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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뒤통수 치고, 언론도 막은 '비열한 날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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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뒤통수 치고, 언론도 막은 '비열한 날치기'
  • 정웅재
  • 승인 2011.11.23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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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통보안 속, 여당 지도부-박희태 의장 손발 맞춰 기습작전

▲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 한미 FTA  처리 하자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 김철수 기자


 

22일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는 그야말로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이날 오전까지도 여당 주변에서 '직권상정' 기류는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지난 휴일을 기점으로 한나라당 지도부에서 "더 이상 야당과 협상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한나라당이 강행처리로 마음을 굳혔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디데이(D-day)는 본회의가 잡혀 있는 24일 또는 2일로 예상됐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22일 기습처리에 나서면서 야당의 뒤통수를 쳤다. 한나라당은 전날 홍준표 대표를 중심으로 지도부 회의를 거쳐 22일 표결처리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철통보안을 위해 여당 의원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22일 오후 2시 예산안 관련한 정책의총을 소집했다. 의총 개최 20분 전에 의총 장소를 본청 246호에서 예결위회의장으로 변경해 공지했다. 예결위회의장은 로텐더홀을 가운데 두고 본회의장과 마주 보고 있는 회의장이다.

 

홍준표 대표는 의총 모두발언에서 "지난번에 그렇게 당부를 드렸는데도 169명의 의원님 중에서 148명만 출석을 했다. 그렇게 당부말씀을 드렸는데도 안 온 사람이 많다. 국익을 가름 짓는 중요한 의총에 나오지 않는 분은 뭐 하러 한나라당 의원으로 출마를 하는가"라며 분위기를 잡았다.

 

그러고는 "거듭 말씀드리지만, 오늘도 지난번처럼 끝장토론을 할 테니까 중간에 가지마시고 저녁 약속 파기하시고 끝날 때까지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날 한미FTA 비준안을 처리한다는 지도부의 방침은 공개되지 않았다.

 

지도부의 방침은 의총 말미에 황우여 원내대표가 공개했다. 황 원내대표는 "오늘 아침에도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와 회담을 했지만 민주당의 진정성이 의심된다. 오늘 통과시키자"라고 지도부 방침을 전격 공개했다.

 

여당 지도부와 박희태 의장 각본 짠 듯 손발 맞춰

 

그 시각 박희태 국회의장이 급작스럽게 경호권을 발동했고, 국회 본청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다. 기자 출입구쪽은 철제셔터가 내려져 완전봉쇄됐고, 국회 본청 정문과 뒷편 면회실 출입구는 경찰병력이 국회의원, 국회 상시 출입기자, 본청 근무자만 선별해서 출입을 허락했다.

 

박희태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고 2분 뒤인 3시 7분경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명규 원내수석부대표를 선두로 해서 본회의장으로 진입했다. 야당의 허를 찌른 기습작전이었는데, 한나라당 지도부와 박희태 국회의장은 각본을 잘 짜놓은 듯 손발을 척척 맞췄다.

 

한나라당이 이날 기습처리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야당은 당황했다. 의원회관에서 뉴스 속보 등을 통해 상황을 접한 야당 일부 보좌관들은 본청 정문 앞으로 뛰어왔다. 그러나 이미 경찰병력이 정문을 완전봉쇄하고 있었다. 야당 보좌관들은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라며 허탈해 했다.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강창일 의원 출판기념회에 참석 중이던 손학규 대표는 3시 10분 경 한나라당의 본회의장 기습 점거 사실을 전해 받고 부랴부랴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서울구치소에서 곽노현 교육감을 면회하다가 소식을 접한 정동영 최고위원은 황급히 차를 몰아 국회로 복귀했다. 정 최고위원은 여당이 본회의 개의를 예고한 4시에 맞춰 가까스로 국회에 들어섰다.

 

그 시각 본회의장에는 한나라당, 미래희망연대, 자유선진당 의원 등 170여 명이 의석에 앉아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를 준비했다. 의장석에는 박희태 국회의장 대신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앉았다.

 

이때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의장석 바로 밑에서 최루탄을 터뜨렸다. 순식간에 의장석 주변에 뿌연 최루탄 가스가 퍼지면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눈 코 입을 찌르는 최루가스를 참지 못한 일부 의원들은 회의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김선동 의원은 바닥에 가라앉은 최루탄 가루를 두 손으로 긁어모아 다시 의장석을 향해 뿌렸다.

