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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잡힌 '이태원 살인사건'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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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잡힌 '이태원 살인사건' 전말,
  • 홍민철
  • 승인 2011.10.1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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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필은 죽었는데 '살인자'는 없었다
▲ 고 조중필씨  ⓒ사진제공=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이태원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미국으로 도주했던 주한미군의 아들 아더 패터슨이 미국에서 지난 6월 구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공소시효 2012년 4월 3일을 6개월 남겨둔 시점이어서 국내로 송환될 경우 사법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지난 1997년 4월 8일 홍익대학교에 다니던 조중필씨가 용산구 이태원동의 버거킹 내 화장실에서 참혹하게 살해된 사건이다.

조중필 씨는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 준 뒤 햄버거 가게에 들렀다가 참변을 당했는데, 조 씨는 가슴과 목 등 9군데를 난자당한 채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숨졌고, 범인들은 이미 도주한 상태였다.

사건 다음날 용산 미군기지 내의 미군속 10대들 사이에선 한국인을 살해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제보를 받고 수사에 나선 미육군범죄수사대(CID)는 유력한 용의자로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를 검거했는데, 이 둘은 실제 사건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CID는 패터슨과 참고인들을 불러 조사한 후 패터슨이 미국내 갱단의 단원이고, 패터슨으로부터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들었다는 참고인 진술 등을 확보해 그를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몇일 후 에드워드 리가 돌연 한국경찰에 자수했고 검찰은 에드워드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미군측의 조사결과를 뒤집었고, 패터슨을 폭력죄로 기소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재판에서 에드워드 리는 패터슨이 범인이라는 주장을 고수해결국 대법원은 에드워드 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패터슨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나 98년 8.15특사로 사면됐다. 재판을 받으면서 출국금지가 풀린 사이를 틈타 패터슨은 미국으로 도피해 결국 죽은 자는 있는데 살인자는 없는 기막힌 일이 발생한 것.

이와중에 검찰은 2000년 11월과 2002년 1월경 두 차례에 걸쳐 미 법무부에 패터슨의 살인혐의를 미국에서 조사할 수 있도록 사법 공조 요청서를 보냈지만 미국은 묵묵부답이었고 2002년 10월 패터슨에 대해 기소중지 결정을 내렸다.

또 법무부는 지난 2009년에야 달아난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미국에 청구해 비난을 샀다.

검찰은 조중필씨 살해사건에 대한 적극적 처벌의지를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패터슨으로부터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들었다는 미군 자녀 등 참고인 소환 등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가로막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민중의소리=홍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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