교류의 백제는 이제껏 나약함과 무력함이 아닌 화려한 문화선도국가다. 이제 세계 1등 국가, 선진국으로 도약하여 지향해야 할 우리의 비전은 한민족 인류문화 선도국가가 아닌가? 근초고는 1700년 전 동아시아 백성을 아우른 큰 왕이었다.

4. 중국 동북공정? 우리 이야기 제대로만 꺼내면 우리가 종주국

삼국지를 보면서 유비 제갈량, 관우, 조조 등 그 영웅들 이야기에 가슴 설레며 중화사상에 저절로 빠져들던 시절이 있었다. 삼국지에 해전이 없다. 동이(東夷)가 대륙 동쪽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 적벽대전이다. 수십만은커녕 수만 척 배도 정박할 수 없는 그런 적벽대전에서 대 전쟁이란다. 나관중의 상상력이 조금 과하다. 

중화 입장에서 동북공정의 한계 때문에 이제 중국에서는 단군을 자신의 조상에 편입시키고 고구려 백제 신라를 지방정부 역사라고 하기 시작한다. 고대 문명의 유물들을 발굴하려면 단군 고조선 시대와 삼국시대를 편입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이때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일본 황실 서고에 약 30만 권의 우리 민족의 고서적이 있다고 한다. 이를 더 숨기지 않고 꺼내어 동아시아의 역사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나관중의 삼국지처럼 우리 이야기가 동아시아 일원에 퍼져야 한다. 그래야 그 스토리를 바탕으로 역사적 진실이 파헤쳐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동아시아의 종주국이 된다. 숨길 수 없다. 우리 문화적 유전자에 도도하게 흐르는 단군 조선과 동이족,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이야기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이야기를 우리조차 모르고 그저 헐겁게 배운 것으로 덮으려 한다. 정통이 무엇인가? 강원도 원천리 유적처럼 파헤쳐서 밝혀지면 그것이 비로소 정통 역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한반도에 없는 백제 8대 성씨의 족보를 바탕으로 뒤져만 보아도 대륙백제의 진실은 쉽게 영역도와 함께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도들은 뭐하고 있는가?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 역사 그 정신을 지키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가 아닌가.

5. 다른 역사 소설과 다른 점은?

다르다. 분명히 다른 것은 우리 캐릭터를 우리 식으로 썼다는 것이다. 무력이 중심인 시대 경제전쟁과 동아시아를 공동체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인 총력전으로서의 국력 신장을 다루고 있다. 나아가 동아시아를 선도했던 상생의 선도국가론이다. 이는 그동안 중국 삼국지 초한지 수호지 부류와 분명히 차원이 다른 역사소설이다. 

경제적 사회적 관점에서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역사적 인물, 영웅 스토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삼국지에 열광할 것인가? 초한지를 읽으며 모화사상, 사대주의에 물들어야 하는가? 그것을 자랑하기에 앞서 우리 역사의 위대한 영웅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은가? 근초고대왕은 우리 위대한 백제 이야기다. 단순히 근초고대왕만의 역사가 아닌 위대한 백제인들의 역사 소설이다. 백제인 즉 동아시아인들에게 꿈과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윤영용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과, 언론정보대학원을 다녔다.


(주)세영동화 기획실에서 [은비까비의 옛날옛적에](깐느TV부문특별상) 13편, KBS교통캠페인 [어린이는 움직이는 빨간신호등] 24편, EXPO [꿈돌이의 문화탐험] 프로그램 구성과 대전EXPO프레이벤트 [컴퓨터영상축전] 기획, 한국영상에서 대전EXPO 정보통신관 영상 11편, 어린이교통교재 [만화로 배우는 교통교실], 한국통신 [재미있는 통신 이야기], KBS영어교육센터 [굿모닝ABC] 시리즈 20편 기획 및 제작코디네이터, 농림수산부 [의리의 진돌이](한국영상음반대전 특별상), 인천국제공항 [스카이피아 21](한국영상음반대전 금상/일본영상산업전 외국최우수작품상)과 국방부 정훈 교재 [핑클도 아는 우리 국군의 주적], KBS미디어 [2002월드컵경기장] 등 300여 편을 기획, 구성, 시나리오를 써왔다.

소설 근초고대왕에 대한 구상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002월드컵유치엽서 보내기 범국민운동을 기획하여 스위스 취리히 FIFA 본부 앞에서 120만 장의 그림엽서 전시와 홍보활동에 참여했었다. 2002 월드컵이 집행위원들의 합의로 한일 공동으로 개최되자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한·중·일 동아시아공동체 시대가 예감되었다. 그러한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근초고. 가까울 근(近), 본받을 초(肖), 옛날 고(古). 옛것으로 오늘에 가까이 본받을 수 있는 왕 중의 왕이 있었다. 황해 바다를 내해로 하여 대륙과 반도, 열도를 경략한 영웅이 있었다. 해상강국 백제. 오늘날 한국이 나가야 할 그 길을 미리 보여준 영웅의 대서사시를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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