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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정치범 수용소 실태'…최대 5만명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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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정치범 수용소 실태'…최대 5만명 수용
  • 박영애 기자
  • 승인 2012.09.21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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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요덕수용소
 
현재 요덕수용소는 약 3만 5000명에서 최대 5만 명의 정치범들이 수용돼 있다.
 
요덕수용소가 최근 수감인원이 급증한 것은 1980년대 말 온성 일대의 수용소가 폐쇄되면서 수용자의 일부가 요덕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1990년 초 온성에서 밀려드는 정치범들을 처리하기 위해 요덕역은 정치범들과 그들을 지키는 군인들도 초만원을 이루었었다.
 
요덕수용소는 한 개 부락이 한 개 작업반으로 분리돼 있다.
 
예를 들면 구읍리의 경우에는 1반부터 4반까지, 임석리는 5반부터 9반까지 있다.
 
10작업반은 북송교포들이 대거 수용되면서 나중에 만들어져 구읍리에 있지만 10작업반으로 분리돼 1974년부터 1987년까지 존재했다.
 
한 개 작업반은 10~20개의 분조로 한 개 분조는 수십 개의 5인조로 분리돼 있다.
 
5인조는 수용소죄수들의 최소 활동조직으로 5인 조장은 매일과 같이 상급자에게 조(組)구성원의 하루일과를 보고하게 돼 있다.
 
5인조 구성원중 한사람이라도 작업량을 미달할 경우에는 모두가 연대책임을 지게 된다.
 
정치범들의 조직체계는 작업반장- 총감독, 분조장, 5인 조장으로 구성돼 있고 작업반마다 부기실과 선전실을 두고 있다.
 
죄수들에게 공급할 작업복이나 소금, 등을 파는 작은 상점이 작업반마다 설치돼 있고 병동이 각각 한 개씩 있다.
 
죄수가운데 의사출신으로 병동을 지키면서 작업을 할 수 없을 만큼 병이 걸렸는지를 체크하는 일을 시킨다.
 
매 작업반마다 에는 '담화실'이라는 게 있다.
 
담화실은 국가안전보위부요원 2명이 보위담당, 경제담당으로 나뉘어 상주하면서 수용자들을 관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작업반장, 분조장은 보위부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고 수감자들의 모든 현황을 보고하게 돼 있으며, 특별히 심어놓은 스파이들을 별도로 관리하면서 전체적인 수감자들을 통제하고 있다.
 
외부경비는 보위부산하 인민경비대가 전담하게 되며 약 3개 대대의 군인들이 AK자동소총과 수류탄, 군견을 거느리고 경비를 서고 있다.
 
수용소 정문은 5m이상의 성벽에 기관총이 걸린 포대, 철문으로 돼 있으며 성벽 위에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낮은 지대에는 주로 전기철조망이 쳐져 있고 높은 산악지대에는 철조망과 함께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는 길목마다 깊은 함정을 파놓고 있다.
 
함정에는 참나무와 박달나무와 같은 굳은 나무로 창을 만들어 꼽아놓고 함정은 위장돼 있다. 

◇ 청진수용소

청진 수용소'공포의 감옥' 청진 25호 수성교화소

함경북도 청진시 수성동 송골 골짜기에는 북한 최악의 정치범 감옥인 '25호 수성교소'가 있다.
 
현재 정치범교화소(감옥)로는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수성교화소는 청진시 수성역(驛)에서 1.5㎞ 정도에 위치해 있다.
 
수성역 청사 옆 건물은 이곳으로 수감되거나 이송되는 정치범들을 특별 관리하는 '연락소'가있다.
 
북한은 정치범들을 처벌할 때 '죄질'에 따라 교화소와 관리소로 구분해 수용한다.
 
죄를 당사자나 1급 정치범들은 주로 교화소에 수감되며 경미한 정치범과 정치범들의 가족은 관리소(수용소)에 수감된다.
 
수성교화소는 1960년대부터 운영되고 있으며 북한주민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6m 높이의 담장에 전기철조망이 쳐져 있는 이곳에는 1000~1500명 정도의 1급 정치범들이 수용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과 '쌍벽'을 이루던 평양시 승호구역의 '26호 승호리교화소'는 94년 국제사면위원회(AI)의 폭로가 있은 뒤 해체돼 수감자들이 모두 수성교화소로 옮겨졌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는다.
 
수성교화소에는 형벌이 무거운 간첩혐의자와 체제전복, 반당ㆍ반혁명 종파분자로 불리는 권력에서 숙청된자들, 북송 재일교포들이 주로 수감됐지만 최근에는 탈북하다 붙잡힌 사람들과 종교인들도 대거 수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탈북자 유태준씨도 32년형을 선고받고 이곳에 수감됐다가 기자회견을 위해 석방된 후 탈북 했다.
 