 

김선동 의원은 경위들에 의해 회의장 밖으로 끌려나가 격리됐다. 야당 의원들의 항의에 김 의원은 다시 회의장으로 입장했다.

 

ⓒ김철수 기자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한나라당이 기습 처리한 후 김용덕ㆍ박보영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연속을 처리를 투표를 시도하자 민주당 최규성 의원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저지하고 나서고 있다.

 

본회의장 취재도 봉쇄, 기자들 깨진 유리문 사이로 가까스로 들어가 취재

 

의장석 주변이 정리된 후 국회 의무실에서 의원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했고, 4시24분 본회의가 시작됐다. 정의화 부의장은 회의 시작과 함께 재석 167명에 찬성 154명, 반대 7명, 기권 6명으로 비공개 본회의를 의결했다.

 

본회의장 4층 기자석 출입구는 국회 경위들에 의해 봉쇄됐다. 20여 명의 기자들은 "취재를 막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봉쇄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경위들에게 문을 열고 취재를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유리문이 깨졌고, 깨진 틈 사이로 기자들이 들어가려 했다. 경위들은 몸으로 막아섰고, 10여분 말싸움 몸싸움 끝에 기자들이 깨진 유리문 사이로 밀고 들어가 가까스로 취재했다.

 

본회의 개의 뒤 4분 만인 4시28분 한미FTA 비준안이 처리됐다. 재적의원 295명 중 170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51명, 반대 7명, 기권 12명으로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한나라당 황영철 의원과 자유선진당 소속 6명의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정의화 부의장과 여당 의원들은 이후 30여분 만에 14개 한미FTA 이행법안도 통과시켰다.

 

169석으로 국회 의석의 과반수가 넘는 한나라당은 18대 국회 들어 매해 예산안 등을 날치기 처리해왔다. 하지만 이날 야당의 뒤통수를 친 날치기는 "그 어느 때보다 비열하고 부도덕한 강행처리"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예정에 없던 본회의를 기습적으로 열었고, 무엇이 두려운지 기자들의 본회의 취재마저 막았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예산안을 단독 강행처리한 후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22명의 의원들이 향후 몸싸움에 가담하면 내년 총선에 불출마 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했다.

 

이날 기습처리는 야당과의 몸싸움을 피하면서 비준안을 단독처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떻게든 몸싸움만 피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또 비준안 처리 시기와 방법에 대해 당 내부에 이견이 있는 상황에서 본회의가 예정돼 있는 날 표결처리를 시도하면 야당이 몸으로 비준안 처리를 막을 것이 불 보듯 뻔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몸싸움에 나서지 않으면 비준안 처리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언론의 취재를 막은 것은 날치기 순간이 사진과 영상, 글로 자세하게 전해지면 지난해 예산안 처리 때와 같이 거센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려했을 수 있다.

 

▲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한나라당이 기습 처리한 후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는 불법적 처리 규탄 발언을 손학규 대표가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96년 노동법 기습날치기 신한국당 심판으로 이어져, 오늘 날치기 이 정권의 무덤될 것"

 

비준안이 기습처리 된 후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한미FTA 무효를 선언하면서 무효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반드시 새로운 19대 국회에서 한미FTA는 재협상과 재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6년 말 신한국당이 노동법 날치기를 했을 때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날치기 무효 투쟁을 이끌었던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오늘 한나라당의 기습 날치기를 보면서 96년 12월 26일 신한국당 의원들이 새벽에 도둑고양이처럼 국회에 숨어들어와서 노동법을 날치기하던 때가 생각났다. 노동법 날치기는 김영삼 정권과 신한국당 심판으로 이어졌다. 오늘의 기습 날치기가 이 정권에겐 무덤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의장석에 최루탄을 터뜨렸던 김선동 의원은 "제 솔직한 마음은 폭탄이라도 있다면 이 국회를, 한나라당의 일당독재 국회를 폭파해버리고 싶다"면서 "대한민국 서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국가의 사법주권을 무너뜨린 이 조작으로 가득찬 한미 FTA를 통과시키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국민의 힘으로 응징해달라"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이 국민과 언론과 야당을 속이고 한미FTA 비준안을 기습처리했다. 날치기 현장이 국민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던지 기자들의 취재까지 원천봉쇄했다"라고 분개했다. [민중의소리=정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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