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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왜 가족이 힘들까?-3대 걸친 정서적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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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왜 가족이 힘들까?-3대 걸친 정서적 대물림
  • 김원식
  • 승인 2023.06.20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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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상 박사&송유미 교수의 '우리 家 행복한 家'
송유미 대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소장)​

[동양뉴스] 30대 중반의 중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A씨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세무 공무원이었고, 엄마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방과 후 여러 학원을 전전해야 했고 학원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면 과외선생이 기다리곤 했다.

아이들과 놀고 싶어 학원을 빼먹으면 학원에서 전화가 오고 그런 날은 매를 맞기도 했다.

늘 1등이기를 강조했던 엄마는 더 잘하기를 원했고, 엄마 스스로 얼마나 자신이 헌신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주지시켰다.

초등학교 시절,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몸매가 예쁘지 않다며 무용학원을 다니게 했다.

스스로도 비교가 되는 자신의 몸매가 싫어 눈을 다른 데로 돌린 채 동작을 따라 했던 때도 있었다.

어느 날 학원의 커다란 거울에 팔짱을 끼고 무표정한 얼굴로 A씨를 쳐다보는 엄마의 모습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엄마의 무표정한 얼굴은 “너 그것 밖에 못해?”하는 듯했고, 꽉 낀 발레복에 드러난 몸매와 서툰 동작들이 엄마에게 다 들통난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다. 

◇ 어린 시절 양육자로 내면화된 자신, 딸에게 전수

A씨는 얼마 전 딸이 초등학교에서 가족을 소개하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우리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신데 세련되고 똑똑하고 나에게 늘 헌신하신다. 내가 잘 되기를 가장 원하시고, 가끔 내가 동생들과 싸우거나 할 때면 무섭게 혼도 내시고 때리기도 하신다”는 내용이었다.

A씨가 엄마에게 느꼈던 비슷한 감정을 딸이 느끼고 있었다. 

최근에 A씨의 딸이 어린 동생한테 한숨을 푹 쉬면서 “이것 밖에 못해! 도대체 너는 커서 뭐가 될래?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엄마인 자신에게 꽤 거슬렸고, 어떻게 애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가 싶어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어디선가 들어봤던 소리였고 결코 낯설지가 않은 말이었다.

바로 A씨 자신이 어릴 적 엄마로부터 들었던 소리였고, 그 소리에 기죽었던 기억이 났다.

학교 교사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해 왔지만 더 똑똑한 교사가 되고 싶었고, 더 잘 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고 그것을 주변에서 몰라줄 때면 “왜 이 정도밖에 안 되지?”라고 스스로를 다그쳐왔다.

단 한번도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것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A씨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이 정도밖에 안 되지”라는 소리의 출처는 엄마였는데, 이젠 자기가 자기에게 그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의 소리가 A씨의 소리가 되었고, 어느새 그 소리가 딸에게도 전수되어 딸이 동생에게 하고 있지만 딸 자신도 자기에게 그 소리를 들려주고 있는 게 아닌가!

◇ 지금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의 가해자는 ‘자기 자신’

A씨에게 자신의 내면의 아이에게 스스로 편안하고 여유있는 엄마가 되어 이렇게 말해 주라고 했다.

“엄마가 매일 1등을 하라고 해서 힘들었구나. 그래서 시험을 볼 때나 대회를 할 때나 늘 불안했구나. 엄마가 매일 좋은 학원, 과외 선생을 알아보며 무조건 다니라고 해서 힘들었구나. 편안하고 함께 웃는 엄마가 필요했는데, 언제나 엄격하고 무섭게 했던 엄마가 널 힘들게 했구나. 늘 함께 하며 칭찬해주고 웃어주는 엄마가 필요했는데 엄마가 그러지를 못해 외롭고 무서웠구나”

어린 시절 A씨에게는 바쁘고 엄격한 엄마보다는 따뜻하고 함께 놀아줄 엄마가 필요했다.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아이보다는 즐거움과 웃음이 넘치는 아이로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어야 했다.

그렇지 못했던 A씨의 내면에는 그때의 충분히 다 자라지 못했던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의 1차 가해자는 엄마였지만 이후 2차 가해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고, 이젠 자신의 딸에게 3차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3대에 걸쳐 정서적으로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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