이곳 수감자들은 사실상 종신형을받고 오는 사람들이다.
 
교화소 내에서는 라디에이터, 무동력냉장고, 무쇠밥솥, 재봉틀, 자전거 등을 생산하며 농사도 짓고 가축도 기른다.
 
특히 이곳에서 생산돼 나오는 '갈매기'상표 자전거는 북한산 자전거 중 최고품으로 꼽힌다.
 
자전거 생산에 필요한 특수강판은 김책제철소에서 공급받고 있다. 이 자전거는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성(경찰) 요원들에게 주로 공급되지만 민간인들에게도 많이 흘러들어 부(富)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이곳의 하루 일과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좌한 상태로 꼿꼿이 앉아 있다가 6시30분에 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식사는 콩알이 섞인 옥수수 주먹밥과 시래기국이 전부다. 강제노동은 아침 7시에 시작해 점심식사를 하고 저녁 6시30분까지 하는 걸로 돼있지만 보통 밤 10시까지 이어진다.
 
작업 후에는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감방생활이다.
 
수감자들은 20명씩 한 방을 쓰며 안에서는 탈주를 막기 위해 2인 1조씩 행동하게 돼 있다고 한다.
 
두 명 중 한 명이 밤에 화장실에 가도 함께 일어나 가야 한다.
 
북한에서 정치범들이 갇히는 감옥은 교화소와 관리소(수용소)로 나뉜다.
 
청진 수성교화소나 개천교화소(평남)는 감옥형태의 교화소이고 1급 정치범과 종신수용자들이 대부분이다.
 
관리소는 부락형태로 주로 가족단위로 생활하며 생존율도 상대적으로 높다. 
 
◇화성수용소

화성정치범 수용소 (제 16호 정치범 관리소)
 
함경북도 화성군에 있는 제 16호 정치범 수용소는 북한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는 1급 정치범 수용소다.
 
북쪽으로는 어랑군, 동남쪽으로는 칠보산으로 유명한 명천군이 있다.
 
이 수용소가 세워진 연도나 어떤 죄수들이 얼마나 끌려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바 없으나 최근 국가안전보위부 출신 탈북자들을 비롯한 여러 증언을 통해서 이곳은 권력투쟁에서 숙청 당한 북한최고위층들이 끌려와 수용돼 있는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이 수용소가 일반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곳에서 단 한 명의 정치범도 살아 나온 사람이 없고 국가안전보위부 내부에서도 엄격한 비밀보장이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용된 정치범들은 주로 반당 반혁명종파분자로 낙인찍힌 권력 숙청자들과 90년대 중반에 발생한 6군단사건과 같은 '국가전복기도자'와 같은 엄중한 정치범들이다.
 
이곳에는 정치범 당사자만 수용되고 나머지 가족들은 회령이나 요덕과 같은 가족 수용소로 이송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화성 정치범 수용소는 다른 수용소에 비해 경비와 통제, 감시가 심해 일반인들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며 국가안전보위부요원이라 이곳에 대해서는 일체 비밀에 부쳐져 있다.
 
화성역 근처에는 정치범들을 실어 나르는 '특별 연락소'가 있다.
 
16호 수용소는 함북 명천군과 인접한 산간지역으로 북한에서 송이버섯이 가장 많이 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2000년 가을 김정일이 남한에 보낸 송이버섯의 일부는 이곳을 지키는 군인들과 정치범들이 채취해 김정일에게 선물로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회룡수용소
 
회령수용소는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도 나갈 수 없는 ‘완전 통제구역’으로 북한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로 꼽힌다.
 
회령 22호 정치범수용소는 이미 해산된 종성(13호), 온성(12호)수용소와 함께 1950년대 말부터생겨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회령, 온성, 종성수용소는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서로 경계선만 만든 채 나란히 밀집된 상태로 존재했다.
 
이 세 군데의 수용소에는 8.15 해방이후 숙청된 지주, 자본가, 기독교인등과 6.25전쟁 때 미군과 국군을 도운 사람들, 그리고 50년대 말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권력투쟁과 그로 인해 숙청되는 많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수감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강력한 우방이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있는 국경지대가 안전판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5월 온성 수용소에서 정치범들에 의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 5000여명의 정치범을 학살되면서 국경지대에 밀집된 수용소운영을 재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유사시 때 정치범들의 대규모반란으로 제 2전선이 형성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회령을 제외한 온성, 종성 수용소를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회령수용소 경비병 안명철 씨는 해체되는 수용소의 수감자들이 부모와 아이들이 각기 다른 기차에 오르기 전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면서 부모와 자식간에 울부짖는 처참한 광경은 나치수용소에서 독가스 실로 실려 가는 장면과 너무나 흡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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